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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17:6-19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사람들

by 朴 海 東 2020. 3. 5.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사람들

요한복음 17:6-19


어제 자정[2020년 3월4일 00시]를 기준으로 
코로나19 전염병 확진 환자가 5,386명을 넘어
오늘 아침 10시 발표에서는 어찌될지 모르겠다

TV 화면에 보면 아직도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는 행렬들이 보이는데 그만큼 
사람들이 이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같다. 

나는 굳이 줄을 서가면서까지 사고 싶지 않아서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면 마스크 두 개를 가지고 
번갈아 가면서 빨아서 쓰고 있는데 
마스크 부족 현상 때문인지 요즘 언론에서는 
환자를 직접 접촉하는 의료인이 아니라면
면 마스크도 그런대로 유용하리라는 발표도 나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코로나19 전염병 조차도
하늘 아버지의 통제 아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인데
그 앞에서는 참새 한마리의 땅에 떨어짐 조차도
결코 그냥 일어날 수 없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그가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이 우주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별의 소소한 것 하나까지도 
다 그의 통제와 주제하심 아래 놓여있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새벽 4시 반이 넘으면 절로 잠이 깨어지는데 
언제부터인가는 바로 큐티에 들어가기보다 
먼저 한 두 시간 정도 독서를 하고 큐티를 하게 된다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서 심 호흡을 하기 위해
거실 창문을 열면서 하늘을 올려다 보니 
여전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반짝이는 별들이 정겨웁다. 

이전엔 새벽을 깨우는 마음으로 새벽 별들을 바라보며
교회당 새벽 기도회도 가곤 했는데
지금은 코로나 19 전염병 때문에 주일 예배 뿐 아니라 
새벽 기도회의 기도 소리도 그쳐져 적막하게 되었으니
우리 한국 교회의 지금의 상황을 허락하고 계시는 
우리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교회의 공예배들과 새벽을 깨우는 기도의 소리들까지 
다 멈취지게 만든 이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위력은 
앞으로 어디까지 더 뻗힐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어려움의 때에는 이전보다 더욱 
주님께 가까이 나가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믿음이다

오늘의 말씀을 펼쳐 드니 앞선 말씀[17:1-5]에서 소개된
주님이 드리신 기도[주기도문]의 서문에 이어서 
그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 곧 우리를 위한 기도를 드리신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그의 기도의 대상인 우리[내]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사람들 곧 아버지의 선물로써
나의 정체성을 일깨워주신다.[17:6-10]

1.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사람들[17:6-10]

이들은 바닷가에 모래알 처럼 수 많은 사람들 중에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뽑아서 [제한 선택/제한 구원]
하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사람들이며,

아들이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 보좌로 내려놓고
이 땅에 오시게 된 하늘 아버지와 아들의 사람들로써 
창세 전부터 선택된 이 사람들[나]이라고 하심에는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생각해보라고 하신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이라고 
다섯 번이나 반복하시는 이 구절 속에서 
그렇다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어떤 자화상을 가지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배우게 된다.

믿음으로 주님과 연합된 성도라고 하여도 
사람은 인격의 3요소가 되는 知情意 가운데 
감정의 영향을 가장 쉽게 받는 존재인지라 
평소 나는 나 자신에 대해 평가절하 하는 
부정적 자아 인식을 가질 때가 너무나 많은데

나 자신의 존재는 아무렇게나 이 상에 던져진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라 
하늘 아버지께서 아들[예수님]에게 주신 선물로써 
나 자신에 대한 건강한 자존감을 가져야할 것을 배운다

평소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좋은 면보다는
늘 죄 가득하고 외로운 부정적 이미지로써
나 자신을 생각할 때가 너무 많았던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은 밤에 잠을 자면서 나쁜 꿈을 꾸고 났을 때
아침에 일어나 피곤의 휴우증이 오래가면서 
더욱 나를 우울하게 했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진리 밖에서 교묘하게 감정의 충동질로 
하나님께 사랑받는 성도의 마음을 유린하고 싶은 마귀가 
유다의 마음을 찝쩍거리다 들어간 것처럼 
나의 마음에도 그리 찝쩍거린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제부터는 아침에 일어나 기분이 우울할 때
혹은 내가 나 자신의 자화상에 대해 부정적으로 될 때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이며 
나는 하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선물로서
나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붙잡고
진정한 나를 찾아나갈 수 있는 신앙과 삶이 되어야겠다.



