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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마태복음 *

▼ 마태복음 15:1-20 [한절묵상-15:5] 고르반 신앙 극복하기

by 朴 海 東 2016. 2. 12.

[한절묵상-15:5. 막 7:11] 고르반 신앙 극복하기

▼ 마태복음 15:1-20 (2)    참고 마가복음 7:10-13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13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이 복음서의 저자 마태는
오늘의 말씀에서 앞선 문맥과 관련하여
또 하나의 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앞선 문맥에서는 어떤 병든 자라도
예수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는 자들은
다 나음을 얻은 거룩한 믿음의 손에 대해
기록하였는데 [14:36]

오늘의 말씀에서는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 때문에
바리새인들에게 비난 받는
부정한 손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당시 민중의 지도층으로 자처했던 바리새인들은
모든 민심이 예수님께로 향하자
지도력에 타격을 입고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예루살렘으로부터 특별 조사단을 파견한 것 같다[15:1]

그들은 예수님의 지도력에 상처를 줄만한
흠을 잡으려했지만 아무것도 잡아낼 것이 없자
식사할 때 손 씻지 않고 먹는 것을 꼬투리로 잡고
이것은 장로들의 유전을 범한 것이라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시시콜콜한 문제로 달려든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법령이 아닌
인간들이 만든 장로들의 유전 정도를 가지고
시비를 걸어오는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빙자하여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을 범하고 있는 사례로서
고르반 제도[하나님께 드림이 되었으면 부보에게
공양할 필요가 없게 만든 유전]의 문제를 들어서
그들의 위선적인 죄악을 책망하신다.

오늘의 말씀과 같은 내용을 다루는 막7:11에서
고르반이란 부모에게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하는 서약문을 이용하여
부모 공경을 저버리는 반인륜적인 기만행위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맘대로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처음에 고르반 규정을 제정할 때에
하나님께 서약한 것을 지키는 자라면
당연히 부모도 공경할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점점 인본주의적 형식주의 신앙으로 흐르면서
사람들이 고르반 운운 하면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쪽으로 흐르자
유대 랍비들로선 아무래도 하나님이 우선이므로
그 명분에 반대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장로들의 유전이 기록으로 보존된 것은 2 세기경에
프린스라는 유다의 랍비가 최초였고,
8세기에 가서야 완성되는게 탈무드이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는 아직은 구전으로 전해졌고
장로들만 그 복잡한 규정들을 알고 있었기에
일반인은 매번 랍비들에게 율법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물으러 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지도력을 유지하며 기득권 유지를 위해
더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은 제쳐놓고
장로들의 유전을 고수한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사람의 교훈으로 가르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15:9]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심은 것 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것은 뽑힐 것이라고 하시며[15:13]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들이 되어
함께 구덩이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15:14]

묵상적용

고르반에 관련된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혹시 나에게는 혹은 우리 교회에는
이런 엉터리 고르반 신앙이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엄중한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인간본위의 편의주의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고르반 신앙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신앙과 삶 가운데 깊숙이 파고드는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사랑은 곧
이웃 사랑과 동일한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공경은 부모 공경과 동일한 것인데
이러한 기본정신을 무시하고
부모에게 드려야할 것으로 하나님께 드린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뻐게 받으실 것인가(?)

분명히 제사보다 자비를 원하신다고 하는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가져오지 못해도 부모에게 드림이 되는 것을
나는 원한다고 하심을 주님의 말씀에서 엿볼 수 있다.

예수님은 너희가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일이 있다면
먼저 가서 (인간)형제와 문제를 해결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하심에서
명명백백하게 하나님의 마음을 표시해주셨다.[마5:23-24]

미국 남북 전쟁이 발발하기 전 당시에
남부에 큰 농장을 가지고 있는 크리스챤 부호들은
자신들은 마차를 타고 교회에 가면서
흑인들에게는 안식일 계명이 명하는 휴일도 주지 않고
노예 제도에 따라서 노예들을 혹사시켰는데
그들은 노예제도에 따라서 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것 자체가 고르반이 된 셈이었다.

언제가 내가 잘 아는 한 장로님은 회사를 경영하면서
얻은 고수익으로 교회에 헌금은 많이 하면서
사원들에게는 월급을 적게 주므로
뒤에서 비난받는 것을 들었다.
이런 모든 것들이 현대판 고르반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우리의 신앙과 삶에
깊숙이 파고 들어와 있는
고르반 신앙의 정체가 무엇인지 잘 분별하고
나 자신을 바른 신앙에 세울 것을 마음 깊이 다짐한다.

주님!
제가 주님의 이름을 빙자하며
부모 공경이나 이웃 사랑을 저버리는
위선적 고르반 신앙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