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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후서 11:16-33 그리스도의 일꾼된 표지

by 朴 海 東 2018. 3. 23.

그리스도의 일꾼된 표지

고린도후서 11:16-33

묵상내용

사람들은 남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라며
혹은 자기가 가는 방향으로 따라오게 하기 위해서
자기 자랑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게 되는데
대체로 성장과정에서 자아 분화가 제대로 되지 못한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현혹되고
자기의 마음을 주며 후에는 자신의 마음과 생활까지도
그 사람에게 통제되고 농락당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오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지금 이런 위험한 덫에 걸려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떠난 후
누가 그 교회의 감독이 되고 장로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어떤 예루살렘에서 내려왔다고 하는 거짓 사도/교사들에게
고린도 교회를 송두리 채 내어 바칠 만큼 되어버렸으니
위기도 보통 위기가 아닌 것 같다.

자신들을 정통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자처한 이 거짓 교사들은
바울이 12 사도 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의 사도성을 부인하며 바울이 전한 복음을 뒤집어엎고
유대주의 및 율법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이방인 성도들을 미혹하여
다른 영/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전한 것이 분명한데

이에 대해 바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신은 이들 거짓교사들보다
육체를 따라 자랑할게 더 많음을 이야기 하겠다고 반론의 포문을 연다[11:18]
그라나 그는 이런 육체를 따라 자랑하는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알기에 곧 바로 자랑의 흐름을 바꾸어
진정한 그리스도의 일꾼 된 유일한 표지로써
복음을 위해 받는 고난의 강도를 가지고 자기 자랑을 대체한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 당하여 일주야를 망망대해에서 표류했으며
복음 전도 여정에서 여러 번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여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며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그러나 이런 외적인 위험과 고난을 차치 하고라도)
날마다 내 안에 더 큰 고통으로 눌리는 것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11:24-29]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이러한 나의 약함을 자랑하리라[11:30]


바울은 거짓 사도/교사들의 입을 막고 고린도 교인들을 깨우치기 위해
자신이 다메섹에서 주님의 종이요 사도로 부름 받은 이후
고난으로 점철되어온 자신의 선교여정을 자랑 아닌 자랑으로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참된 일꾼은 무엇으로 분별되는지 밝히는 오늘의 말씀은

지금까지 길게 이어온 고린도전후서 전체를 통 털어
가장 심금을 울리며 진정이 뚝뚝 흐르는 말씀으로써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뿐 아니라
아직도 세속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사람을 쉽게 외모로만 판단하는데 익숙한 나 같은 사람에게도
너무나 큰 도전이고 따가운 책망으로 마음 깊이 닿아지게 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나를 이해시키고 알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자기 자랑이라는 방법을 쓸데가 있다.
만일 그가 하는 말이 순수하고 정직한 것이라면
때로 이러한 방법도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고린도 교회에 악성 누룩처럼 스며들어와
전체를 부패시키는 사람들처럼 거짓되고 의도적이며
자기 사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때
이러한 자랑은 위험한 것이고 단호히 거절되어야 할 것들이다.

묵상적용

그리스도의 일꾼 된 표지로써 자신이 복음을 위하여
받아 온 고난을 길게 열거한 바울의 자랑[고백] 앞에서
나는 아직 나의 명함조차 내밀 수 없는
그리스도 군사의 훈련병에 지나지 않는 나의 모습을 본다.

복음의 일꾼된 것 때문에
나는 비인격적 대우를 받으며 얻어맞아 본 적이 있는가?
지금 생각하니 군에 있을 때 많이 맞아 본 것이
지금 선교사로 사역하는 이때를 위함 이었을까......(?)

복음의 일꾼 된 것 때문에
나도 주리고 목마르며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어 보았는가(?)
C 국의 북동쪽 끝자락 러시아와 맞닿은 선교지에서
영하 40도 이하로 내려가는 혹한 속에서
나의 입은 옷이 변변치 못하게 보였는지 현지 성도가 내어준
외투와 방한 신발이 이아침 떠오르며 그 성도가 한 없이 보고 싶어진다.

그러나 복음 전도 여정에서 뼛속까지 스며드는 냉기로
헐벗어 떨어보기는 했어도
나는 아직 먹을 것이 없어 굶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생리적으로 배고픈 것을 참지 못해
어떤 것이라도 먹을 수 있는데
지금 나와 함께 NK 사역을 하는 중국인 목사는
자신이 먹지 못하는 동물에게나 주는 풀대 죽을
내가 거침없이 먹는 모습을 보고 감동하여
나와 함께 동역 사역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 했는데
바울의 선교 여정에서는
이런 거친 음식조차 없었던 때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에서 가장 마음 깊이 울려지는 고난은
바울이 선교여정에서 세운 교회들에 대해
날마다 눌리는 근심으로 염려하는 것이다[11:28]

이것은 복음의 불모지에 교회를 세워본 사람들만이
뼈저리게 느끼는 고난이며 마음의 눌림이다.
시공간의 제한을 받아 그들에게 갈 수 없어
그들을 보고 싶고 그들을 염려하는 마음은
때로 기도의 눈물에서 터지기도 하는데 바울이 말한
마음의 눌림과 염려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일꾼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오늘의 말씀은
오늘의 묵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을 만나게 되는 그 날 까지
계속 마음에 품고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며
나를 점검하고 지켜가야 할 말씀으로 받아 드린다.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한 고난이 싫어져서
벗어버리고 싶고 포기되어질 때
나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써 탈영한 자가 되는 것이며
더 이상 그리스도의 일꾼이 아니고
사욕을 위해 주님의 이름을 이용하는
또 다른 거짓 사도요 교사가 될 수있다는 것을
이아침 마음 깊은 교훈으로 받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