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약성서당/여호수아

▼ 여호수아 6:15-27 여리고 성이 무너지던 날의 교훈

by 朴 海 東 2016. 8. 3.

여리고 성이 무너지던 날의 교훈

여호수아 6:15-27

묵상내용

여리고 성이 무너지던 날의 교훈

1. 온전한 순종이 온전한 승리를 가져온다[6:15-26. 20].


군사 전략가들은 인류 역사 가운데 있었던 유명한 전쟁사들을 연구하여 그 전쟁의 승리와 패배의 이유가 각 각 무엇이었던가를 연구하고 밝혀내며 후일의 군사 전략으로 참고 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총사령관이 되어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를 함락시킨 이 전쟁은 인간의 이성과 상식으로는 해답이 나오지 않는 전쟁입니다. 이 전쟁사에 숨겨진 비밀은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대리한 전쟁으로서 하나님의 작전 지시를 따른 온전한 순종이 온전한 승리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매일 한 바퀴씩 여리고 성을 돌다가 일곱 번째 날, 일곱 바퀴째를 돌면서 나팔을 불며 함성을 질러댔을 때 그 견고했던 난공불락의 성이 무너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온전한 순종이 온전한 승리를 가져오게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7X7+외침=승리 입니다]

일곱 번째 날 일곱 여섯 바퀴 돌때 까지도 성벽이 무너질 조짐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지만 마침내 일곱 바퀴를 돌면서 외쳤을 때 성이 무너졌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과 삶에서 치러내는 영적 전쟁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영적 원칙입니다.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침 받을 때 마지막 일곱 번 몸을 담그는 순간 깨끗하여 진 것처럼 여리고 성의 승리도 일곱 수로 상징된 온전한 순종의 결과로 나타난 승리입니다.

주님 !
제가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할 때
부분적인 순종이 아닌
온전한 순종을 드림으로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하옵소서.

2. 승리 뒤에 따라오는 함정 조심하기[6:18-19]


이 전쟁은 하나님의 심판을 대리한 전쟁으로서 이스라엘은 일반 전쟁에서처럼 승리 뒤에 따라오는 전리품을 하나라도 취해서는 아니 되기 때문에 모든 전리품은 하나님께 바치고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를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엄중한 주의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말씀[7장]에서는 유다 지파 아간이 받쳐져야할 물건들에 견물생심이 생겨서 명을 어기고 일시적이나마 이스라엘을 함정에 빠트리는 일이 발생합니다.

승리 뒤에 따라온 함정으로써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우리[내]가 승리 했을 때 더욱 조심해야하며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적은 외부에서보다 나의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특히 물질적인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져야할 것을 내가 가로채고 손대는 일이 없어야겠으며 나의 돈 지갑이나 통장에 불의한 돈이 들어있지 않게 되기를 마음 깊은 교훈으로 받아 드립니다

3. 온전한 헌신 [Total devotion] [16:21]


여리고 성의 정복하는 이스라엘 군대에게 주어진 엄중한 명령 가운데 하나는 성 안에 생존하는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소와 양과 나귀와 같은 가축들 까지 모두 칼로 멸하라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찌 연약한 여성과 노인들 그리고 어린아이들까지 칼로 치며 심지어 가축 떼까지 진멸시켜야 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됩니다.

어제 선교지에서 친숙하게 지내는 장로님 가정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서 갔는데 마침 식사 중의 대화로서 여호수아가 진두지휘한 가나안 정복사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장로님이 내게 묻기를 왜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이렇게 까지 무자비하게 하셔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이 전쟁이 단순한 일반 전쟁이 아니라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가나안 족들의 죄가 차기까지 기다리고 기다리시다가 마침내 그들의 죄악을 심판하는 성격을 가진전쟁이기 때문에 노아 홍수나 소돔 고모라의 심판에서 보는 것처럼 모든 것들을 함께 쓸어버리는 심판 집행적 성격을 가진 것이라고 답변 하였습니다.
여리고 성벽이 무너지고 이스라엘 군인들이 무너진 성벽의 파편들을 밝고 올라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모든 것들을 칼날로 진멸했을 때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쓸데없는 동정에 치우치면 온전한 하나님의 심판 도구가 될 수 없기에 그들은 이를 악물고라도 하나님의 심판 도구들이 되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진정한 헌신[devote]이란 것은 때로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동정의 마음이나 인정 선을 초월해 가면서까지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준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의 뜻을 위하여
진정한 헌신이 요구될 때
나의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모든 인정선 까지 초월하여
용감히 행할 수 있는 신앙과 삶이 되게 하소서

