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이름 바르게 사용하기
▼ 사도행전 3:1-10
묵상내용
앞선 문맥의 말씀에서 초기교회가 설립되어지는 모습을 설명하는 가운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라고 했는데
이어지는 오늘의 말씀에 소개된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은 그 중의 하나로 보인다
그런데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키면서 한 말과 행동이 압권으로 닿아진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 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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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입구에서 만난 앉은뱅이를 일으켰던 초기교회 때나
2천여 년의 세월이 지난 이 시대나 동일하신 주님께서는그 때나 지금이나
복음의 증거를 위하여 변함없는 은혜와 능력을 베풀어 주심을 나는 믿는다
그런데 이 시대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동일하게 사용하여
기적을 일으키고자 하는 어떤 사람들 가운데서 나타난 부작용과
또한 많은 사람들을 실족케하는 사건들을 몇 번 목격하고 경험한 나는
오늘 다시 만나게 되는 이 말씀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였던가 **에 있는 *** 교회에서 치유 세미나가 있어 큰 맘을 먹고 참석했다
강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풀러 신학에서 이 분야에 박사학위를 받고
또 이 분야에 대한 책을 저술하여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베스트 셀러가 되었으며
또 이분을 강사로 모신 집회나 세미나도 여러 곳에서 많이 진행되던 시절이었다
쎄미나를 하는 동안 낮 시간은 주로 이론에 대해 공부하고 저녁 시간은
세미나 장소를 제공한 교회의 성도들 중 아픈 분들을 나오게해서
수강생들이 실습시간을 가지게 했는데 치유간증 시간에 보면
주로 두 다리의 길이가 다른 사람들이 고침 받는 간증들이 많이 소개되곤 하였다
세미나 마지막 날이 다가와서 강사는 미리 말하기를 주변에 아픈 사람들은
누구나 데려오라 하였고 마지막 치유의 밤을 갖는다고 대대적인 광고를 하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정말 어깨와 다리를 곧게 펴지 못하는 한 절름발이 청년이
나오게 되어 강단에 올라오게 하고 치유의 시간을 가졌는데
모두 합심하여 기도케 한 후 강사는 베드로의 고백과 선언처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선포하였다
그시각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며 기대 가운데 결과를 지켜보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어께와 다리를 펴지 못하는 절름발이 청년은
강사가 시키는대로 강단의 이곳 저곳을 걸어보았지만
여전히 펴지지 않고 굽혀진 다리로 절뚝 거리며 다닐 뿐이었다
오히려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선포한 강사의 입장만 뻘쭘하게 되버린
그 난처한 상황에서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주님은 나에게 앞에 나가서
그 밤에 모인 청중들에게 내가 방금 전 기도 가운데 본 것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부담을 주셨는데
그것은 모두 합심해서 기도할 때
나는 맨 앞에 앉아서그 청년의 다리를 보면서 기도하는 중
그 청년의 굽혀진 다리가 일자로 펴지는 것을 보았고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와 ~ 라고 감탄사까지 질렀었기 때문 이었다.
나는 앞에 나서는 것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고
또 내가 나설 이유도 없는 그 자리에서
나는 주님이 주시는 부담을 떨칠 수 없어 앞에 나가
방금 전 합심 기도 시간에 내가 본 것을 말하였고
환자와 가족에게 낙심말고계속 기도하라고 격려하였는데....
나의 이 간증으로 인해 그나마 심히 어색했던 그 밤의 분위기가
그나마 부끄러움 없이 지나가게 된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나의 기도 중에서 보았던 그 청년의 다리는 고침을 받았는데
왜 실제로는 치유되지 않았는지... 지금까지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묵상적용
왜 베드로가 사용했던 바로 그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는데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곰곰이 묵상하는 가운데 내 마음에 닿아지는 생각은
우리[내]가 사용하는 주님의 이름이 거룩하고 놀라운 이름 인 것처럼
그 이름을 사용하고자 하는 우리[나]도 그 이름을 거룩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과
또 한 가지 그 이름을 사용코자 할 때에
주님이 기사와 표적을 행하실 때 했던 것처럼
그리고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사전에 하나님의 영[성령]의 교감이 있어야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예수님은 그의 입에서 나가는 말씀이나 그가 행하시는 기적 어느 것 하나도
아버지의 허락없이 하신 것이 없으신 것을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하다[요5:19, 30]
예를 들면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신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이 기적을 창출하도록 부추겼지만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의 허락 없이 스스로 하시는 분이 아니어서
(후에 기적을 나타내시기는 하셨지만 먼저는)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심으로
자신의 기적 창출이 자기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셨다.
베다니 마을의 친구 나사로를 살리러 가실 때도
사람들은 빨리 와 주시기를 기대했지만 바로 가지 않으시고
계시던 곳에서 이틀이나 더 체류하신 것도
기실 하늘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하신 것이었다.
우리가 주님의 약속하신대로 주님의 이름을 바르게 사용하기만 한다면
주님은 우리가 주의 이름을 사용하는 그 현장에
부활하셔서 하늘 아버지 보좌 우편에 계신 자신을
증명해 주시기 위해서라도 주님 자신을 반드시 나타내 줄 것을 나는 확신한다.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출20:24]
주님 !
내가 이루고 싶어하는 하는 큰 기사와 표적의 일들보다
거룩하신 주님의 이름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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