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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베드로전서*

▼ 베드로전서 3:13-22 거룩한 고난에 참여하는 은혜를 주옵소서

by 朴 海 東 2016. 5. 6.

베드로전서 3:13-22  거룩한 고난에 참여하는 은혜를 주옵소서

오늘의 말씀이 보여주는 화두는 단연 "고난"입니다.
믿음을 지키는 것 때문에 고난을 당할 때
그 고난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며
그 고난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는지 
베드로를 통하여 전달해 오시는 주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1.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 것 [3:14]

2. 고난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이겨내는 모습을 보고
---고난도 넘어서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고 있을 것[3:15] 

3. 악한 세상에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을 뜻임을 알 것[3:17]

4. 모든 고난에는 목적과 뜻이 있다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을 본으로 삼을 것[3:18]

베드로 사도가 이 편지를 쓸 당시 초기교회의 형편을 보면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로마 제국의 통합과 일치를 위해
로마 제국 치하의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황제 숭배를 강요하고 황제 숭배의 증표를 받게 했는데 
따라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우상숭배를 하지 않기 위해 
로마 제국의 조직적인 박해를 피해 
사방으로 흩어져 거류민과 나그네로 살아야했던 것 같다.

더불어 그들은 가는 곳 마다 제국의 법률에 충성하지 않으며 
동화되지 않는 특이한 사람들이라고 고난을 받은 것 같다. 
당시 초기교회 성도들이 특히 오해를 받은 것은
모일 때 마다 성찬 의식을 행한 것인데 
그들이 함께 나누어 먹는 성찬의 떡과 포도를 오해하여 
어린 유아들의 살해하여 피를 나누어 마신다는 
악성 루머가 퍼져서 더욱 고통을 받았다는 것을
초기교회 변증 가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아래서 사도 베드로는 각처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굴하지 말고 믿음을 지키며 
오히려 선한 양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자들이 됨으로써 
너희를 비방하는 자들이 
도리어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라고 권면한다.[3:16]

더불어 베드로 사도는 우리보다 앞서 가신 주님께서
선을 행하심으로 고난을 받은 것을 일깨우며
죄를 위하여 단번에 죽으셔서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신 그의 고난이
우리의 구원을 이룬 것을 일깨우며 [3:18]

그의 십자가 죽으심의 고난과 부활이 가져온
악에 대한 승리가 하나님의 구속역사에서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강조하는데 

그것은 성경이 제대로 없던 초기교회 그 당시에
성도들에게 자주 인용되었던 노아시대 홍수심판 이야기를
여기서 교범 적으로 인용함으로써 
악은 반드시 심판 받으며 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여기서 정말 난해한 한 구절을 만나게 되는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후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서 
선포[한글개역: 전파] 했다는 것인데 [3:19]

천주교에서는 이 구절을 인용하여 연옥 설을 주장하며
죽은 자들이 다시 옥에서도 복음을 듣고 
천국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교리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구절은 문맥상 흐름을 볼 때 
이렇게 한 구절만을 따로 떼어서 해석할 구절이 아니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죽음에 까지 내려가셨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그가 부활하심으로 악을 이기고 승리하심을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에게만 아니라 
지옥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도 선포하셨다는 것으로 
받아 드리는 것이 문맥상 무난한 것으로 받아 드린다.

묵상적용


------ 세례에 대한 소고 [小考] -------

그러나 오늘의 말씀에서 사도 베드로는 
여기서 자신의 이야기를 끝내지 않고 
자신이 교범적 교훈으로 사용했던 노아홍수 사건을
재인용하여 노아 홍수심판에 담겨있는 
영적 의미를 전달하는데 
물이 악인들을 심판하는데 사용된 것 뿐 아니라
반대로 초기 교회가 성찬식과 더불어 자주 집례 하였던 
세례식에서 물이 가진 의미도 밝히고 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3:21]


노아 홍수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물이었지만 
노아의 가족에게는 구원의 물이 되었기 때문에 
베드로는 여기서 물을 구원하는 표인 세례라고 말한다.

더불어서 이 세례가 담고 있는 의미도 전달했는데
그것은 세례를 통하여 법정적 칭의를 얻게 되지만
성화적 관점에서 볼 때는
이것이 육체의 모든 더러움을 제거시킨다고 보기보다 
[Not the removal of dirt from the body: NIV version]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받아 드리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한글 개역]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세례를 받은 성도는 그의 영혼은 구원을 받았으나
그가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에 살아가는 날 동안
그이 몸에 잔존하는 죄의 영향력은 여전히 남아서
성화 적 분투의 삶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성도는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화성장을 
이루어가야 하는데 이미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께 향한 선한 양심이 회복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며
그가 비록 성화의 과정에서 많은 굴곡을 경험하겠지만
반드시 악을 이기고 승리하게 될 것인데
이는 주 성령의 내주하심과 이끄심을 통해
마침내 성화의 완성점인 영화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연약한 육신을 입고 신앙생활 하는 것 때문에
자주 넘어지고 좌절하는 일들도 발생하겠지만
그럴 때에도 결코 낙심하지 않고 일어서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셔서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나]를 대신하셔서 
나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이다[3:18]

세칭 구원파에 속한 사람들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죄를 짓고 참회하며 
자백을 자주 반복하는 것에 대해
인간 자존심을 상하는 것으로 받아드려서 그런지
한번 속죄는 영원한 것이므로 
죄를 지어도 그것은 죄가 아니며
자백도 필요 없다고 가르치는데 
이는 베드로 사도가 가르치는 바 
세례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간과하는 것이다

세례가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라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라 했으니 
세례로부터 시작되는 성화 성장의 과정은
성도에게 필수적인 것이며
하나님께서 성도가 죄 가운데 농락당하는
고통과 아픔을 아시면서도 약함 가운데 두신 것은
그가 평생에 주를 의지해서만 살게 하려 하시는 
그의 영원하신 지혜에서 나온 것이라고 이해한다.

주님!
우리는 평안한 시기가 오래 갈 때
영적으로 태만해지며
세상과 동화되고 죄에 빠지는
간사한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며
때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를 배우게 됩니다.

고난은 아픔이고 
나에게 없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이 고난을 통하여 
성도가 몸의 사욕을 쫓는 죄에서 떠나게 되며 
오직 주님의 위로를 구하고
주님만 의지하게 되는 
영적 묘약도 된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나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
이 고난에 담긴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잘 분별할 수 있게 하소서

그러나 이왕이면 내가 죄를 지어 고난 받기보다 
선을 따르고 의를 행하는 것 때문에 
세상에서 미움 받고 고난을 받을 수 있는 
영적 수준에 이를 수 있게하시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본으로 삼는 
나의 신앙과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