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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마태복음 *

마태복음 3:1-10 세례요한을 보내신 하나님의 마음 더듬어 찾기

by 朴 海 東 2016. 1. 12.

세례요한을 보내신 하나님의 마음 더듬어 찾기

마태복음 3:1-10

▼ 마태복음 3:1-10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 마태복음 3:1-10

 

야곱의 자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00년 압제 가운데 지내며 그들 조상들의 하나님이 보내실 구원자를 기다리다 모세를 만나게 되는 것처럼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 년의 침묵을 깨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들려왔다.[3:1-3]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이제 곧 등장하게 될 구원자,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의 소리였고 이 광야의 외침이 들려왔을 때 가장 가슴이 뜨거웠던 분은 이 광야의 소리와 직접 관련이 있으신 주인공 예수님 자신 이셨다

나사렛 마을에서 목공소 일을 하면서 깊은 밤, 땅 속 깊은 곳을 흐르는 지하수처럼 맑고 고요한 기다림 가운데 아버지의 부르심의 날을 기다렸던 예수님은 하늘로 부터 들려오는 음성으로서가 아니라,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들려왔을 때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를 불러내시는 소리로 받아드리셨고 마침내 공생애 사역을 위해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는 곳으로 나가게 되신다.

세례요한의 등장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돌아보신 최고의 증표가 되었는데 이는 구약의 마지막 장, 마지막 구절에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리라는 약속이 이렇게 성취된 것이었기 때문이다[말4:5]

세례요한은 그 출생 배경에서 부터도 선지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사역하게 될 것이 예고되었는데 [눅1:17] 후에 예수님도 오리라 한 엘리야가 바로 이 세례요한 이라고 설명 하셨다.[마11:14]
예수님이 자신에 대하여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따라간 것처럼
세례요한 역시 자신에 대하여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따르려고 그랬는지 그는 심지어는 구약 성경이 보여주는 엘리야와 똑 같은 야인으로서 낙타 털 옷과 가죽 허리띠를 띤 복장을 하였고[열왕기하1:8. 마3:4]
이스라엘에서 우상숭배가 극에 달했던 아합- 아하시야 시대에 주의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하여 자신의 생애를 걸었던 엘리야처럼 세례요한도 동일한 심정과 사역으로 일관하였으며 엘리야가 왕의 얼굴이라도 무서워 아니하고 불같은 책망을 쏟아낸 것처럼 세례요한 역시 당대의 왕 헤롯이나 종교지도자들에게도 거침없는 책망을 쏟아내는 선지자였다.

오늘의 말씀은 거의 절반이 당대의 최고 엘리트 그룹 이자 백성들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었던 종교 지도자들에게 대한 책망이 쏟아지고 있는데[3:7-10] 이런 불같은 책망과 외침은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신적 권위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이러한 권세 있는 외침 앞에 어느 누구라도 이의를 달지 못한 것 뿐 아니라 수많은 백성들이 그의 외침에 따라 이제 곧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은혜를 입기 위해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며 세례를 받은 것을 보면[3:5-6] 세례요한의 등장이야말로 당시 이스라엘의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 사건이 된 것 같다.

그러나 세례요한이 요단강 강줄기에서도 가장 지형이 낮은 곳 겸손의 골짜기에서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에게 세례를 베푼 목적은 말 그대로 주의 길을 예비하고 닦기 위한 준비였고 기실 그의 마음에는 이제나 저제나 자신 앞에 나타나시게 될 이스라엘의 구원자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기다림 때문 이었다.

묵상적용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른 많은 묵상의 소재들이 산재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오직 한 가지 테마는 이 세례요한을 보내신 하나님의 마음을 더듬어 찾는데 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세월이 지나서 보내리라고 예고한 엘리야로서 세례요한을 보내심은 너무 오랜 기다림이 아닌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한 눈에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400년의 기다림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으나 하나님의 음성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자신들을 책망하는 선지자들의 소리라도 듣고 싶어 하며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했던 주의 백성들에게는 너무 먼 기다림이 아니었을까 반문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 기간 동안 무엇을 하신 것 일까 (?)

성경학자들은 보통 이 기간을 중간기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이 중간기 기간 동안 손 놓으시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약속하신 광야의 소리로서 엘리야와 그의 소리를 따라 오게 되는 메시야[구원자]를 등장시키기 전에 이 구원자의 복음이 온 세상 열방 가운데 퍼져나가게 되기 위한 준비를 하신 것을 인류 일반 역사에서 보게 된다.
그렇다 모든 것에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 하여도 하나님은 인류 일반 역사의 순리를 따라 자기 아들의 시대를 섭리하시며 복음의 세계화를 준비하셨다

400년이 지나는 동안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하여 서방 세계 곧 지중해 연안 국가들과 동방 세계 곧 근동지방 사이에 많은 패권 다툼이 있었고 문화 인류학적으로도 많은 지형 변화가 생기게 되는데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탄생에 즈음하여 재편된 세계 질서는 로마 제국이 유럽과 아시아를 평정함으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을 빌려 복음이 육로와 해로로 전 세계로 뻗어나갈 길을 준비하게 하셨고
또한 로마 시대 이전에 존재했던 그리스 시대의 문화유산으로서 헬라어의 등장은 오늘의 세계 공용어인 영어처럼 복음의 세계화에 기초를 놓게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시되 여자에게[여자의 후손으로] 나게 하시고 그가 준비하신 그의 시대에 그가 등장되게 하셨다.[갈4:4]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예고하신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서 세례요한이나 그가 준비하고 길을 닦은 예수님의 등장이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이 지나서 등장한 것은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 하나님은 너무 늦지도 이르지도 않는 가장 적절한 시기를 따라 그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셨으며 아들의 전령으로 세례요한을 보내신 것을 인정하게 된다.
따라서 이제 다시 오실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의 재림을 앞에 놓고서도 때로는 너무 더디 오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많이 있는데 그러나 가장 적절한 때와 시기를 준비하시어 아들과 아들의 전령으로서 광야의 소리를 보내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시대에도 복음을 위하여 보이지 않으시는 마이더스의 손으로 세계 역사의 질서를 재편하고 계시며 그날 곧 여호와의 큰 날을 준비하고 계심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 날이 이르기 전 엘리야의 심정으로 사역했던 세례요한처럼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할 사명이 우리 교회와 나 자신에도 주어졌음을 의심치 않는다. 따라서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3:3b]는 명령은

다시 오실 주님의 등장 앞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세례요한이 걸친 낙타 털옷과 가죽 띠의 상징처럼 사치와 허영을 버리고 단순한 삶을 살며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상징처럼 세상 열락에 취하지 말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향하여 세례요한과 같은 야성적 신앙과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사명을 따라서 살아야 함을 이 아침 마음 깊은 교훈으로 받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