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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마태복음 *

▼ 마태복음 21:1-11 주님을 등에 태운 나귀처럼이라도 되고 싶어요

by 朴 海 東 2016. 2. 26.

주님을 등에 태운 나귀처럼이라도 되고 싶어요

▼ 마태복음 21:1-11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 마태복음 21:1-11

1. 크로노스[물리적 시간]에서
---카이로스[의미있는 시간]으로 들어가기

예수님의 마지막 전도여정이
예루살렘을 목전에 둔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두 가지 돌출 행동을 연출하십니다.

한 가지는 맞은 편 마을로 가서
매어있는 나귀와 나귀 새끼를 풀어서 가져오라 하시고
또 한 가지는 그 나귀에 타시고 왕의 환호를 받으시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 입니다.

이 복음서의 저자 마태는 당시엔 예수님의 이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후에 깨닫게 되었고
이는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예언이[슥9:9]
이렇게 자신에게 적용되도록
성취하신 것이라고기록하고 있습니다.[21:4]

예수님은 자신의 지상 생애를 마감하는
마지막 일주일을 앞에 놓고[요12:1]
십자가가 기다리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기 전
먼저 베다니에 들려서 사랑하는 나사로 가정에 들려
마리아를 통해 자신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향유 부음을 받으시고[요12:1-8]

이어 벳바게에 이르러서는 나귀 새끼를 타시고
메시야적 왕의 환호를 받으며 입성하는 것 입니다.

평소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지극히 꺼려하셨고
표적을 행했을 때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시며
조용한 거리의 전도자로 자처하셨던 예수님이
왜 이번만큼은 지금까지의 모습에서 돌변하여

마치 전쟁 발발 시에 전쟁 물자를 징발하듯
나귀와 나귀 새끼를 자기에게로 끌어오라 하시며
또 자기 백성의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
군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입성하는 왕처럼
특이한 연출을 하신 것은
정말 신비 중에 신비에 속하는 일 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
지금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간파하시고
이 물리적 크로노스의 시간 흐름 속에서
그 시점에서의 의미를 충분히 살려내기 위해
카이로스[의미가 부여된 시간]으로 들어가신 것이며

또 특별히 곧 자신에게 닥치게 될 십자가의 죽으심이
어느 한 구석에서 은밀하게 묻혀 지는 사건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알게 되기를 바라셔서
이렇게 온 성이 소동하게 되도록 까지 하시면서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신 것 입니다[21:10]

자신에게 주어진 물리적 크로노스의 시간 흐름 속에서
자신이 지금 어느 시점에 와 있고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철저히 계산하시면서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창출하시는
예수님의 시간 사용법을 나도 잘 배워서
나도 나에게 허락된 인생의 날들을
낭비하지 않고 의미 있게 보내고 싶습니다.

내 인생 중장년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요즘은
지난날들을 돌아보는 일들이 부쩍 많아졌으며
이제 나도 내 인생의 남든 날들을 계수하며
지금 내 나이 ** 살에 걸 맞는
의미 있는 시간을 살기 위하여
예수님처럼 물리적 크로노스의 시간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들어가야할 것을 마음 깊은 교훈으로 받아드립니다.

묵상적용

2. 주가 쓰시겠다 하라. [21:3]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보낸 자신의 일생에서
철저하게 무소유로 사신 분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자신의 몸에 걸친 옷 한 벌과 샌들 한 켤레가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맑고 청빈한 무소유로 일관하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전도여행 하시면서
어느 누군가의 집에서 유숙하게 되는 때도 있었지만
거리에서 노숙하는 경우도 종 종 있었을 테고

먹을 것이 없을 때는 밀밭 길로 지나가며
이삭을 흩어 먹기도 하시고
때로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기는
어떤 여인들의 헌신으로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눅8:3]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의 일생을 들여다보게 되면
자신의 것으로가 아닌 자신을 위해서
하늘 아버지께서 예비해 주신 것들을
누리며 사용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지금 예루살렘 입성을 앞에 놓고도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
나귀 새끼가 꼭 필요했는데
꼭 필요한 시점에 이르러서는
그 것이 메어있는 마을에 당도하여
제자 둘을 보내서
그 나귀를 끌어오게 하여 사용하시고

또 유월절 절기를 신약의 성찬식으로 바꿔주시는
최후의 만찬을 위해서 식사자리가 필요했을 때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 물 한 동이 지고 가는
여인을 따라가게 하시어
미리 예비 된 다락방을 사용하시며 [눅 22:7-13]

십자가 죽으심 후에는 아리마데 요셉의 새 무덤을
자신의 무덤으로 사용하시게 될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위해서
예비 된 것들을 사용하시게 됩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기신 일들을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과정과 시간들 속에서
필요한 것들이 많고 많았겠지만
하늘 아버지께서 예비해 주신 어떤 사람들이
그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데 쓰임받는 것을 보면서

오늘 나도 가진 것 없는 사람이지만
나도 나귀와 나귀 새끼의 주인처럼
주님을 위해서 예비 된 사람이 되고
주의 나라를 위해서 예비 된 것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은혜를 받고 싶습니다

나 가진 것 없어서 내 놓을 것이 없다면
주님을 등에 태운 나귀 새끼처럼 이라도
나의 인생이 사용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가장 큰 영광이 되겠습니다.

주님 !

나 주님께 드릴 아무 것도 없지만
주가 쓰시겠다는 말씀을 들려오실 때
주님을 등에 태운 나귀처럼 이라도
내 인생과 삶을 드릴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