구약성서당/여호수아

▼ 여호수아 7:19-26 아간의 죄 자백은 진정한 회개의 자복인가

朴 海 東 2016. 8. 3. 17:22

아간의 죄 자백은 진정한 회개의 자복인가

여호수아 7:19-26

묵상내용

아이 성 패배 이후에 이스라엘 진영 안에서 일어난
범죄자 색출 과정과 죄의 척결 문제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의문점을 가지게 됩니다.

1. 아간의 죄 자백은 진정한 회개의 자복인가[7:20-21]

2.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는 것은
그것이 순수한 동기로 하는 것이든
마지못해 죄를 자백하는 것이든
그 자체로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는 일인가 [7:19]


아간의 범죄 사실 자백의 과정을 보게 되면
스스로 뉘우쳐 자복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 색출에 대한 제비뽑기 결과가
지파별 - 종족별 - 가문별로 점점 압축해 들어오면서
자기에게 불똥이 떨어지자 그제야 실토하는 것을 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모아놓고
제비뽑기 방법을 통해 범죄자를 색출하기 전에
자신이 미리 나서서 솔직히 자백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커밍아웃 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 것을 보면
그는 하나님께 대한 감각이 없는 사람이요
심령이 굳은 사람으로서 보통 강심장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은 드러났고
그는 억지로라도 자신의 죄를 자백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호수아는
아간에게 죄의 자백을 끌어내기 전에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집니다.

내 아들아 청하노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가 행한 일을 내게 알게 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7:19]

여호수아의 말을 빌리자면 어떤 이유가 되었든지
사람이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자백하는 그 자체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되고
하나님께 영예를 드리는 일이 된다는 것을 배웁니다.

어떤 이유와 배경이 되었든
하나님 앞에 죄를 자백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지존하신 하나님의 존엄을 인정하는 행위로써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왕이면 평소 죄 자백을 생활화 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과 사귐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올려드리는 순수한 동기로써
죄 자백을 잘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1서 1:9]


3. 아간의 죄를 척결함에 있어서 그의 자식들과
가축들까지 포함시킨 것은 정당한 것인가[7:24]


이스라엘에게 패배를 가져오게 하고 이스라엘에게
고통을 안긴 아간의 죄는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그에게 속한 자식들과 가축들 까지 포함 시켜서
돌로 치고 불살라 돌무더기를 쌓은 것은
너무 오버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이족들을 칠 때
남녀노소 불문하고 가축 떼까지 진멸하게 하신 것을 보면
이미 취하지 말아야할 원수의 것을 취하여
원수들과 한 통속이 되어버렸고
하나님께 받쳐진 것같이 되어버린
아간과 그의 장막에 속한 것들은
심판의 대상인 가나안 이족들과 동일한
심판의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음을 봅니다.

더불어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아간에게 속한 것들을 모두
돌로 치고 불사른 것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고통 가운데 몰아넣은 자와
그에게 속한 것들을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7:15]

묵상적용


4. 한 사람의 운명과 장래사는
그의 이름대로 따라 가게 되는가[7:25]


아간의 이름이 가진 의미가 “괴롭히는 자”라는 뜻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늘의 말씀에서 이 의미가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그는 이스라엘을 괴롭힌 자가 되었고
하나님께서도 그를 괴롭게 하시리라고 하는
여호수아의 선언을 보면서[7:25]
어쩜 이렇게 아간이 가진 이름의 뜻 그대로
적중되고 말았는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아간 곧 괴롭히는 자의 의미를 가진 이름의 결말을 보면서
이름도 잘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
새 이름을 지어 주시면서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 갈대: 흔들리는 자]이니
장차 게바 [반석: 베드로]라고 하리라고 하셨는데 그대로 되었고

오늘의 말씀에서 괴롭히는 자
곧 아간 [아갈]의 이름이 주는 결말을 보면서
나는 주님과 내가 속한 신앙공동체의 기쁨이 되고
주님이 또한 나의 기쁨이 되는 새 이름을 갖고 싶습니다.

주님!
사단의 위[본부]가 있는 도시에서
신앙 생활하는 버가모 교회 성도들에게
발람의 길 곧 아간의 길을
따르지 말라고 하시며
이기는 자들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신
새 이름을 나에게도 주옵소서[계2:17]


5. 아간과 그에 속한 것들을 돌로 치고 불사르고
돌무더기를 쌓은 후에야
진노를 그치신 하나님의 본심은 무엇인가[7:26]


아간과 그에 속한 것들을 돌로 쳐 죽이고 불살라
돌무더기를 만든 후에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셨다는 구절을 묵상하면서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은 간데없고 무자비하고 잔인한
한 이방 신의 속성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그의 진노하심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죄악에 대한 분노요 진노라는 점에서 이방의 신들과 다르며
그가 얼마나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이렇게 하시는가를
역설적으로 받아 드리게 됩니다.

아간의 숨겨진 죄악 때문에 이스라엘 진영이 더러워져서
자신의 임재를 거두어 가셔야만 하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떠나지 않고 그 가운데 거하시며
가나안 정복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열심히 이렇게 표현 되었다고 이해하게 됩니다.

비유컨대 몸의 한 부분에 발생된 암을 제거해서라도
온 몸을 살리려고 하는 의사의 손길처럼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의 가문이 궐이 나고 없어지더라도
전체 이스라엘 공동체를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이렇게 도려내는 수술의 칼로 임하셨다고 받아 드리게 됩니다.

주님!
성경을 읽으면서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이해되지 않을 때에도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깨닫게 하셔서
주님을 더 잘 배우고 알 수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