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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역대상

▼ 역대상 1:1-4:43 역대기[Chronicles]를 시작하면서

by 朴 海 東 2018. 8. 22.

역대기[Chronicles]를 시작하면서

역대상 1:1-4:43

묵상내용

1. 역대기[Chronicles]를 시작하면서

바울의 선교 루트를 따라갔던 사도행전 묵상이 끝나고
오늘부터는 역대기[Chronicles]묵상에 들어간다.

그런데 “날들의 말들(사건들)”이라는 뜻을 가진
역대기라는 이름에서부터 이 책이 주는 의미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포로에서 돌아온 에스라가 이 역대기에 이어서
에스라를 쓰면서 이스라엘의 포로 전후의 역사 전체를
망라해서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 역사의 날들은
그냥 흘러온 시간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도해 오신
무한 의미를 담고 있는 시간과 날들의 말들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뜻으로 역대기[Chronicles]로 명명한 것 같다.

세상에는 두 개의 시간이 존재한다.
곧 시계의 분침과 시침이 돌아가는 일반적 시간의 흐름으로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이 있고 그 시간 속에
의미를 담고 있는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이 있는데

역대기 저자와 이 책을 정경에 포함시킨 하나님의 사람들이
카이로스가 아닌 크로노스[Chronicles]의 시간으로
역대기라는 이름을 표시한 것은 이제 펼쳐지는 역대기의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이름과 이야기들로 나열되고 있지만
이 것은 하나님께서 이끌어 오신 시간과 날들의 이야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받아드리며 묵상에 들어가게 한다.

2. 이 책의 1차적 독자들이 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본 역대기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오게 된 유대인들은 힘을 다해 성전을 건축했지만
여전히 자신들은 바사 제국의 지배 아래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존재의미와 이유를 갖지 못했고
하나님의 백성 유다 민족이라는 정체성에도 혼란이 왔다

그 찬란했던 우리 조상 다윗의 왕국은 어디로 간 것인가?
하나님께서 약속했던 그 다윗의 위[位]는 어디로 가고
우리는 이렇게 초라한 민족으로 전락한 것인가?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인가?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셨던 언약은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우리가 지은 이 성전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의문들 가운데서
학사 에스라가 전하는 이 역대기의 이야기들은
말 그대로 지난날들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셨던 은혜를 다시 상기시키며
그들은 여전히 다윗 언약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확신시킨다.

따라서 지난날들의 말들(사건들) 이라는
크로노스의 시간으로 표시된 이 역대기 묵상을 통해
비록 오늘 나의 현실은 초라하게 보여도
내가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의 장중에 들어있으며
나의 삶은 존재 이유와 의미를 가지고
소망을 향해 나가고 있는 삶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거울로 삼으며 묵상에 임해야할 것을 배운다.

기도하기

3. 창세기 족보 요약을 따르는 선택받은 백성들 [1:1-2:2]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야곱]의 아들들까지의 족보인데
전체적인 배열을 보면 창세기의 구조와 순서를 따르고 있다
창세기에 나타난 족보의 배열을 보면
선택된 자들과 비 선택 자들을 상호 교차적으로 배열하고 있는데
비 선택된 자들은 선택 된 자들 앞에 두어 짧게 처리하고
선택된 자들의 계보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길게 기록한 것 같이
여기 역대기에서도 같은 배열 구조를 따라가고 있다.
특별이 하나님의 창조하신 첫 번째 사람 아담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이스라엘이 창조주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인 것을 강조한다.

이 첫 번 째 장르에서 가장 많은 지면을 활애하고 있는 것은
아담의 열 번째 후손인 노아시대에 이르러 함/셈/야벳의 족보가
비교적 길게 이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인간 반역의 극치였던 바벨탑 사건을 연상케 하는
함 자손 구스의 아들 니므롯에 대한 이야기와 [1:10]

셈 자손 아르박삿의 아들 셀라가 에벨을 낳고 그의 이름을
벨렉이라 지었으며 이 때 세상이 나뉘어졌다는 이야기는[1:18]
하나님의 뜻을 놓고 서로 충돌하는 양상을 보는 것 같다.