2. 제자들[우리]를 위한 기도에서 배우는 것

이어서 주님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
[ 더 나가서는 이 시대에도 같은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우리를 위한] 네 가지 기도를 드리시는데 
사실 이 주님이 드리신 기도 때문에 
오늘 우리[내]가 이렇게 건재할 수 있음을 믿는다

1) 그들을 보호[보존하여 주옵소서[17:11A]
2)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악한 세상을 대항하여) 하나되게 하소서[17:11B]

3) 악에 [악한 자에게]  빠지지 않게 하소서 [17:14]
4)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성화]

우리를 위해 드려주신 위의 기도문 어느것 하나
묵상의 소재로 삼지 않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인데
어찌보면 위의 네 가지 기도는 서로 뗄 수 없는 
연관성을 가지고 성도들의 유익을 위하여
서로 유효하게 작용하는 기도의 제목들로 보인다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전적 부패의 존재인 인간이 
그가 혹 예수를 믿었다고 하여도 
이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내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나]의 죄를 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 뿐 아니라
나의 의로움을 위해서 살아나셨고
[그의 부활로 나의 죄가 사해졌음을 증명하셨고]

믿음으로 그와 연합된 영적 갓난 아기같은 우리(나)를
이 세상에 그냥 방치하고 승천하신 것이 아니라 
보혜사 성령을 보내어 우리[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오순절 성령 강림의 날에 성령의 역사로 이 세상에 태동하게 하신 
그의 교회를 어머니의 품으로 삼으셔서 성도들을 양육 보호하신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악에 또는 악한 자에게 빠지지 않고
그의 영혼의 보호 보존되고 성화 성장하여 거룩에 이르는 것은 
나의 의나 노력의 결과라기보다 주님이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하늘 아버지께 자기의 사람들을 위하여 드려주신 기도에 
전적으로 근거하고 의존되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우리가 이처럼 영적으로 보호 보존되며 
악에 혹은 악한 자 마귀에게 빠지지 않고 
거룩[성화]에 이르게 되기 위하여 그의 성령을 보내시고
또한 그의 사도들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생활에 충족한
거룩한 진리의 말씀을 주셨다.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 성령 이 두가지 선물이야말로 
우리를 위해 드려주신 기도가 이뤄지게 하는
거룩한 은사의 수단이 되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최근 읽은 책 가운데 
일본 기독교의 지성이며 거목이라 할 만한
우찌무라 간조[1881년-1883년]의 회심기에 나오는 
한 대목이 떠오르는데 이 진리의 빛은 내 생각엔
[그가 로마서 8장에서 얻은 영감으로 이해된다]

그는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삿뽀르 농업대학에서
24살의 나이에 철저한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되어 졸업한다
후에 수산청의 공무원이 되어 2년간 일하면서 
그의 친구들과 함께 당시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일본 기독교의 자존감을 살리는 독립교회를 세우기도 한다

그는 이렇게 열심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면서도
자신에 안에 채워지지 않는 영적 허기를 찾아 
25세의 나이에 기독교의 나라인 미국을 찾아가게 된다.

미국 펜실바니아 주에 있는 아동 정신병원에서
일년 가까이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접하며
일본에 온 선교사들을 통해 선망으로 바라보았던
기독교 국가 미국도 이교도의 나라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며

후에는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메사츄세츠]지역에 있는
에머스트 대학에 들어가 2년 동안 공부하면서 
학문을 통해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치열한 영적고민을 통해 마침내 자유함을 얻게 된다. 

미국에서 4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의 행적을 
여기 짧은 지면에 다 소개할 수 없지만
그가 자기 영혼의 방황을 기록해 나간 
영혼의 항해일지로써 이 회심기 중에서 
나는 내가 건질만한 한 대목을 표시해두었는데 
이제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여기에 남겨둔다. 

1887년 9월 13일 
노을 진 저녁 무렵은 항상 고요하고 아름답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려는 순간 
내가 내 육신에 대해 죽어 있으면
마귀들은 절대 나를 공격해 올 수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육신(죄)에 대해 죽은 것은
죄로 가득한 내 마음을 들여다 보아서 될 일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만 가능하다
나를 사랑하신 그분을 통해서 
나는 어떤 정복자와도 비견할 수 없는 자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매우 신선했고
오늘 하루의 짐도 일순간 잊혀졌다. 
감사가 넘쳤고 성만찬으로 그 날을 기념하고 싶었다. --- 중략 -----

*.묵상 말미에 우찌무라 간조라는 한 젊은 청년의 이야기를 
비교적 길게 쓴 것은 그의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들이 
주님이 드려주신 기도의 결과라고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주님!
십자가로 나가시기 전에
드리신 기도를 통하여 
주님의 것이 된 우리[내]가

이 악한 세상 가운데서도
보호를 받으며
악에 빠지지 않고
성화 성장의 진보를 위하여
마침내 거룩함[영화]에 이를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이 드려주신 이 기도를 
날마다 마음에 품고
믿음의 진보를 이루어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