묵상적용


4. 라합 가족이 멸망 중에서 받은 은혜[6:17. 22-25]


여리고 성의 멸망 중에서 유일하게 건짐 받고 이스라엘 중에 들어와 살게 되는 라합 가족의 이야기는 [7:25]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도 그들이 귀로 들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드리고 은혜를 구한다면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 있음을 상징적인 샘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라합은 후에 유다 지파의 두령이었던 나손의 아들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게 되고 다윗 왕조의 혈통을 이어가는 증 증조할머니가 되는 것을 보면 이방인이면서 비천한 기생출신의 한 여인의 운명의 바꾼 이 이야기는 같은 이방인으로서 오늘 예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스런 가족이 된 우리[나]의 이야기로도 받아 드립니다.

주님!

여리고 성의 멸망 중에 받은 구원받은 “라합”처럼
이방인 이었고 은혜 밖에 살았던 내가 구원을 받고
은혜의 자리에 들어오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내가 은혜 밖에 살았던 때를 잊지 않게 하시며
항상 감사함으로 주님을 섬기는 신앙과 삶이 되게 하소서

5. 여리고를 향한 저주 선포가 의미하는 것 [6:26]


어떤 목사님이 장례식에 이어 산에 가서 하관 식을 집례하고 무덤의 봉이 완료된 후에 그 무덤을 향하여 말하기를 누구든지 이 무덤에 와서 술을 붓거나 이 무덤에 절하는 자는 저주가 있으리라고 저주 선포를 하기에 왜 그렇게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에서 무너진 여리고 성을 향해 이 성을 다시 건축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며 기초를 쌓을 때에 맏아들을 잃게 되고 문을 세울 때 막내아들을 잃게 되리라는 저주를 보면서 이 저주 선포 속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당시 가나안 족들은 하나님을 대신한 풍요의 신 바알과 아세라를 비롯한 많은 신을 섬기며
죄악으로 가득한 우상숭배 문화를 만들어냈는데 이런 것들은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진노하게 했고 심판의 이유와 원인이 된 것으로써 여호수아는 가나안 족들의 첫 번째 성이 되는 여리고 성의 정복과 저주 선포에서 다시는 하나님을 거슬려 대적하는 우상숭배와 죄악의 문화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을 이 저주 선포에 담고 있음을 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이 저주 선포가 그대로 성취되었던 시기가 우상숭배가 가장 극심했던 아합 왕 시대인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열왕기 저자는 아합 왕 시대의 우상숭배와 죄악의 문화를 경고하듯 이 여호수아의 저주 선포와 성취를 삽입구절처럼 넣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왕상16:34]
(당시 아합은 국가적 프로젝트로서 우상숭배 문화의 확산을 위해 여리고 성의 재건을 명한 것 같은데)
그 때에 벧엘 사람 히엘이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왕상16:34)


오늘의 말씀 묵상을 정리하면서 다시 한 번 마음 깊은 교훈으로 새기는 것은 한 치의 오류도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입니다.
오늘의 말씀이 보여주는 여호수아의 저주 성 선포가 그대로 땅에 떨어지지 않고 수백 년이 지난 아합의 시대에 문자적으로도 그대로 성취되는 것을 보면서 말씀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 같은 경외감을 가지게 됩니다.

주님!
이 세상에 가장 진실 되고
한 치의 오류도 없는 주님의 말씀을
항상 존중함으로 읽고 묵상하게 하시며
이 말씀의 권위 앞에 나의 인생을 걸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