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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역대상

▼ 역대상 7:1-9:34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과 공동체 이야기

by 朴 海 東 2018. 8. 23.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과 공동체 이야기

역대상 7:1-9:34

묵상내용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성전을 건축하고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세워나가면서
에스라가 전하는 각 지파의 계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신 지금까지의 역사를 돌아보며
희망찬 내일을 향해 나가고 있다.

앞선 말씀에서는 유다 지파와 레위 지파 그리고
요단강 동편 세 지파에 대한 계보가 소개 되었는데
본문에서는 요단강 서편 나머지 지파에 대한 계보를 이어나간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에 대한 기록이 가장 길게 이어지는 것은[8:1-40]
솔로몬 사후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남북 왕조로 갈라질 때
유다 지파와 레위 지파 그리고 베냐민 지파가
주축이 되어서 유다 왕국을 이어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요단강 서편 9 지파의 계보 속에는 등장하는 이름들 속에는
왠지 모르게 성령의 감동으로 닿아지는 몇 가지 교훈들이 있다.

1. 계보의 기록이 아주 없거나 무시되는 지파들:

야곱은 밧단 아람에서 레아와 라헬 그리고 그들의 몸종인
실바와 빌하를 후처로 취하여 12 아들을 얻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에서 소개되는 계보 속에는
레아의 소생으로 르우벤/레위/유다의 형제인 시므온이 빠졌고
실바의 소생으로 아셀의 형제인 스블론이 빠졌으며
빌하의 소생으로 납달리의 형인 단이 빠져 있다.

왜 포로지에서 돌아와 새롭게 일으키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에서
시므온과 스블론과 단은 빠져야 하는가?
12 지파의 땅 분배를 놓고 보면
실바의 소생인 아셀과 스블론은 항상 붙어 지내는 지파가 되어서
아셀 속에 스블론을 함께 놓고 생각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시므온 지파와 단 지파가 빠진 것에는 이 두 지파의 조상들이
과거 이스라엘 공동체에 끼친 일들과 관련이 있으리라고 생각 된다.

세겜에서 칼부림을 일으킨 시므온은 아비 야곱의 저주를 받았고
또 광야를 통과해온 이스라엘이 모압에 이르렀을 때
모압 여인들의 꼬드김을 받아 이방 신전 제사에 참여하고
간음 사건으로 2만 4천명이 죽게 만든 지파가 되어
땅 분배에서도 유다 지파에게 얹혀 사는 결과로 이어졌고

단 지파는 야곱의 임종 예언에서 보는 것처럼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로 말굽을 물어 말 탄자를 떨어지게 하는 지파로[창49:17]
인구수에 비해 분배 받은 땅이 적어 북으로 올라간 자들이
훗날 북 왕국 이스라엘에게 우상숭배의 길을 열어놓는 지파가 된 것에서
그 이유를 찾는 다면 너무 오바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성령의 감동 가운데 이 계보를 적어나간 에스라가
빌하의 소생으로 단과 한 배에서 나온 납달리에 대해서도
그저 한 줄로만 계보를 소개하는 것에도 눈길이 간다.

납달리의 아들들은
야시엘과 구니와 예셀과 살룸이니 이는 빌하의 손자더라[7:13]


왜 납달리 지파는 모든 계보의 조상들이 다 무시되고
그냥 한 줄로만 처리되는 것일까(?)
그런데 납달리의 아들로 네 명의 이름만 올리고 이들은
빌하의 손자더라는 말로 맺고 있는 것에서 어떤 이유를 찾게 된다.

르우벤과 간통하여 야곱의 장막에 오점을 남긴 빌하의 불륜이
그들의 자손들이 이렇게 무시되는 결과로 나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2. 저주 받은 집안의 재앙을 딛고 일어선 인물 - 여호수아 [7:20-27]

역대기 저자가 기록한 이 계보 속에는 성경에서 익숙한 이름들이지만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비하인드 스토리도 많이 알려주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여호수아 인 것 같다.

에브라임 자파의 자손 여호수아의 출생에 숨겨진 배경을 보면
에브라임의 아들들 중에 가드 사람들의 짐승을 빼앗으러 갔다가
죽임을 당하여 에브라임이 심피 슬퍼하였는데
그가 그리고 다시 아내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을 때
재앙을 당했던 아픔을 기억하며 이름을 “브라아”라 칭했는데[7:23]
이 말은 “ 재앙의 집에서 태어난 아들”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재앙의 아들로 명명된 이 집안의 7대 손에서
장차 모세의 후계자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이끌고 들어가는 여호수아가 나온 것은 많은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비록 저주받고 재앙을 받은 집안이고 가문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팔자소관이나 운명처럼 받아드려서는 안되고
얼마든지 저주와 재앙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가문이 될 수 있음을
에브라임의 지파의 아들 – 여호수아를 통해서 배우게 된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히브리식 이름으로서 헬라식 이름은 예수스(예수)인데
이 이름 여호수아[예수] 안에서는 어떤 슬픔과 절망에 빠진 가정 이라도
기쁨과 소망으로 바뀔 수 있는 가정과 가문이 될 수 있

묵상적용

3. 포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에 거주한 자들과 성전의 봉사자들.[9:1-33]

역대기 저자가 전하는 이스라엘 지파 계보의 마지막 기록은
포로에서 돌아와 성읍들에 거하게 된 사람들과
성전 봉사자들의 이야기로 마쳐지고 있는데
이는 포로기 동안의 슬픔과 절망을 딛고 새로 일어서는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의 이야기들 이다.

그런데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주축이 되어 돌아온 이 무리 가운데 

이방인 노예들이었던 느디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도 눈에 뛴다 (느10:28)

특별히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다시 분발하여 자신들의 직임을 따라
성전 문지기나 곡간 지기로 [9:17-27]
혹은 전병을 굽는 자로 혹은 분향할 향품을 만드는 자나
성전에서 찬송하는 자로[9:28-34]
그들이 맡은 직분에 전념하기 위하여 골몰했다고 하는 것은
다시 세워지는 성전 제사 중심의 거룩한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열심을 내는 공동체의 이야기를 소망 가운데 기록하고 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유다 백성들의 이러한 모습은
오늘 우리[내]가 속한 신앙 공동체 안에서
내가 맡은 직분을 그냥 서툰 아마추어 식으로가 아니라
열심히 배우고 연마하여 전문가 적인 열성으로 임하야 할 것을 배운다.


네가 자기의 일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잠22:29]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