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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마태복음 *

▼ 마태복음 22:15-22 목숨을 거는 소신 발언을 위하여

by 朴 海 東 2016. 3. 2.

목숨을 거는 소신 발언을 위하여

▼ 마태복음 22:15-22

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 마태복음 22:15-22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서 나타난 백성들의 환호와 성전청결 사건 그리고 매일 성전에서 가르치신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그동안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유대 사회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세력들에게 큰 위협으로 닿아졌고 이것은 마침내 예수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이 서로 야합하는 상황에 까지 이르게 된다. [21:15-16]

세상에서 더럽고 비정한 것이 정치라고 했던가, 바리새인들은 평소 정치 세력들에 대해서 상종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지만 이제 예수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공생공존 관계가 되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어서 제거시키려는 함정을 파게 된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라는 질문 속에 담겨 있는 함정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은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고 그 돈에 그려져 있는 초상[로마 황제 가이사의 초상]대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하신다.[22:19-21]

만일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한다면 로마 정부의 권력을 부정하는 것이 되어서 사형 죄목이 되고
만일 세금을 내라고 한다면 로마 정부를 위하는 반역자로 몰아서 지금 백성들로부터 받고 있는 인기와 환호를 한 방에 무너뜨릴 수 있는 이 함정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그야말로 이 양자의 위협을 모두 다 피해갈 수 있는 지혜로운 답변으로 위기를 벗어나신다.

왜 에수님은 이렇게 피해가는 답변을 하셔야 했을까?
이미 자신에게 서서히 옥죄어 오고 있는 십자가 죽음을 앞에 놓으시고 이런 시시콜콜한 질문으로 만들어지는 올무에 걸려서 죽으시기보다 더 크고 중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죽으셔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예수님을 십자가 사형으로 몰고 간 질문은 정작 때가 되었을 때 유다의 종교를 대표한 대제사장에게서 나오게 된다.

대제사장: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고 네게 묻노니
네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마26:63]

예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게 되리라[마26:64]

대제사장: (자기 옷을 찢으며)
저가 신성모독하는 말을 들었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그는 사형에 해당 하니라 하고 [26:65]

묵상적용

무릇 죽음을 각오하는 소신 발언은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아도 좋을 만큼 가치 있고 무게 있는 발언을 해야 할 때 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몇 일 동안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으로 촉발된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는 여당의 공세에 맞서서 야당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무려 연속해서 185시간을 진행하는 것을 틈틈히 국회방송으로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 국민들의 눈에 보여 지기에는 맨 날 싸우는 국회로만 보였는데 왜 야당의원들이 저렇게 몸을 던져서라도 막으려고 하는가에 대한 진정성을 보는 것 같았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테러방지법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테러 방지법 속에 교묘히 부칙으로 들어가 있는 국정원의 국민 감시권이 국민들의 인권과 삶에 미칠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야당은 여당에게 독소조항을 수정하는 대화를 촉구한 것 같은데
내 눈에 비쳐지기에는 마치 계란으로 바위치기 식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과거 국정원에 의해 저질러진 수많은 해악한 일들을 고려해볼 때 국정원의 국내정치 간섭을 막고자 하는 야당의원들의 저항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한 편 내 마음 속에는 여당 의원들 중에서 혹은 여당 내 중진 의원들 중에서 그 누구 한 사람이라도 이 법이 안고 있는 위험성을 지적하고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라도 소신 발언을 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나올 수 있다면 좋으련만 어찌 이렇게 단 한 사람도 나오지 못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중에 65% 이상이 기독교인이라고 하는데 여당 내 국회의원들 중에서 당리당략을 떠나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소신 발언할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었을까 의구심을 갖기도 하였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라고 말씀하심으로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말씀하시면서 그러나 또한 이 두 가지 영역이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암시하시기 때문에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에서는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반대하지만 기독교인이 개인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찬성하는 길을 열어놓고 있음을 감안할 때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 나라 사상으로 무장된 단 한 사람의 정치인이라도 있어서 자신이 속한 정당의 당리당략에만 끌려가지 않고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거는 소신 발언이나 기자회견으로 나선다면 이 소통이 막혀있는 정치판에 조금이나마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이 야합이 되어 자신을 죽이려는 말의 올무를 간파하시며 피해가시되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질문에 대한 소신발언으로 자신의 생명을 걸었던 예수님을 생각해보면서 정치와 종교 곧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는 어디까지인가를 생각해보는 오늘의 묵상은 왠지 모르게 답답함으로 마쳐지게 되는데 아마 필리버스터가 마쳐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한 것 같다.

주님!
이 세상에 계실 때
반대자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받으셨고
그 때마다 지혜롭게 피해 가셨지만
가장 중요한 싯점에서
가장 중요한 답변을 해야하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거셨던 그 소신발언의 용기를
나도 잘 배우고 따라가는 신앙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