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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 열왕기하 *

▼ 열왕기하 9:1-13 하나님의 역사 심판의 칼날은 어디를 향하는가

by 朴 海 東 2016. 2. 22.

하나님의 역사 심판의 칼날은 어디를 향하는가

열왕기하 9:1-13

묵상내용

가물었던 대지에 오랜만에 단비가 내렸습니다
요즘 무서운 괴질 메르스와
오래 지속된 가뭄 때문에
이런 것이 모두 하늘이 내리는 재앙이 아니냐고
수군거리는 세간의 소리들이 들려오곤 했는데
그나마 단비가 내렸으니 숨통은 터진 셈입니다.

그래도 가뭄 해소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니
더 많은 비를 주시도록 기도해야겠고
메르스도 빨리 퇴치되어
모든 것이 정상을 찾게 되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이전 시대나 지금 이 시대나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국가적인 재앙은
자신과 자신의 치적을 반성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동일한 효력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앞선 시대, 고려나 조선의 왕들은
역병이나 가뭄 같은 국가적인 재난이 있게 될 때
아무리 악한 왕들도 기우제를 지낸다거나
구휼미 쌀을 풀어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고
혹은 억울하게 갇힌 사람이 없는지
죄수들을 석방하고 선정을 배품으로
하늘의 은총을 기대하곤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모르는 왕들이라도
자신들 위에서 세상 나라를 다스리는
하늘의 왕을 의식하고 믿었기 때문 입니다


1. 하나님의 역사 심판의 칼날은 어디로 향하는가 ?


그런데 오늘의 말씀에 등장하는 아합의 집안은
그의 아들 여호람의 시대에 이르기까지도
전혀 회개가 보이지 않았고
하나님 대신 바알을 국교로 삼아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계속 죄악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모습만 보였으니
이제 이 악의 제국도 막장에 이른 것입니다.

오므리 왕가, 아합의 집이 이처럼 악을 행하면서도
거의 50년이 가도록 내버려두시고 심판을 보류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지는데
아합의 시대에 나봇의 포도원 강탈 사건이 있은 후
선지자 엘리야의 심판 경고를 듣고
아합이 회개의 모습을 보였던 것이
그나마 한 이유라고 생각되어 지는데

그 때 하나님의 심판이 당대가 아닌
자식대로 옮겨진다고 했던 바[왕상21:29]
이제 마침내 그 때가 도달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에서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이제 곧 나타나게 되는 하나님의 역사 심판의 칼날이
아합 왕가를 치게 될 때에 그 무엇보다
아합의 아내이자 여호람의 어미인
이세벨을 심판하는 것으로 강조되고 있는데 [9:7]
이는 이 아합의 집에서 조장된 모든 악들이
악녀 이세벨을 통해서 조장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나라가 잘못되고 죄악으로 치달을 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원인을 정확히 판단하시고
정확하게 그 악의 진원지를 향해
심판의 칼날을 겨누신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역사 심판의 방법


그런데 악의 세력들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 심판의 방법은 놀랍게도
내부적인 반란과 배반을 일으키게 하여
가장 믿었던 사람을 통해
심판의 칼을 휘두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람 왕 벤하닷의 신하였던 하사엘이
배반하여 왕에게 물에 젖은 이불을 뒤집어 씌워
질식사 시킨 것이라든가 [8:15]

또 오늘의 말씀에서 소개되는 바
여호람의 신하요 부하 장군인 예후로 하여금
그 주인을 배반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칼을
대신 휘두르게 한 것을 보면

자신들이 저질렀던 비열한 방법처럼
자신들도 처단 당하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고대나 근대 현세에 이르기까지
일반 역사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며
이것은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하여도
암살자는 외부에서보다 가장 믿을 수 있는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역사 심판의 칼날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재삼 확인하게 됩니다

묵상적용


3. 심판은 곧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에서 특별히 관심을 끄는 것은
선지자의 제자 중 하나가 예후를 찾아가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이미 아합의 집에 내렸던 심판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면서 집행하였다는 것입니다.[9:6-10]

이미 예고되었던 이 심판의 말씀은
아합의 이세벨에게 악의 충동을 받아
나봇을 죽이는 무서운 죄를 저질렀을 때
엘리야를 통하여 전달되었고 [왕상21:17-26]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죄악을 고발하러
호렙산에 갔었을 때 심판의 도구로 사용될
“예후”라는 사람이 이미 언급되고 있다는 것과

이 심판의 전달은 엘리야에게서 엘리사에게 전달되었고
이제 엘리사 선지자의 제자[청년]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고 집행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한 번 말씀하신 심판의 선언은
시간이 좀 지체 되는 것 같아도
반드시 집행되고 성취된다는 것을 재삼 확인하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미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심판 언도는
시간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이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유효한 말씀이요
심판 선언이 된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갖게 합니다.

풀은 마르로 꽃은 시드나
살아있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하니하고
이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악을 샅샅이 찾아내어
마침내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영원히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4. 말씀 전달자들에게 요구되는 깨어있는 영성


그런데 오늘의 말씀에서 가장 크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엘리야에게서 엘리사에게로 전달된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
선지자의 제자 중 하나인 청년에게 전달되어 이 말씀의
마지막 집행자가 되었을 때
그는 선지자 엘리사의 말처럼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될 예후에게
이 모든 말씀의 전달과
왕으로 기름 부음의 집행을 속전속결로 진행한 것입니다

때는 이스라엘이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우는 전시였고
당시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부상은 입어
부상 치료를 위해 이스르엘로 내려가 있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을 호령하는 실세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왕의 기름을 붓는 일을
공개적으로 했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반역이 될 것이기 때문에 비밀리에
그리고 신속하게 집행하고 도망한 것입니다 [9:10]

그러나 오늘의 말씀에서 이처럼 선지자의 제자가
이처럼 신속하게 속전속결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야 했던 이유는 더 깊은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선지자 엘리사가 이 사명을 선지자의 제자에게
맡기면서 지체하지 말라고 했던 시점을 보면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서
이스르엘 이라는 도시로 내려왔는데

이곳 이스르엘은 나봇의 포도원이 있던 곳으로
나봇이 조상의 지계석[땅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자신의 포도원을 지키다가
억울하게 죽었던 장소인 바로 그 이스르엘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때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에 대하여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 너의 피도 핥을 것이고
특별히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의 몸을
개들이 먹을 것이라고 했는데 [왕상21:23]

이 예언이 그대로 응해지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왕이 수도 사마리아가 아닌
자신의 여름 별장이 있는 이스르엘로 내려와야 하고
또 그 아들의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그 어머니 이세벨이 그곳으로 동시에 내려오게 되는
이 모든 것들이 맞아 떨어지는 것을
선지자 엘리사는 간파하였고 그 때가 곧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는 때로 알아서
자신의 제자 청년에게
신속히 이 일을 진행시키라고 명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때와 시기를 간파하고
신속히 진행하였던 엘리사의 예민한 영성은
오늘 이 시대에 내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깨어 있어야 하는 영성이 되어야 하는 것을
이 아침 마음 깊은 각성으로 받아 드립니다.

주님 !
이미 주신 말씀 앞에
늘 깨어서
때와 시기를 분별하며
지혜롭게 행할 수 있는
말씀의 종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