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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1-11 세족식에 담긴 사랑과 구속적 의미

by 朴 海 東 2020. 2. 20.

세족식에 담긴 사랑과 구속적 의미

요한복음 13:1-11


AD. 30년 니산월 15일 유월절 전날.
 
마침내 때가 이르렀고 해가 저물었다. 
이제 이 밤이 지나가고 나면
예수는 한 마리 어린양처럼 죽임 당하셔야 한다. 
지나간 이스라엘의 유월절 역사가 
이 날을 위해 존재하였고 그 성취를 앞두고 있다

이제 제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촛밀 같이 타들어가는 이 절박한 시간에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예수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을 남기고 싶으셨다.

1. 세족식에 담긴 사랑

그래서 제자들과 함께 하는 이 유월절 만찬의 식탁에서
그는 마음에 품으셨던 것을 풀어내시는데
그것은 끝까지 품고 가는 사랑이며 
지극히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표시로써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세족 행위였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그 때 제자들 사이에 누가 크냐고 
서로 다툼이 있었다고 하며
유다 같은 제자는 이미 마귀에게 압도되어
스승을 팔려는 생각까지 품고 있는 자리인데 
예수는 거꾸로 끝까지 품고 가는 사랑과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사랑으로 
이 모든 것을 품어버리는 상징적 세족을 행하신다. 

일찍이 이스라엘에 칭송받던 세례 요한은
예수의 길잡이가 되었을 때 그를 높이기를 
나는 구푸려 그의 신들 메를 풀기에도
감당치 못할 황송한 자라고 자처하였는데 

지금 예수는 몸을 구푸려 대야에 물을 붓고
종들의 표시인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벧전5;5]
한 사람 씩, 한 사람씩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다

언제가 의학상식에 써 있는 글을 보니 
사람의 인체에서 가장 더러운 부분이
겨드랑이나 항문 같은 곳도 아닌
신체의 맨 밑바닥에 있는  발이며 
발바닥이라고 쓴 것을 보았는데
지금 가장 거룩하신 분이 
가장 더러운 곳을 손수 만져 씻어주신다.
심지어 자기를 팔게 되는 유다의 발까지도.......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이 대목에서 더 이상 묵상의 전진을 이루지 못한다. 
젊은 날 목회적 소양을 충분히 갖지 못하고
오직 의의 잣대로만 성도들을 상대하며
온유하게 곰삭은 사랑의 가슴을 갖지 못했던 내 모습이 
유다의 발을 씻어주는 예수님의 대야 물속에 
주님의 모습 대신 부끄러운 내 모습만 비쳐지기 때문이다.

내가 그 때 예수님처럼 몸을 구푸려 
나를 싫어한 사람들의 발까지 씻어줄 수 있었다면
더러운 대야 물속에 비쳐진 
주님의 구푸린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도 내 방식만 옳은지 알았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배신을 때릴 유다조차도  
그가 자기 발로 걸어 나가기 까지는
끝까지 품고 가는 사랑으로 발을 만지셨는데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 그의 종이 되어 
그의 양 무리를 맡게 될 모든 목회자들의 표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어지는 말씀은
세족식에 담겨있는 구속적 의미에 이어서[13:1-11]
서로 섬김의 도를 실천하라는 
윤리적 의미도 추가하여 말씀하신다. [13:12-20]



2. 세족식에 담긴 구속적 의미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마지막 시간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상징적 행위 속에는 
더 큰 영적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도 엿보게 되는데 
그 것은 베드로의 차례가 되어 나눈 대화에서 보여진다.  

성격상으로도 베드로는 자신의 주님께서 종들이나 하는 
이 굴욕적인 모습으로 발을 씻어주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 
어쩌면 자신의 발을 뒤로 빼면서까지 저항한 것 같은데
주님은 여기서 오늘 이 시대에  이 글의 독자가 되는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을 만한 진리를 설파하신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중국어 성경에는 “함께 나눌 분깃이 없다” 로 되어 있다]

지금 이렇게 더러움을 씻어 깨끗하게 해주는 상징적 표시로써
이렇게 세족 행위를 하시는 것은 
그가 하늘 아버지의 독생자로써 독자적으로 누릴 유업을 
그가 구속하는 자들과 함께 나누기 위한 행위라고 하심이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했는데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은 
내가 주님을 섬기는 내 전체 인생의 날들을 앞에 놓고
결코 깨끗하다고 할 수 없는 나의 영혼을 새털처럼 가볍게 해주고
내 신앙과 삶의 무거움을 내려놓을 수 있는 축복의 말씀이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13:10]

나는 이 말씀을 알기 전에는 
늘 씻어도 씻은 것 같지 않는 죄의 짐에 눌려 살았다. 
그래서 기도할 때마다 늘 죄의 짐에 허덕이곤 했는데 
이 한 마디의 말씀으로 나의 무거운 죄 짐이 내려졌고
답답하게 막혔던 내 영혼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얻었다.

너희가 깨끗하다......... 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선언이신가(?)

[그러나 다는 아니라 하시니 이는 유다를 가리킴이었고
유다는 예수를 랍비로는 관계하였어도
자신의 구주요 주님으로는 영접하지 않았음으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
 
이미 목욕한 자로 상징되는 자 곧 예수를 구주로 믿어 
그의 피로 구속함을 받고 칭의 된 자들은
이미 목욕하여 온 몸이 깨끗한 것처럼 
그의 모든 죄가 사함 받아 깨끗하여 졌고
다만 발 밖에 씻을 것이 없으니 
이젠 주의 피로 씻음 받은 지난 죄에 대해 
결코 연련할 것이 없으며 
오늘 나의 일상적 삶에서도 발은 매일 씻어서 
상쾌함을 얻는 것처럼 하라고 하시니
주님은 내가 고백하게 되는 죄에 대해 그리고 
내가 추구하는 성화적 삶의 범위와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분명하게 설정하여 주신 셈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발을 씻는 것조차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씻어주는 것이며
나의 가볍고 상쾌한 성화 적 삶을 위해 
매일 주님 앞에 발을 내미는 자세가 되어야 함을 배운다. 

언젠가 중국교회에서 이 본문의 말씀을 강론하는데
한 장로님의 눈에서 눈물이 괴이고 흐르는 것을 보았는데 
그 때 나는 성령께서 이 귀한 말씀으로 
예수를 믿고 있지만 아직도 무거운 죄의 짐에서 풀려나지 못해
허덕이는 성도들에게 말씀의 능력으로 역사하심을 볼 수 있었다.

요즘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소란하고 불안하여
함부로 이동하기도 부담이 되는 때인데 
오늘 집사람과 함께 **에 내려가기로 하였다. 
** 교회에서 만나기로 한 분들이 있는데 
오늘의 말씀을 잘 적용하는 마음으로 
주님 안에서 서로 발 씻김을 받는 좋은 교제가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