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박사들처럼 경배의 자리에 나가는 길
마태복음 2:1-12
지난 2020년 12월 16일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YTN이나 연합뉴스같은 많은 방송사에서
크리스마스의 별로써 목성과 토성이
크고 환하게 겹쳐보이는 우주 쇼를 방송하였다.
예수님의 탄생에 즈음하여 떠올랐던 별이
사실은 목성과 토성이 물고기 자리에서 겹쳐서
환하게 빛난 별로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최초로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 사람은
경건한 신학자이며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년)인데
이러한 그의 주장은 지금 첨단 과학시대에서도
컴퓨터의 역산으로도 증명되는 사실이 되었다.
천지창조를 기록한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시면서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라 하셨는데
예수님의 탄생과 즈음하여
우주와 인간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시고
아기 예수로 찾아오시는 그 중요한 시점에
그 탄생의 징조를 자연계를 통해서도 나타내신 것은
창세기 1장 말씀에 비추어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드려진다.
성경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탄생 기사에서
누가복음서의 저자는 아기 예수 탄생의 밤에
베들레헴 들녘에서 양치던 목자들이
가축의 우릿간, 구유(여물통)에 뉘인 아기 예수에게
경배한 것을 기록하고 있는데
마태복음의 저자는 동방의 박사들(천문학자/현자들)이
별을 보고 찾아와 경배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목자들이 경배한 시점과 동방 박사들의 경배한 시점은
적어도 6개월-1년 이상의 기간이 경과된 것으로 보는데
동방박사들의 내방을 받았을 때는
이미 예수님의 가족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할례를 받고
다시 베들레헴으로 내려 온 때여서
아기 예수님이 아장 아장 걸으며 엄마 품에 안기는 때이고
또 헤롯이 후에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베들레헴의 2살 아래 영아들을 죽이라고 한 때를 감안하면
목자들의 방문과 동방박사들의 방문에는
이처럼 상당한 기간의 차이가 있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왜 저자 마태는
이 책의 1차적 독자가 되는 유대인들에게
(더 나가서 우리 이방인들에게 까지도)
아기 예수의 탄생과 관련하여
도대체 이 아기가 어떤 아기이기에
적어도 900 Km 이상이나 떨어진
머나먼 곳에 있는 동방의 박사들까지 찾아와
아기 예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며
왕의 예우로써 경배하였겠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는 것 같다.
저자 마태는 이미 앞선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추적하여 그가 바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리라 한
메시야 그리스도 되심을 밝힌 것에 더하여[1:1-17]
아기 예수께서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받으신 것을 추가했는데
이는 성령의 감동 가운데 이 말씀을 기록하면서
그가 곧 이스라엘이 기다려온 바로 그 매시아-그리스도 이시며
세상의 구주가 되심을 더욱 믿을만한 증거로 주신 것이리라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 마음에 묵직한 의문으로 남는 것은
1. 왜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서
곧바로 아기 예수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마치 사자 굴로 들어간 것처럼 헤롯 궁으로 먼저 들어갔는지(?)
2. 그리고 왜 동방박사들의 내방으로 인해
당시 헤롯 왕과 종교지도자들과 온 예루살렘이
매시야(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듣고 소동이 일어났다고 했는데
이처럼 소리만 요란했지 정작 자신들이 그토록 기다려온
매시아(그리스도)-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하지 않고
오직 이방인 동방박사(현자)들 뿐이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1-1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가 있는 곳으로 가기 전에
먼저 헤롯 궁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연 계시인 별의 인도가 정확성에 있어서 부족함을 본다.
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따라 유대 땅까지 왔을 때
당연히 왕자의 탄생은 왕궁에 있으리라 생각하고
왕의 궁전으로 찾아간 것 같은데
이는 별로 상징되는 자연 계시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정확히 아기 예수께로 인도한 것은
헤롯 왕이 종교지도자들을 소집하여
그리스도의 탄생지를 물었을 때
미가 선지자의 예언(미5:2)을 인용하여
유대 베들레헴이라고 하였고
동방박사들이 그 말씀에 의지하여 다시 별을 따라 간 것을 보면
자연 계시의 부족함을 특별계시(말씀)을 통하여 보충함을 보는데
이것은 오늘 우리가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려고 할 때에
여러 가지 환경적 요소도 작용하지만
궁극적으로 정확히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은
이미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가능한 것을 깨닫게 한다.
2-1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으로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지만
정작 아기 예수에게로 찾아가 경배한 사람은 왜 박사들 뿐이었나?
그들은 이스라엘의 전 역사가 기다려온 그리스도의 탄생이
마침내 이루어졌고 그곳은 예루살렘에서 불과 10키로 이내에 있는
작은 고을 베들레헴이라는 정보까지도 알았는데 왜 가지 않았을까?
지금 우리들의 상황에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곳에 갈 사람들이 충분히 있을 수 있었겠다고 예상이 되지만
오직 먼 이방 땅에서 온 동방박사 세 명뿐이었다고 하는 것은
그때 그 시점에서 아기 예수를 만나 경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이 세 사람, 뿐이었다는 것으로, 밖에는 달리 이해할 길이 없다.
오늘 내가 예수를 나의 구주, 나의 왕, 나의 목자로 삼고
그에게 예배하고 섬기며 그를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은혜는
아무에게나 허락된 것이 아니라, 이것은 특별한 은총이라는 것을
마태가 전하는 이 상징적인 사건을 통하여 엿보게 한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구원하시는 능력)이 뉘게 나타났느뇨”[이사야 53:1]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아멘-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코로나 펜데믹 재난 기간을 지나가면서
예배당에 나가 예배하는 것까지 막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어찌 이 것을 정부의 방책으로만 볼 수 있겠는가(?)
주님께 나아가 한 번 예배하는 것 조차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주신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볼 때
주님의 허락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라 한다면 내가 너무 오버한 것인가?
지금 코로나 방역으로 인하여 예배의 자리에 나갈 수 없는
이 안타까운 상황으로 인해 그 길을 막고 있는 정부와 맞서 싸우기보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는지
그동안 우리의 예배는 정말 바른 예배를 드려온 것인지
깊이 반성하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함을 배우며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로 나아가는 특별 은총을 얻은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 경배[예배]의 자리로 나가는 길이
다시 열릴 수 있기를 이 아침 겸허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기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