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음으로
▼ 역대상 9:35-10:14
묵상내용
역대기 저자는 앞선 아홉 장에서 아담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스라엘 12지파의 계보를 기록한 후
족장시대 - 애굽시대- 광야시대- 가나안 정복과
사사시대에 있었던 모든 역사적 사건들을 생략하고
곧바로 통일 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의 계보와
또 그의 왕위가 빼앗겨지고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로
정권교체가 이뤄질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로 넘어가고 있다.
에스라에 의해 역대기가 쓰여지기 전 이미 예레미야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추정하는 열왕기가 존재하고 있었던 터에
역대기의 저자 에스라는 다른 역사적 사건들은 거두절미하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공동체 건립을 위해서 꼭 필요한 모델이 될 수 있는
다윗 왕국으로 이야기로 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더불어 역대기 저자는 사울과 다윗 사이에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길보아 전투의 이야기와
사울이 왕위를 빼앗기고 그와 그의 자식들과 온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로 그의 시대를 마감시키고
이어지는 11 장에서부터는 다윗의 시대로 넘어간다.
그렇다면 사울의 실패는 어디로부터 시작된 것인가 ?
오늘의 말씀 마지막 두 구절에서 해답을 주고 있다.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 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10:13-14]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와 달리 시내산 언약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로 출발된 나라로서 하나님께서 저들의 왕 이시며
보호자가 되셔서 다스리시는 나라이며[출19-20장]
세움 받는 왕들은 하나님 통치의 매개자들로서 의미가 있었다.
따라서 왕은 제멋대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통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그 상징적 표현으로)왕의 보좌 곁에
항상 두루마리[율법]을 두어야 했다.[신17:18-19]
그러나 하나님이 원해서가 아니라 백성들이 너무 원해서 세워진
왕으로써 사울은 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는 능력이 없어서
그 당시 선지자 사무엘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기도 하였는데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듯 하면서도 사실은 하지 않는
절반의 순종으로 일관하는 사람이 되었고
마침내 사무엘의 사후에는 하나님의 나라요 백성인 이스라엘을
자기 멋대로 통치하는 어리석은 왕이 되고 말았다.
사울이 표면적으로는 불레셋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만
사실은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 것이라는 마지막 결론의 말씀은
그래서 두렵고 떨림으로 닿아지며[10:14]
더욱 특별히 그가 죽어야 하는 이유로써
그가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음으로"라고 하신 것은
이 한 구절 속에 많은 의미를 함축하여 전달해 주고 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한 것은 히브리어 "사울 "이라는 이름의 뜻이
동사 사알(Sal)에서 파생된 "묻다, 요청하다"의 의미를 가지는데
결국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되신 하나님께
물어가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어가야 할 사람이 묻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음으로 퇴위 시키신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신 직접적인 이유로써
그가 “묻지 아니했다”는 이 한 문구를 놓고 생각해볼 때
많은 의문점이 생기기도 한다.
어찌 사울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묻지 않고 싶었겠는가(?)
그는 사무엘의 사후에 신접한 자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었고 [삼하28:3]
블레셋의 침공으로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삼하28:6]
결국 신접한 여인을 찾아 엔돌로 내려가게 되고 [삼하28:7]
신접한 자를 통해 사무엘을 불러 올려 여호와의 말씀을 듣겠다고 했는데
그러나 신접한 여인이 불러올린 사무엘은 진짜 사무엘이 아니었고
모방의 천재인 마귀가 사무엘을 가장하여 나타나 답변을 주었고
이 답변에서 사울은 크게 낙망한 가운데 전투로 나아가 죽게 된다.[삼하28:8-25]
묵상적용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묻고 또 물었던 사울에게 대답지 않으시고
사무엘로 가장된 마귀가 주는 절망적인 말을 듣고 전투에 나아가
결국 이런 종말을 맞게 한 것일까(?)
나라가 위기에 처하여 급급해서라도 하나님께 물으러 나온 사울에게
하나님께서 진정 바라시는 것은
그가 하나님이 주시는 답변을 들을 수 있도록
지금까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꽉 막혀있는 것을 풀기 위한
회개가 먼저 선행되어야 했지만 그에게 회개는 뒷전이었고
우선 왕으로서 자신의 급급한 문제 해결만을 바란 것이 문제였다.
진정 하나님께 묻고 그 묻는 것에 대한 답변을 듣고 싶다면
그 답변이 내 마음과 양심을 관통하여 내 영혼에 들리도록
내가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되어야 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물어야 하는데
사울은 “ 묻다”라는 이름을 가진 자였지만
진실하게 물은 자가 되지 못해서
결국은 망령된 자기 마음을 따라 신접한 여인에게 찾아갔고
마귀가 주는 가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낙망한 심리를 따라
전투에 나갔으니 마귀가 주는 말에 따라 승산 없는 전쟁에서
자신과 자신의 자식들과 온 집안이 함께 망하는 길로 가게 되었다[10:6]
오늘의 묵상을 내리며 사울의 실패가 결국
“하나님께 묻지 하니하였음으로”에 있음을 알려주는 오늘의 말씀은
이 시대에 동일한 하나님을 섬기는 나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구약에서는 꿈으로/우림으로/선지자로 말씀하셨다면
오늘 우리시대에는 이미 주신 기록된 말씀과
성령께서 이 말씀을 조명시켜 주시는 더 확실한 답변이 있고
또 하나님은 내가 듣고자 하는 것보다
더욱 더 나에게 들려지게 말씀해 주시는 분이시며
나보다 더 나에게 귀를 기울여 듣고자 하시는 분이시지만
중요한 것은 참 효자의 마음에 부모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심지어 돌아가신 부모님의 뜻이라도 전달될 수 있는 것처럼
내가 하나님의 답변을 듣고자 하고 또 들을 수 있는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마음 깊은 교훈으로 받아드린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