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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빌레몬서*

▼ 빌레몬서 1:15-25 노예 해방의 싹을 틔운 빌레몬서에서 배우는 것

by 朴 海 東 2016. 2. 15.

노예 해방의 싹을 틔운 빌레몬서에서 배우는 것

빌레몬서 1:15-25

묵상내용

1852년 미국의 헤리엇 비처 스토우 부인은 "엉클 톰스 케빈"이라는 소설에서
자신이 목격한 노예들의 비참한 현실을 그려내어
많은 미국인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자유와 박애정신을 고취시켜
남북 전쟁에 앞서 노예제도의 폐지를 일깨우게 되는데
그녀의 마음과 펜대를 움직여 이런 글을 쓰게 한 것은
곧 기독교의 인간존중 사상인 빌레몬서의 정신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성령께서 바울의 마음을 감동하여 빌레몬에게 써 보낸 오늘의 말씀/편지를 통해
기독교의 정신이 추구하는 참된 인류애와 인간존중에 대한 가치를 느끼게 된다

인간이 같은 인간을 노예로 삼고 상품가치로 사고팔았던 이 악습을 깨트리고
노예해방을 이루게 한 근저에는
이처럼 사슬에 묶었던 종/노예를 종 이상으로 사랑받는 형제로 받아주라고
구구절절 예수의 심장으로 써내려간 바울의 편지에서부터 기원을 찾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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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노예선의 선장으로 포악하게 살아왔던 존 뉴턴의 회심과 또 그에게 영향을
받은 영국 상원의원 윌리암 엘버포스와 그의 동료들이
1807년 영국의 노예해방을 이뤄내기까지

그리고 그로부터 6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1865년 미국의 링컨 대통령에 의해
아프리카 대륙에서 미국으로 실려 간 수많은 노예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자유와 해방을 얻기까지 성경이 가르치는 인간존중의 정신을 실현하려는 사람들의
부단한 투쟁 가운데 인간 세상에 노예제도가 근원적으로 폐지된 것을 보게 된다.

윌리암 엘보포스는 노예폐지 법을 통과시키기까지 16년간 7전 8기도 아닌
11전12기를 감수하면서 수많은 반대 가운데서도 줄기차게 이 운동을 추진해나갔고
미국의 링컨 대통령도 1861년부터 1865년까지
5년간 이어진 남북전쟁에서 70여만 명이 죽는 대가를 치루고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삼지 못하게 하는 노예해방을 선언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링컨 자신은 통일된 미 합중국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전쟁 이듬해 분리주의 자의 저격으로 56세의 나이로 죽데 되는데
역사에 큰 거목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모두가
이렇게 자신을 희생시키는 열매를 남기고 떠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바울의 편지가 쓰여 진 주후 60년경에서 부터
링컨에 의해 노예해방이 선언된 1865년까지 거의 1800년의 세월동안
인간은 같은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이 악습의 암흑에서 헤어나지 못한 셈인데
그나마 기독교의 인간존중의 정신이 아니라면 인간은 지금도
얼마나 사악한 어둠 가운데 지낼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노예제도의 패악에 관한한 우리 조선의 역사도 여기서 비켜갈 수 없는데
백과사전 나무위키에 올려있는 글을 참고해 보면
조선시대의 노비제도에 관련해서 연구한
서구 학자들(제임스 팔레, 에드윈 라이샤워 등등)은
17세기 조선의 호적에 등재된 노비호가 전체의 1/3에 달한다는 점을 들어
조선을 고대 노예제 사회로 보기도 한다.

빌레몬서가 기록된 로마시대 인구비례 노예의 수가 30%정도 이었다고 하는데
우리 조선 사회에서는 40%에 육박하는 것 뿐 아니라
로마제국은 자신들의 정책에 순응하지 않는 이민족들을 노예로 삼은 것에 비해
우리 조선에서는 같은 민족이 같은 동족을 노예로 삼은 것 뿐 아니라
태어나는 자식들까지 노예[종]살이 대물림으로 이어가게 했다는 점에서
로마시대보다 더 악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언젠가 TV를 뉴스를 시청하면서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주민대표가
관리사무소장과 시비가 붙어서 하는 말 가운데
“이 놈이 우리가 주는 녹을 먹고 사는 종놈 아니야~” 라는 말을 들으면서
우리 조상들의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노비사상이 오늘 우리시대에는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향한 심한 甲질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였다.

묵상적용

바울이 사랑하는 형제 빌레몬에게 그에게 속한 종 빌레몬을 종으로서보다
그리스도 안의 형제로 대하라는 사랑의 권면은
그때로부터 20세기가 지난 이 시대에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하는지 생각해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을 결코 그의 출신이나 성별 기타 소유의 다소로 평가하거나
외모로 취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또 다른 인간존중의 교훈을 받아들이게 한다.

요즘 우리사회는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두드러져서 사람의 가치가 가진 소유의
많고 적음으로 평가되어지며 더 나가 사람의 가치가 생긴 모습으로 평가되어
사람마다 외모지상주의에 빠져 수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며
이러한 세상의 가치관이 교회 안에까지 깊이 파고 들어와 있는 불행한 모습을 본다.

한 사람이 어떤 출신 성분을 가지고 어떻게 생겼으며
그의 경제적 능력이 어떠하든지를 떠나서
다만 그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답게 인권을 존중받고 평가 받아야하며

더욱이 그가 주 예수께 대한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때
그는 그가 처한 어떠한 형편이나 생김새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사랑받는 형제로 대해야 한다는 것을 바울이 이 편지를 써 보낸
20 세기가 더 지난 이 시대에도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종들이 인간의 대접을 받을 수 없었던 시대에
이미 사도의 편지를 통해 인간 존중의 가치를 일깨워주신 주님!

같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 그리고 더욱 특별히
주님 안에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처한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형제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