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3:21-30 (2)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요한복음 13:21-30
AD 30년 니산월 15일 유월절 밤
지난 3년 동안 동고 동락했던 예수님과 12제자는
함께 유월절 식탁의 자리에 둘러앉았다.
자리 배치를 둘러쌓고 제자들 사이에
누가 어떤 자리에 앉을 것인가
우열 다툼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섬김을 받아야 할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일이 있었고
이 세족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신 후
곧 바로 준비된 유월절 만찬에 들어가셨는데
오늘의 말씀에서 그 때 그 분위기를 읽게 된다.
그런데 그 만찬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우울하다
주님이 주시는 떡을 먹는 자 가운데
마음으로부터 발꿈치를 들고 엿보고 있는 자가
시치미를 떼고 그 자리에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괴로운 마음을 토로 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13:21]
같은 내용을 기록하는 다른 복음서에서 보면
이 때 제자들은 모두 나는 아니지요? 라고 하는데
능청스럽게 유다 역시도
나는 아니지요 라고? 자신을 가장한다[마26:25]
그간 유다는 끈질기게 자신을 가장하고 자리를 지켜왔다
예수님의 오병이어 표적 후
떡을 먹고 배불러서 나를 따르지 말라고 하시며
영이요 진리인 말씀 때문에 나를 따르라 했을 때도
많은 제자들이 물러갔지만 여전히 가면을 쓰고
제자의 무리 가운데 남아있었는데
그 때 예수님은 너희 중 하나는 마귀라고 하셨다. [요6:70]
나사로를 살리신 베다니의 그 가정의 식탁에서도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을 때
이것을 구제헌금으로 내놓지 않고 낭비했다고
가난한 자들을 위하는 척 자신을 가장하기도 하였다[요12:5]
그러나 이제 갈 때까지 갔고 막장에 이른 것인가(?)
예수님은 더 이상 숨기지 않고 그 밤에 직설적으로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신다.
이전에 너희 중 하나는 마귀라고 하신 것에 이어
이제는 나를 팔리라고 하시는 것이며
그 것이 지금 이 밤에 일어날 일인 것을 알리신다.
가장 먼저 베드로가 관심을 보이고
예수님 품에 의지하여 비스듬히 누워 식사하는 요한에게
누군지 말해달라고 하는데( 이것은 프라이버스 문제여서)
공개적으로보다 개인적으로 알고 싶어한 관심으로 보인다
이 때 예수님은 (공개적으로보다)요한에게 귀속 말로 하시듯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 사람이라 하시고
가륫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는데
사실 이같이 초를 찍어 주는 행위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이는 애정의 표시로써[룻2:14]
예수님은 끝까지 배신자 유다가 가면을 벗고
자신을 드러내며 회개하기를 기다리신 것 같다.
그러나 이 마지막 주님의 애정의 표시 앞에서
이제 모든 것이 폭로된 마당에 유다는 더 이상
자신을 가장할 수 없었는데
아마 유다는 예수님이 초를 찍은 빵 조각을 건넬 만큼
가까운 거리(좌석)에 앉아 있었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초에 적신 빵을 받아먹는 순간
곧 사탄이 그 속으로 들어갔는데
(아마 요한은 그 것을 본 자로서 이 기록을 남긴 것 같다)
오늘의 말씀 마지막 구절은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고 기록하는데
AD 95년 예베소에서 이 복음서를 기록한 요한은
그 때 그 밤의 일을 바로 어제 일처럼 회상하듯 기록하면서
이처럼 끝까지 품어주는 사랑을 거절하고
회개의 기회를 거절하며 나가는 자의 뒷모습을
어두운 밤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으로 기록함으로써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어두움뿐이며
그 마음이 캄캄한 어둠[사탄]에 잠식된 것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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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이 12 제자 가운데 하나 이었던
유다의 배신을 이렇게 상세히 기록으로 남기는 데는
당시 기독교가 핍박을 받고 있던 그 시대적 상황도
한 배경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당시 도미시안 황제 시절 로마 제국 전역에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조직적으로 있었고
배교자들도 많았으며 게다가 공동체 조직을 배신하고
마치 유다가 예수 있는 곳을 가르쳐 주러 간 것처럼
고발자들이 나오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가 박해를 받는 나라들의 현장에서
우리 시대에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몇 년 전인가 단기선교 차 중국을 방문한 팀을 이끌고
한 교회를 방문하였는데 그 교회 목사님이
매우 불안해하기에 왜 그러는가 했더니
혹시 누군가 고발 자가 있어서 공안경찰이 올까봐
걱정하는 것을 솔직히 말씀하셨다
물론 그 밤의 행사는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잘 마쳤는데
주변 교회에서 교회 교인들 가운데 고발 자들이 나와서
교회가 어려움을 당한 경우도 여럿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은
유다의 배신을 기록한 이 말씀을 통해
고발자의 말로가 어떤 것인가를
이렇게 예수를 떠나 어둔 밤 속으로 사라지는
밤에 속한 사람- 유다의 모습으로 나타내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나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마음 깊이 새기게 되는 것은
계속되는 회개의 기회를 거절하고 자신을 가장한 채
자신이 있지 말아야 할 곳에 계속 있게 되는 사람은
마침내 자신의 의지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인간 이성의 마지막 의지까지 빼앗기고
사단이 그 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을 장악하게 됨으로
자신도 자신을 어찌해볼 수 없게 된다고 하는 무서운 교훈이다.
이 복음서의 저자가 성령의 감동 가운데
유다의 이야기를 이렇게 상세히 남기는데에는
나의 마음이 주의 은혜로 다스림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일깨워주며
한 편 내 마음에 사악함이 깃들 때
내가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도 일깨워주는데
그것은 사단이 내 안에 범접하여
더러움과 악의 씨를 뿌리지 못하도록
영적 의지적 크리닝을 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하고서도 내가 드려야할 기도가 있으니
이 아침 같은 문제로 고민했던 시편 저자의 기도를
나의 기도로 삼아 주님 앞에 올려드린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 David- [시편 139: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