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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느헤미야

▼ 느헤미야 3:1-14 하나님이 주시는 고생에 참여하는 은혜

by 朴 海 東 2016. 6. 4.

하나님이 주시는 고생에 참여하는 은혜

느헤미야 3:1-14

묵상내용

[오늘의 말씀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하나님의 사람 느혜미야의 감동적인 비전 공유와 성벽 건축의 제안으로 하나님의 감동에 전염된 사람들이 일어나서 드디어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 성벽 건축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 역사적인 성벽 건축 공사는 이미 에스라가 주도했던 사업이었는데 느헤미야의 새로운 도전 세력인 산발랏과 도비야 이전에 에스라의 도전 세력이었던 르훔과 심새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성벽 재건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려서 역사를 중지시킨 이후 다리오왕 2년 까지 오랫동안 중지되고 있었다[스4:23 -24]
그 때 심새와 르훔은 이 조서를 앞세워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벽들을 허물고 성문을 불태우면서 강제로 역사를 중단하게 하였는데 느헤미야는 이 슬픈 소식을 듣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끓고 기도하게 되었으며 에스라가 시작하였다가 중단되었던 공사의 연장 선 위에서 다시 성벽 건축이 시작된 것이다.

오늘의 말씀과 이어지는 3장 전체에서는 성벽 건축 공사가 총 45개 지역에서 진행된 것을 밝히며 이 작업에 참여한 주요 인사 40여명이 소개되고 있고 특히 적들의 공격 목표가 되었던 열 개의 성문들이 뚫리지 않도록 튼튼하게 보수작업을 하게 되는데 그 문들의 이름은 북동쪽에 위치한 양문으로부터 시작하여 반 시계 방향으로 어문-옛문-골짜기 문-본문-샘문-수문-마문-동문-함밉갓문으로 이어진다.[3:31]

그런데 느헤미야가 외친 성벽 쌓기 공사에 가장 먼저 호응하고 나선 사람으로써 대제사장 엘리아십과 제사장들이 소개되고 있는 것은 정말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2세대가 조상들의 실패를 뒤로하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을 때 요단강물을 건너야 하는 도강 작전에서도 가장 먼저 제사장들이 강물로 들어가서 역사적인 도강 작전을 성공하게 하였는데 지금 하나님의 도성을 방어하는 성벽 건축 공사에서도 이들 제사장들이 앞장서고 있는 것을 볼 때 이 대 역사가 반드시 성공하게 되리라는 암시를 받게 한다.[3:1]

그런데 여기 제사장 구룹에서 주도적인 역활을 한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1차 귀환 때 여호야긴 왕의 손자로서 예루살렘의 총독으로 내려온 스룹바벨과 협력하여 한 축을 이루었던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손자인데 대를 이어서 헌신하며 충성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더불어 오늘의 말씀에서 특별히 눈여겨 보게 되는 구절은 양문을 중심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는 공사의 연장선상에서 여덟번 째 구역에 해당되는 드고아 사람들의 공사장에서 테클이 걸리고 있는 점이다.
이 공사장에서는 가장 앞장 서서 본을 보여야 할 귀족들이 공사 전체를 감독하고 진행시키며 조언하는 슈퍼 바이저의 지도력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지만 공사의 분담을 거절한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들은 예루살렘을 둘러쌓고 있는 거대한 성벽 공사 전체의 흐름을 역행할 수는 없어서 그랬는지 단지 자신들이 나서면 좋을 역활에서 빠진 것으로만 소개되고 있다.[3:5]

그런가하면 열한 번째 구역에서는 금장색 웃시엘이 주동이 되었고 그 다음 구역에서는 향품 장사 하나냐 등이 중수했다고 하는데 이들의 직업까지 밝혀가면서 공사에 참여한 헌신을 기념해 주는 것은 추측컨데 그들이 자신들이 가진 부와 재력을 보람있게 사용하여 사회적 책임으로 환원시킨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다.[3:8]

또 열여섯 번째 구역에서는 예루살렘의 절반을 다스리는 살룸이 그의 딸들과 함께 공사에 참여한 것을 밝힘으로서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 성벽 공사에는 남녀노소 구별없이 모두 헌신적으로 참여한 것을 엿보게 한다.[3:12]

오늘의 말씀에서 마지막으로 소개되고 있는 열여덟 번째 구역에서는 하눈과 사노아 주민들이 이 공사에 동원되어 네 번째 문이 되는 골짜기 문을 중수함과 아울러 또 그다음 다섯번째 문이 되는 본문까지 무려 일천 규빗[약 5KM]나 되는 긴 구역을 건축했음을 밝히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아마 에스라가 주도했던 성벽 공사 때 이 부분은 그나마 많이 남아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 [3:13]

묵상적용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고 정리하면서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아쉬운 여운으로 남겨지는 대목은 이 역사적인 성벽 건축에 의도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고 하는 드고아의 귀족들이다.
왜 그들이 참여하지 않았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진행시키고 있는 대 역사에 그들은 참여하는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애석함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 공사를 위하여 손에 진흙을 묻혀가며 땀 흘리는 것이 고생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은 일생일대에 두 번 다시 기회가 찾아올 수 없는 특별한 기회라고 생각할 때 고생에 참여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고 고생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곧 은혜에서 제외된 것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천추의 한이 될 만한 일이 될 수 있다.

오늘의 말씀에서 성벽 건축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구역 마다 열거되고 있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이들의 수고와 헌신을 인정해 주시고 기념해 주신다는 표시로 이렇게 성령께서 이 책의 저자 느헤미야를 감동하여 기록케 하신 것을 감안할 때 나에게 고생이 되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만사를 제쳐놓고서라도 끼어드는 욕심을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것이 때로는 성벽 공사에서 보는 것처럼 나의 신체적 노동을 필요로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때로는 나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바울의 편지 글에서 보게 되는 것처럼 헌금에 참여하는 은혜 일 수도 있다.[빌1:29]

주님!
나의 영혼이 둔감하여
나에게 찾아온 은혜에 참여하는 기회를
결코 놓치는 일이 없도록
내 영혼이 항상
스치는 바람결에도 놀랄 만큼
주님 앞에 민감한 영성으로 깨어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