하나님의 뜻은 아담의 후손들이 온 세상을 정복해 흩어져 가는 것인데
함 자손 구스의 아들 니므롯은 하나님의 뜻에 정면 도전하여
사람들이 흩어져 나가지 않고 거대한 인간 왕국을 건설하고자
바벨탑과 성을 쌓은 것에 반해
하나님께서 셈 자손 아르박삿의 아들 셀라의 시대에
인류가 땅 곳곳에 흩어져 살게 되도록 큰 지각 변동을 일으켜
오늘날의 오대양 육대주가 생기게 되도록 나누어지게 하셔서
셈의 후손 셀라는 자기의 시대에 땅이 나눠진 이 엄청난 변화에 대해
아들의 이름에 닉네임으로 붙인 것이 매우 인상적으로 남는다.

이처럼 세상이 오늘날의 지각판대로 바꾸어진 그 날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바벨탑과 성으로 상징된
인간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계획하시고 진행시키며
세우시게 될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하여 셈의 자손 가운데
어떻게 역사해 나가셨는가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셈-아브박삿-셀라-에벨/벨렉- 루우- 스룩- 나홀- 데라-아브람
곧 아브라함의 계보에 개입하신 것이다. [1:24-34]

4. 이스라엘 후손들의 이야기 중에서 유다의 후손들[2:1-4:43]

다시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지는 계보는
아브라함-이삭 –야곱[이스라엘]로 이어지고
12 아들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데[2:1]

1장부터 4장까지 비교적 긴 본문을 선택한 오늘의 말씀에서
특별히 2,3,4장이 야곱[이스라엘]의 네 번 째 아들인
유다의 후손들에 대해 가장 먼저 기록하며
가장 상세하고도 길게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미 위에서 제기 된 질문 곧 포로지에서 돌아온
유다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이 흔들리며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고
우리에게 여전히 소망이 있는가에 대한 답변을 이렇게
긴 족보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찾게 하는 것을 본다.

포로지에서 돌아온 유다 인들이 족보에 나타난 이 이름들 속에
자신의 뿌리가 있으며 이 이름들의 연장선상에
자신들의 이름을 놓고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가진 것처럼

나도 아브라함 - 이삭- 야곱 -유다로 이어진 계보에서
유다 지파의 사자이시며 다윗의 뿌리가 되시어
슬픈 요한의 눈물을 거두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계5:5]

나의 뿌리와 존재 의미를 찾으며
그 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힘차게 살아가야 할 것을 마음에 새긴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3:29]

묵상적용

5. 유다의 족보에 나타난 두 가지 상징적 교훈

그런데 유다의 후손들에 대해 비교적 길게 기록한 말씀 속에는
이 책의 저자가 특별히 이름뿐만 아니라 그 이름에 담긴
특별한 사건들을 상징성을 가지고 기록하는 것을 보는데

대표적인 것은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서 낳은 아들들 중
세라의 아들 갈미가 낳은 아갈[아간]을 언급하면서
그는 진멸시킬 물건을 범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힌 자라고 한 것이며

반대로 유다의 또 다른 아들로서 소발[4:1]의 자손으로 추정되는
고스[4:8]의 아들 “야베스”는 [대상 2:55절의 지명 참고]
그 어머니가 출생에서부터 고통 가운데 낳아서 병약하고
환난이 많은 인생을 산 것 같은데 그가 간절히 하나님의 복을 구하고
근심이 없게 되기를 기도하여 허락하심 받은 것을 이 책의 저자가
특별히 여기에 소개하고 있는 것은 큰 상징적 교훈으로 기록된 것 같다.

유대 백성의 바벨론 포로 기간의 심판이 아간의 범죄와 같은 것으로
상징되는가 하면 그러나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의 백성들이
이제는 야베스처럼 간절히 기도하여 모든 환난과 근심을 면하고
회복될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이 기도 속에 담고 있음을 본다.

주님!
무상한 세월이 흐르고
세상은 변하여도
영원히 변치 않는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야베스처럼 기도하여 복을 구하고
모든 근심을 물리치며
힘차게 살아가는 신앙과 삶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