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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이사야

▼ 이사야 44:9-20 우상의 정체 분별하기

by 朴 海 東 2020. 1. 28.

이사야 44:9-20 우상의 정체 분별하기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44:9]

 

하나님은 우상숭배의 죄악을 그 어떤 죄보다 엄격하게 다루신다

십계명의 제1,2 계명이 모두 우상 숭배와 제조를 금하는 것이며

이죄는 자손 3-4대까지 죄얼을 미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 우상숭배가 어떤 죄악이기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엄격하게 다루시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인격의 존재가 된 인간은

또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도록 지음 바 되었기에[3:11]

자신의 창조자요 주인 되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지 아니하면

그 대용물로 무엇이라도 섬기게 되어 있는데

타락한 인간의 심성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자연히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들을 숭배의 대상을 삼는 것을 본다.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를 열면 가장 먼저 천지창조 기사와

인간 창조의 기록이 나오는데 이 책의 1차적 독자들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제 이들이 곧 들어가서 차지하게 될 가나안 땅에서

가나안 이족들이 섬기는 우상들은 아무 것도 아니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하나님 대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려 주시는데 목적이 있었고

이런 것들은 너희에게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도리어 다스리고 지배하며 정복할 대상이라고 알려 주심에 있었다.

 

그런데 고대 근동지방의 셈족의 후예들은 종교성이 강해서 그런지

일찍부터 우상의 제조와 우상 숭배에 몰두 하였는데

심지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로부터 시작해 직계 조상들까지도

모두 우상 숭배자들 이었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24:2]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우상 숭배에 빠진 아브라함의 가족을

주권적으로 불러내시고 하나님을 아는 계시의 빛을 비춰주시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계시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삶으로 이끌어 주신 것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둔

우리[]의 축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또한 알려 주시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복음으로 계시의 큰 빛을 받아서

이렇게 주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은혜와 축복을 받은 것이다.

 

오늘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와 우상의 제조가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하며 허망한 것인지 같은 내용의 말씀은 역설체로

무려 세 번이나 거듭하시며 말씀하신다.[44:15. 16-17. 18-19]

 

사람이 자신의 몸을 따뜻하게 덥히며 음식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목재를 가지고 자기의 우상을 만들며 또 거기에 절하고 기도하며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고 말하니[44:16-17]

이것이 얼마나 모순 된 것인지 조소하듯이 말씀하신다.

 

먼저는 철공이 쇠를 녹여 만드는 우상에 대해서 말씀하시고44:12]

이어서 목재 우상에 대해서는 더 길게 말씀하시는데[44:13-20]

아마 당시에 목재 우상이 더 흔하게 많았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러한 우상숭배와 우상을 제조하는 어리석음의 이유는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는 것이며

마음이 어두워져 깨닫지 못함이라도 하신다. [44:18].

 

지금 선지자 이사야는 앞선 말씀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이 해방되고 구원받을 것을 이야기 하다가 [44:1-7]

갑자기 화두를 바꾸어 우상숭배에 관한 주제로 넘어갔는데

이렇게 말하게 되는 배경에는 이스라엘을 포로로 삼은

당시 바벨론 나라에 얼마나 우상숭배가 만연했는지를 보여주며

이러한 것들은 모두 헛된 것들이며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며 너희를 구원할 자이시고

의지할 반석이라고 알려주는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44:8]

 

묵상적용

 

우상숭배와 우상 제조와 관련된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왜 선지자는 이것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환기시켜야 했는지

의문을 가져보게 되며 이러한 우상들은 오늘 우리시대에는

어떻게 어떤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지도 의문을 가져보게 된다.

 

첨단 과학의 시대라고 하는 오늘 우리 시대에도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마음을 붙이고 의지하는 것을 보게 된다

 

가장 흔하게는 이 나라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절간의 부처 상[]이며

심지어 같은 기독교인 천주교에서 세워놓은

마리아 상이나 성인들의 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지시하신 것은

주님의 몸과 피를 상징한 성찬뿐이다)

 

그런가 하면 실제 우상의 형상을 만들어 섬기지는 않는다고 하여도

조상신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위[神位] 패를 만들어

우상의 형상을 대신하며 가문과 자손의 안전과 번영을 기원한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눈이 가려져 있고

마음이 어두워진 자들이 하나님을 향한 대체물로 이렇게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오늘의 묵상을 마감하면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이나

神位 패 같은 우상의 형태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 안에 숨겨진 마음 속 우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는 사람이 우상을 만드는 이유가

바로 자기 마음의 욕구를 우상의 형태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우상 이전에

사람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우상의 원형으로써

자기 욕심, 자기 욕구, 자기 탐심의 문제를 지적하며

탐심은 곧 우상 숭배라고 정의하는 것은 일리가 있는 것이다[3:5]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은 안중에 없고

나의 소원만 이뤄지기를 바란다면

이 역시 자신이 우상이 되어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상숭배와 관련하여 결과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가장 무서운 우상의 위험은 곧 자기 자신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성령을 따르지 않는

내 몸, 내 육체의 소욕을 추구함이 가장 분별하기 어렵고

극복하기 어려운 우상이 된다는 것을 마음 깊이 각성하며 받아 드린다.

 

주님!

나 자신 안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썩어질 죄악의 욕구들 외에

달리 선한 것들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이런 나를 주장하지 않게 하시고

이런 나를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아

우상 단지인 내 몸,

나 자신은 없어지고

오직 믿음

오직 주님으로만 살아가는

나의 신앙과 삶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