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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10:31-42 (2) 말씀으로도 표적으로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by 朴 海 東 2020. 2. 11.

말씀으로도 표적으로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요한복음 10:31-42


보통 우리 주변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이를 수 없는 
어떤 수준이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을 신이라고 불러준다

예를 들면 데이타 야구로 유명한 김성근 감독에 대해
야구팬들은 그를 야구의 신이라 불러주기도 하며

구글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를 이긴
천재 기사 이 세돌 9단이 마지막 승부 돌을 놓았을 때
사람들은 그 것을 "신의 한 수"라고 칭 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요즘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들이
많이 사가는 책이 있는데 그 것은 
평범한 아이를 "공부의 신"으로 만드는 비법인데 
사람들은 저 마다 신의 경지에 이르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다 평범한 사람들이 신의 경지에 이르고 싶은
간절한 욕망일 뿐 그렇다고 실제로 神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로부터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고 말한다는 것 때문에 
신성모독 죄로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시는데 
이에 대해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출4:16. 출7:1]
"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니..."를 인용하시어 
자신의 말에 하자가 없는 발언의 정당성을 부여하신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민족의 해방자로 보내실 때 
모세가 여러 이유를 대며 특히 말이 어눌하다고 하니
말 잘하는 네 형 아론이 네 입을 대신 할 것이요
내가 너를 그에게 하나님같이 되게 하리라고 하셨다[출4:16]

그런가하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놓아주지 않는 
완고한 바로 왕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볼찌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이 되게 했다고도 하셨다[출7:1]

그런데 오늘의 말씀에서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말한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는 말씀의 배경은
이러한 율법서의 배경뿐만 아니라 시편에서도 인용하신 것 같은데
시편 82:6절은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로 판단하고 
판결을 집행해야 하는 판결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니”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는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발언 하신 것에 대한 
정당한 자기증언[변론]을 하시는 것 뿐 아니라
예수님을 함부로 무시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에게는 
너희가 신의 경지에 있지 않고 신이 아님으로 
지금 너희의 판단은 바르지 않다고 하시는 암시도 들어있는 것 같다. 

아무튼 예수님은 자신의 말을 받아드릴 여지를 갖고 있지 않고
도리어 걸고넘어지려고만 하는 유대인들에게 
내 말을 받아드리지 못하겠다면 
내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한 일[표적]들을 통해서라도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어서 
이런 일[표적]을 행한 것임을 믿으라고 말씀하시는데[10:37-38]

그들은 어떻게 해서 생각이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앞에서 돌을 들어 치려던 행위에서 [10:31]
이제는 예수를 체포하고자 하는 시도로 바뀌는데[10:39]
여기서 예수님은 신적 능력을 발휘하여(?)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떠나 세례요한이 처음 세례를 베풀던 
(사해 근처) 요단강 건너 편[베다니]로 가서 거하신다[10:40]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곳 (베다니)로 가신 것은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가신 것으로 이해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어지는 11장에서 보게 되는바 
또 다른 베다니로써 예루살렘 변두리에 사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가정인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 남매 가정에서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다는 전갈을 받게 되는 곳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사해 근처 베다니에 가 계심으로
예루살렘 근처의 또 다른 베다니에서 보내온 부고 소식을 듣고
이틀을 더 지체 하신 후 출발하시어 [11:6]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무덤에 들어가 있는 나사로를 살리시는데
과연 이 기적[표적]이야말로 앞선 말씀에서 
너희가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을 통해서라도 나를 믿으라는
최후 최고의 표적으로 유대인들 앞에 나타내게 되는 것인데 
그러나 그들은 이 표적 때문에 더욱 예수를 죽이려 했으니[12:10-11]
그들의 불신에 대해 더 이상 무슨 변명이 있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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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기독론쟁의 극치를 보여주는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한 가지 마음에 새기에 되는 것은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계시의 전달을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순종을 다 하셨다는 것과 
그럼에도 유대인들이 그를 거절하고 배척한 것은
결국 이사야의 글처럼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는 말씀이 
이렇게 응하여 진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사야6:9-10]

이사야가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해 깊이 고심하고 고민할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결론으로 받은 말씀은 [사6:11-13]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루터기는 남음 같이
이스라엘 중에 남은 자들만이 구원을 받게 되리라 하셨는데
오늘의 말씀 마지막 구절에서 
예루살렘에서 당한 거절과 배척과 살해 위협과 대조적으로 
요단 건너 베다니에서는 예수를 배척하지 않고 믿게 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 말씀의 상징성과 성취를 본다.


주님! 
사람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아버지께로부터 오신 아들 역시 
하나님 이시라는 
구약에 가려졌던 계시를 증언하셨을 때

주님은 사람들로부터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고 한다는
신성모독죄와 돌에 맞을 위험에 몰리면서까지
아버지께서 부탁하신 계시의 증언에 최선을 다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돌 팔매질을 당하는 위협 가운데서도
증언하여 주신 이 계시의 빛 아래서 
오늘 내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게 된 것은
이 모두가 주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계시의 빛을 받은 자로서
주님을 밝히 알게 된 것 뿐 아니라
주님께서 아버지의 뜻에 목숨을 걸고 순종하신 것처럼
나도 주님의 뜻에 목숨을 걸고 순종할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