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연합과 밤 예배에 참석하는 자들의 축복
▼ 시편 133:1-134:3
묵상내용
1. 아름다운 영적 연합의 축복 [133:1-3]
쏠로 찬양보다 합창이 아름답고 쏠로 악기 연주보다 오케스트라 공연이 더 좋은것처럼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한 가족으로
연합될 수 있는 모습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며 능력이다
세상은 자기의 수준에 맞는 사람들 끼리 어울리는 법인데
교회는 가난한 자나 부유한 자나 학식자나 무학력자나 무슨 연고를 무론하고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다는데 세상과 차이점이 있다
신약 초기교회는 노예와 상전들이 교회 안에서 형제가 될 수 있었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영적 연합은 인위적인 힘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신령한 것이기에
오늘의 말씀에서도 그것은 마치 아론의 대제사장 위임식에서 머리에 부어진
기름이 수염을 타고 흘러내려 옷깃까지 내림과 같은 기름[성령의 역사]로 묘사했고
그것은 또한 만년 백설로 덮여있는 이스라엘 북쪽의 헐몬산의 냉기가
남쪽 온난 기류쪽으로 흘러들어와 수중기가 복발되어
시온 산들에 초목과 곡식들을 영글게 만드는 이슬[성령의 역사]로 비유되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영적 연합에는 성령의 기름같은 역사와 이슬같은 역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의 교회에는 이런 영적 연합의 아름다움과 능력이 사라진것 같다
마치 대형 식당에 사람들이 들어와서 제가끔 또는 끼리 끼리 식탁에 앉아 밥 먹고
나가는 것처럼 언제부터인가 교회 공동체 연합의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있다
얼마전 목동에서 가장 큰 교회에 속하는 한 교회 장로님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교회는 한 달에도 수 백명씩 등록하는 사람들이 몰리는 교회로써
그중 절반 이상이 교회 등록하는 조건으로 주일 예배 참석외에 가정심방이나
교회 개별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건다는 말을 들었다.
예수를 믿고 교회 생활은 해야 되겠는데... 얼마나 교회 공동체에서 부대끼면서
상처가 많았으면 이런 모습들이 나올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나 서로 부딪치는 아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회의 영적 연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모난 돌이 둥글어지듯 서로에게 부딪히면서 신앙인격이
다듬어지고 마침내 주님께서 만들어주시는 영적연합의 아름다움을 이뤄낼 수 있다.
형제 연합의 어려움은 예수님의 12제자 모습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것 같다
그들은 얼마나 자주 서열싸움을 하였으며 둘 세씩 짝패로 활동하며
또 얼마나 자주 부대끼면서도 마침내 하나됨을 이루었던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후 그리고 기름같고 이슬같은 성령의 역사하심이 개입 된
사도행전의 제자들의 모습은 이전과 다른 형제애와 공동 운명체로 연합된 것을 보면
이러한 형제애와 영적 연합이라는 것도 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지는 것같다.
주님은 오늘 우리교회가 이런 영적연합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원하시고 이런 모습에
축복하기를 원하신다. 가난하여도 형제애가 돈둑한 가정들이 눈물나게 아름다운것처럼
이러한 우리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 회복되고 나타났으면 좋겠다. 주님 도와 주소서 !
2. 밤에도 주를 송축하는 축복 [134:1-3]
시편의 저자는 낮에 뿐 아니라
밤에도 여호와의 성전에서 예배하는 종들을 향하여 축복을 빌고 있다.
사실 주일 오전 예배 한 번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함에는
낮, 밤이 따로 없는 것이며 오히려 밤 시간에도 나와 주를 예배함이 중요함을 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예배시간이 하나님께 마추어 정해지기보다
우리 자신들의 편리에 마추어 시간을 정하고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한국교회에서 밤 예배가 사라진것은 이미 오래 되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을 읽으면서 밤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는 필요를 느낀다
사실 기독교의 초기 예배의 출발은 밤예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날 밤 제자들이 모여있던 다락방에 주님이 나타났으며
또 한 주일 후 다시 밤에 모여 있을 때 주님이 나타났던 것을 기념하여 초기 교회는
그 밤시간에 주님을 기념하는 성찬을 나누고 예배를 드렸는데 세월따라 변천되면서
이제는 낮 예배가 본 예배의 주류가 되고 말았다
주님과 함께 만나지고 형제들과 함께 영적 사귐을 나누는 교제와 예배는 낮 시간보다
밤 시간이 더 깊고 풍성하며 좋은 것 같다.
아무리 우리의 편리함에 예배시간을 마추었다 하여도 굳이 기독교 예배의 뿌리를
찾아보면 밤의 모임 이었음을 감안할 때 밤에 드리는 예배의 은혜를 회복해야 겠다.
누군가 우스개 소리로 한 이야기 인데 예수님이 언제 오시겠는가를 두고
" 비오는 날 수요일 밤 예배" 때라고 하였다
그만큼 주간의 한 중간에 해당되는 수요일 밤 예배는 나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교회들은 시류에 흔들림없이 주일 저녁예배를 고수하는 교회들도 있는데
나름대로 주일과 예배를 이해하는 철학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것 같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지금까지 소흘했던 밤에 주의 전에 나가는 예배를 위하여
주일 밤이든 수요일 밤이든 금요일 심야기도의 밤이든 주 중에 한 번이라도 참여하여
"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서 있는 모든 종들아 주를 송축하라"는 축복에
나도 참여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다짐한다. 주님 이 결심이 실천되도록 도와주소서 !
기도하기
시편 저자를 통하여 형제 연합의 축복과
밤에 주의 전에서 예배하는 자들의 축복을 말씀하셨는데
말씀대로 실천할 수 있는 저의 신앙과 삶이 되게하여 주소서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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