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기도하지 말라고 하실 때
예레미야 7:16-28
[뜻으로 읽는 오늘의 말씀 요약]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유다 백성들을 위해 더 이상 기도하지 말라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우상숭배가 극에 달해서
하늘의 여황[바벨론의 여신 이슈타르]에게 전가족적으로 매달려 제사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이미 유다 성읍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쉽게 보는
우상숭배가 어디까지 만연되어 있는지 보라고 하시며[7:16-19]
이런 것들이 나를 얼마나 속 터지게 하고 분노케 하는지 아느냐고 하신다.
이제 이들이 고쳐질 수 있는 길은 [징계 적]심판 밖에 다른 대안이 없으니
나 하는 대로 내버려두어 심판을 집행하게 막지 말라 하심이다.[7:20]
아브라함의 후손 야곱의 집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셨을 때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어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7:23]
남은 것은 불순종과 거역뿐이고 이제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여호와의 길[말씀]을 몰라서 그런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종 선지자들을 보내시되 끊임없이 보내었으나
그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고 목을 곧게 하여 등을 돌렸으니[7:23-26]
이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생겨먹은
못된 민족성을 가진 자들인지 결론 내리듯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치 않으며
교훈을 받아드리지 않는 민족이고
그들의 입에서 진실이 끊어진 백성이라고 단정 내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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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기도하지 말라 하실까?
많은 묵상의 소재를 남겨주는 오늘의 말씀에서
왠지 모르게 “더는 기도하지 말라”는 첫 구절에 발목이 잡혀서
더는 묵상의 진정을 이룰 수 없는 이아침
이 구절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왜 더 이상 기도하지 말라 하시는 걸까?
더 이상 기도해보았자 중보 기도자의 효력이 없을 것 같기에
기도 중단 명령을 내리신 것 일까? 아니면 왜 그렇게 말씀하실까?
그러나 이 명령을 내리심에는 더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은데
그토록 위대하고 강하신 하나님 이시라도
중보 기도하는 성도의 기도와 눈물 앞에서 약해질 수밖에 없으며
자신의 작정과 계획이 또 뒤로 밀리게 되는 것을 염려해서 하시는 것 같다.
이미 야곱의 집 유다의 징계는 벌써 예정된 것이 아니었던가?
매도 일찍 맞는 것이 낫다고
야곱의 집 유다의 죄악은 그냥 용서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번쯤 징계 적 심판을 통과해야 변화되는 것을 잘 아시기에
예레미야에게 내 종아! 내 마음을 약하게 만들지 말고
이제 나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하시는 말씀으로 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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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직 기도를 해줄 수 있고 기도를 받을 수 있는 축복
지난 10여 일 동안 대상포진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왼쪽 머리부터 시작해서 왼쪽 귀와 뺨 그리고
아래 어금니까지 내려오는 통증은 정말 참기 어려웠다
나는 나의 아래쪽 어금니가 너무 아파 빠져나가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엊그제 주일을 지나고부터 통증도 사라지고
열도 내렸으며 정상을 찾아가고 있다.
얼굴 쪽으로 열꽃이 피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얼굴에 딱쟁이들이 남았는데
어떻게 상처 없이 잘 아물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에 크게 고생하면서 깨달은 교훈도 너무 컸기 때문에
내가 받은 은혜를 공유하는 뜻으로
소통하는 카톡 방에 상처의 딱지가 남은 얼굴을 올리며
나의 깨달은 교훈과 다짐도 올렸는데
많은 형제들이 한결같이 “기도 하겠습니다” 문자를 올린 것을 보며
기도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기도한다는 말 속에는 우리는 서로에게 친하며
서로 통하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비록 안부 차로나 인사치레로 올리는 글이라 하더라도
[나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합니다. 등 등
써 보낸 마음들이 얼마나 고맙고 귀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야곱의 집 ? 유다를 위해서는
더 이상 기도를 하지 말라 하신다.
이제 소통될 수 없고 서로에게 막혀졌다는 의미인데
이로써 기도할 수 있고 기도를 받을 수 있는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이아침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적용하기
3. 더 이상 기도하지 말라 하실 때 기도자의 자세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내 종아! 이제 다 끝났으니
그만 기도해라 했을 때도 그대로 물러가지 않은 것 같다.
이어지는 말씀에 보면 그래도 계속해서 기도해서 그런지
더는 기도하지 말라는 말씀이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온다.
[렘 7:16; 11:14; 14:11; 15:1]
나는 이것이 진정으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여 기도하며
기도를 사명으로 알고 기도의 자리에 서는 자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라고 생각하게 된다.
자기 백성을 징계의 심판 속에 던져서라도
정화시키고 고치시고자 하는 자신의 계획을
너의 기도 때문에 내 맘 약하게 만들지 말고
나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하셨지만
비록 민족성이 되먹지 못한 패역한 백성이라도
하나님께서 택하셨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이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자비의 가슴에 남아있는 자들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정녕 포기하시고 내버리실 만큼
하나님은 강심장이 아니시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예루살렘 멸망을 전후하여
민족의 죄를 가슴에 안고 등에 지며 자신의 죄처럼 여기고
기도했던 예레미야나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의 기도 속에서
유다 민족의 싹이 바벨론 포로에서 아주 잘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싹이 나고 희망의 빛을 남겨 놓고 있는 것을 본다.
유다 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때
다시 돌아와 나라를 세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조금도 기대할 수 없는 제로점 절망 그 자체였지만
예레미야는 제한적 징계로써 70년이 차면
돌아갈 날이 있으리라고 예언했고 (렘29:10)
에스겔은 그 날이 오면 어떻게 다시 회복될 것인지
그날의 비전을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다[겔36장 37장]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묵상의 화두로 삼았던
너는 이 백성을 위해 더 이상 기도하지 말라는 말씀 속에 담긴
우리 주님의 마음을 깊이깊이 헤아려 보며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기도해 나갔던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기도를 생각해보면서
오늘 이 시대 내가 따르고 배워야 할 기도의 표상으로 삼게 된다.
기도하기
주님!
더 이상 기도하지 말라 하셨을 때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 말씀 속에 담긴 주님의 마음을 읽으면서
더욱 기도의 자리에 나갔던
예레미야의 기도를 잘 배워서
나도 오늘 이 시대
기도하는 한 사람으로 설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