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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기
이책의 저자 요한이 기록해 나가는
이 복음서의 깊이가 참 신비스럽다
요한은 앞선 3장에서는
유대인 중에 존귀한 자, 니고데모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에 자기 발로 예수를 찾아왔고
거듭남에 대해 논한 것을 기록했는데
반대로 여기 4장에서는
예수님이 통상 유대인들이
가지 않는 사마리아 길을 따라
세겜의 수가성 우물가로 직접 가셔서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뜨거운 한 낮에 물을 길러오는
사마리아 여인과 만나며
거듭남(구원)의 또 다른 표현 인
생수문답에 대해 논한 것을 기록한다
(여기서 이 만남의 시간을
로마 시간으로 환산하면
이 시각은 새벽 육시 이거나
늦은 오후 육시가 되지만
유대 시간으로 하면 정오인데
나는 요한이 앞선 말씀 기록과
비교법으로 쓰고 있는 흐름을 따라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와 만난
밤의 시간과 비교되는
유대 시간 한낮(정오)로 생각한다)
요한은 또 이 기록의 복선으로써
순수 민족 혈통을 이어온 유대인들과
혼혈족이 된 사마리아인들 사이에
해묵은 갈등이 있어
서로 상종하지 않는
역사적 배경도 깔고 있는데
그런데도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게되면서
굳이 이 지름 길을 택하신
저의가 있었음도 밝힌다(4:4)
유대인들이 사마리아를 사이에 두고
북부 갈리리와 남부 유대 지역을
오가는 통상적인 루트는
도보로 6~7일 걸리는
요단강 동편 길로 우회하였는데
예수님이 그 절반 거리가 되는
사마리아 지름 길을 택하신 것은
굳이 시간을 벌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의도를 가지고 하신 것인데
후에 이 수가 성에서 이틀이나 더
머물고 가신 것을 보면 그렇다(4:40)
그럼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는 길에
옛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의 유적이 남아있는
세겜/사마리아의 수가 성을
한 번 거쳐가고 싶었던 것일까(?)
과거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이
하란에서 귀향할 때
가축떼가 많은 것이 이유 이기도하나
아버지 이삭이 거주하는
헤브론으로 가지 않고
세겜이라는 곳으로 빠져서
그곳 추장 하몰 가문에 돈을 주고
땅을 사고 장막을 쳤으며
거기 우물을 파고 정착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호된 시련을 겪고
다시 벧엘을 거쳐
헤브론으로 간적이 있었다
후에 야곱이 애굽에 내려가
임종에 이르러서
전에 자신이 돈을 주고 산
이곳 세겜/사마리아 지역을 요셉에게
특별 유산으로 주었는데(창48:22)
요한은 지금 이 곳이
수가 성 주변이 된 역사적 배경도
아울러 밝히고 있다(4:5~6)
아무튼 수 많은 역사적 배경들이
날줄과 씨줄처럼 얽혀있는 이곳에
예수님과 제자들의 발걸음이 닿았고
예수님은 행로에 곤하여
우물가에 앉으시고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간 그 막간 사이에
한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에도 예수님의 의도가 엿보인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동네 구경도 할 겸, 요기도 떼울 겸
같이 동네로 들어갈 수 있는데도
혼자 뒤에 남았고
또 제자들이 모두 떠나고 없는 사이에
이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는 것은
그가 이렇게 의도하신 시간과
적절한 분위기를 만드신 것 같다
예수님은 물 길러 온 여인에게
누구라도 거절할 수 없을 것 같은
가벼운 요청 으로써
물을 좀 달라고 하신다
이에 대한 여인의 반응은
쌀쌀하다 못해 튕기는 반응으로써
당신은 유대인 (남성)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 거절했는데
여기엔 인종적 장벽과 성별적 장벽
그리고 두 종족 사이에 놓인
종교적 장벽이 가로 막힌 것을 본다
그러나 이런 제 장벽적 요소들보다
더 큰 장벽이 있었다는 것을
이어지는 말씀에서 보게 되는데
이 여인의 마음을 열지 못하게 만드는
지난한 삶의 곤고함이 베어있어
마음에 여유도 없을 뿐더러
작은 친절과 사랑 조차 나올 수 없는
마음의 상처와 무질서
그리고 헝클어진 심리가
이런 표독스런 반응으로 나온 것 같다
이쯤되면 예수님도 기가 꺾여서
더 이상 대화가 안될 법도한데
그러나 예수님은 물러서지 않고
더 적극적인 자세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네게 생수를 주었으리라" 하신다
이 말씀은 닫힌 여인의 마음에
호기심을 자극했고
하마터면 막힐뻔 했던 대화가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가면서
당신이 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에 대한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자신이
자손들에게 샘물을 물려준
야곱보다 크신 분으로써 샘물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를
줄 수 있는 분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
적용하기
여기까지 전개된 오늘의 말씀에서
꼭 한가지 만이라도 새기고 싶은 것은
예수님이 줄 수 있다고 하신 생수이다
여기서 말한 생수는
다시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생수로써
우리가 흔히 마트에서 사 마시는
생수가 아니라 영혼의 생수로써 곧
요한복음 7:37~39에서 다시 한번
언급되고 해설을 덧붙이는
저를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의 선물이며
성령으로 거듭나는 자가 받는 영생의 축복이다
오늘의 묵상을 내리며
나는 이미 이 생수를 받은 자로서
아직도 내가 목말라할 때가 있는
잘못 된 내 모습을 보게된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목말라 하는가
사마리아 여인처럼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는 목마름이며
육신의 소욕을 채우려는 목마름으로
주님께서 이미 내게 주신
값진 선물로써 성령의 선물과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한 목마름이리라
주님은 물을 길러왔으나
항상 목마름에 젖어 사는 여인에게
분명히 말씀 하셨다
"이 물을 먹는 자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는 오늘 이 구절의 말씀을
나의 심비에 새긴다
그리고 다시 내가 무엇이 부족하여
목마른 것처럼 살 것이 아니라
이미 내게 주신
그리고 내 안에 샘물처럼 솟아나는
성령의 선물로써 생수가
언제나 내 영혼에
흘러넘치게 해야할 것을 마음 깊이 새긴다
주님!
성령 충만을 주옵소서
내가 세상의 것으로
목말라 하지 않게 하시고
내가 구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으로써
항상 성령 충만을 목말라하며
성령의 기쁨과 능력으로
여기 목마른 세상을 넘어서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