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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시편

▼ 시편 69:1-12 까닭 없이 미움을 받으며 원수가 머리털 보다 많을 때

by 朴 海 東 2017. 12. 18.

까닭 없이 미움을 받으며 원수가 머리털 보다 많을 때

시편 69:1-12

묵상내용

앞선 시편 68 편이 하나님께서 친히 앞서 행하시며
큰 일을 행하시고 승리를 주신 것에 대해
환희와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찬양 詩 이었는데

오늘의 詩69편은 깊은 수렁에 빠진 것 같은 절망 속에서
아무리 하나님께 부르짖어보아도 응답이 없는
쓰라린 고통과 슬픔을 끌어안고 드리는 비탄 詩 입니다.

산이 높으면 산과 산 사이 골[계곡]도 깊다고 했던가(?)
시인은 기쁨과 찬양이 넘쳤던 시편 68편 은혜의 정상에서
지금은 시편 69편의 절망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져
헤어날 수없는 깊은 수렁에 빠져들면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 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물이 내게 넘치나이다[69:1-2]


여기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들어왔고
내가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져
큰물이 내게 넘쳤다고 하는 고백은[요나 2:3]
요나가 바다에 던져 졌을 때 드렸던 기도를 연상케 하는데
하나님 밖에는 탈출구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시편 저자의 더 큰 절망과 고통은
목이 마르고 피곤하도록 부르짖고 기도해보아도
기도에 너무 진력하여서 눈이 쇠하도록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답변하지 않는 소통부재의 고통 입니다.[69:3]

시인은 까닭 없이 자신을 미워하는 자들이 머리털보다 많고
어제의 동료가 원수가 되어 배반하고 죽이려고 하며
자신이 도둑[횡령 죄]로 몰려 억울한 누명까지 뒤집어쓰고
수치를 당하게 되었음을 토로하는데[69:4]

아마 이러한 내용들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국가 영웅이 되어 사울의 치세 아래 신하가 된 후
한 때 잘 나가며 승승장구하는 것 같았다가
시기와 미움과 살해 위협을 받아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을 때
헤어날 수 없는 고통 가운데서 나온 詩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이 당면한 절망적인 상황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 근심하게하며 옥죄는 더 큰 고통은
어제 은혜의 높은 정상에 올랐다가
오늘 처참한 나락에 떨어진 자신의 초라한 모습과
애써 기도해 보아도 응답을 받지 못하고 쓰러져가는 자신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소용없다고 하는
신앙 무용론에 빠질까봐 심히 근심하고 염려하는 것 입니다.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소서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69:6].


오늘의 시편 69편을 묵상하면서 이 詩가 시편 22편과 함께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관련되어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데
이어지는 몇 몇 구절에서도 확인하게 되는 바
특별히 주의 집을 위한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69:9]
는 말씀은
요한복음 2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성전 청결사건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도의 신앙과 삶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고통의 여러 유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데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자신이 자초하는 고통이 있는가 하면
오늘 이 시편의 저자나 예수님의 경우처럼
혹은 욥이나 거룩한 성도들이 당면하는 어떤 고통들처럼
하나님의 깊은 뜻 가운데 주어지는 고통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묵상적용

어제 주일 동네 교회에서 CCM 가수 박종호 장로를 초청한
음악회에 참석해서 그의 간증을 듣고 생각하는 바가 많았습니다.
그는 지난 해 간암 판정을 받고 죽음 직전까지 갔던 사람인데
한 때 115 KG까지 나가는 거대한 몸집으로
그가 관현악단과 함께 피아노 옆에 서면
마치 무대가 꽉 차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75Kg의 체형으로 감량되어 이 자리에 섰다고 했습니다.

보통 공연을 하고 나면 갈비를 10인 분 이상은 먹어야했고
원두커피는 쓰게 먹는 것을 절대 싫어했으며
설탕을 몇 숟가락 씩 넣어야 했고
믹스 커피는 적어도 여섯 일곱 개는 풀어서 먹어야
적성이 풀렸다고 할 만큼 입맛대로 살았던 사람인데
지방 간 수치가 높아져 죽음 직전까지 간 것 같습니다.

그는 막내딸의 간을 1Kg 이식 받아서 살아났기 때문에
딸 잡아 먹고 이 자리에 선 사람이라고
딸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토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한 간증 가운데 마음 깊이 남은 것은
솔직히 자신은 죽음을 받아 드리고 삶을 포기했는데
하나님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살려 주셨다는 것이며
이것이 나는 포기해도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더불어 그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도 남겼는데
여러분은 자신과 같은 은혜는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마 자신이 몸 관리를 못하고 엉망으로 살아서
스스로 자초한 고난이고 죽음의 상황이었던 것을
반성하고 자책하는 것으로 받아 드렸습니다.

극적인 상황에서 구원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도들이 자신과 같은 막장 상황까지 가지 않고도
평소에 소소하게 살아가는 삶의 일상에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감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이제 오늘의 묵상을 접으면서 마음 깊이 남겨지는 한 구절은
내가 시편의 저자처럼 혹은 예수님의 경우처럼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 보다 많고
나에게 누명이 씌워지며 온갖 비방이 난무할 때
나는 과연 어떻게 하여야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최근 어떤 분과 전화상으로 크게 다투고 화를 낸 적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지 오늘의 이 말씀의 테마는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데
성도가 까닭 없이 고통을 당하며 억울함을 당할 때
나를 그 자리에 두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하며
이러한 고통들을 기도의 자리로 가져가야하고
또 때로는 기도 가운데서도 알려주지 않으시는 이런 고통들은
내가 주님의 십자가로 가지고 갈 때에
거기 십자가 아래서
왜 나에게 이런 고통과 누명과 억울함이 왔는가를
이해하고 받아 드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주님!
아직 나에게는 신앙의 깊이가 없어서
나에게 오는 고난이 싫다고 하며
이 고난 속에서
나를 깊이 있게 만드시려는
주님의 더 깊은 은혜를 거절하곤 하였습니다.

주님!
시편의 저자를 깊은 고난 가운데 두신 이유와
우리에게 오셔서 까닭 없는 미움을 당하시며
억울한 누명과 비방을 십자가로 가지고 가신
주님의 마음을 내가 배울 수 있게 하옵소서.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과 논리로 지기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을 통해서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주님의 깊은 뜻이
전달될 수 없다는 나의 민천 함을
오늘의 말씀 앞에서 부끄러워하며
이제는 고난을 통하여 더 깊은 신앙으로 이끄는
주님의 손길에 나를 맡길 수 있게 하옵소서

세상의 모든 쓰레기와 찌기들을 담고 오는
강물들을 끌어 담는 바다의 넉넉함을
내가 고난의 강물과 그 강물들이 흘러드는
은혜의 바다에서 그 무한 깊이를 배울 수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