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18:1-14 (2)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by 朴 海 東 2020. 3. 7.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요한복음 18:1-14


AD 30년 예루살렘에서 유월절 밤이 깊었다.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은 이 밤의 이야기로
주님의 공생애 마지막 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이 해 유월절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세 번째 맞이하시는 유월절이다. 
그가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첫 발걸음으로 요단 강가, 
세례요한의 세례 터에 왔을 때 요한이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선언한대로  
예수는 이 밤에 도살당할 한 마리 어린 양처럼 묶여져서 
당시 유대의 실세인 안나스(전임 대제사장)에게로 보내진다. 
그 밤에 체포되어 안나스의 뜰로 호송되기까지 과정은 이러했다

1. 앞선 장 17장의 대제사장적 기도를 마치신 후 제제들과 함께
기도론 시내를 건너 동산으로 들어갔는데 그 곳은 가끔 
제자들과 모임을 갖는 곳으로 유다도 아는 곳 이었다[18:1-2)

여기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갔다는 대목은 그의 조상 다윗 왕이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배신과 그 추종자들이 벌인 난리를 피해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 
예루살렘을 떠났던 바로 그 장면을 연상케 한다.[삼하15:23]

예수님도 이제 곧 자신과 동고동락했던 유다가 배신을 때리고
자신을 잡으려는 무리와 함께 뒤를 쫓을 것을 염두에 두시면서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처럼 이 기드론 시내를 건느셨을까(?)

그런데 기드론 시내 건너 들어간 그 동산이 배신자 유다도
잘 아는 곳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18:2]
예수님은 유월절 그 밤 유다와 함께 자신을 잡으러 오는 사람들이 
그 밤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곧 바로 자신을 잡아갈 수 있도록 
도리어 체포의 주도권을 가지시고 의도적으로  그곳으로 가신 것같다.  

2.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하속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18:13]

18:12절에서 체포하러 온 무리 중에 군대와 천부장이 있는 것을 보면
변절자 유다는 적어도 그 순간만은  영웅심리가 발동한 것 같은데 
한 때 예수를 추종하던 자리에서 예수 체포조의 영도자가 된 모습에서 
사람이 변질되어도 이렇게까지 변질될 수 있는 것일까 끔찍함이 들며
이런 변절과 배신의 심리가 내게는 없는 것인지 삼가 두려움으로 읽는다.

3.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나사렛 사람 예수라 하거늘 [18:5]

여기 그들이 찾는 사람  "나사렛 사람 예수"라는 호칭에서
요한이 이 복음서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님 이신 예수"와 멀리 동떨어진
예수에 대한 하대와 경멸의 냄새를 풍기는데 
이것이 당대 종교지도자들과 대다수 사람들이 생각한
나사렛 시골뜨기 랍비 예수 혹은 거짓 기적으로 미혹하는 
나사렛 출신 거짓 선지자 예수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 엿보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지난 3년간 예수의 인격과 사역에서 
그리고 그가 행하신 표적을 수 없이 목격한 유다조차도 
나사렛 사람 예수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한 통속이 된 것을 보면서 
과연 구원받는 믿음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반문하게 된다.

4. 내가 곧 그니라 (에고 에이미)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은 자신들에게는 무섭고 두려웠던 그 밤에
주님께서 자신을 체포하러 온 무리들에게 당당하게
너희가 찾는 자가 곧 내니라(I,m Him/에고 에이미)라고 하신 것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다.

이는 곧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의 자존적 증거 
곧 "나는 ~다(에고 에이미)"를 일곱 번 사용하신 것에 대한 
최종 증거를 원수들 앞에서도 확증하신 것이라고 나름 생각해본다.

5.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18:6]

체포하러 온 원수들 앞에서 숨어 피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나서시며 “내가 곧 그니라”고 하시는 이 당당하심 앞에 
원수들은 신적 권위와 두려움 앞에 뒤로 물러서며 땅에 엎드러진 것인데
이런 모든 정황으로 볼 때 예수는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주도적으로 고난의 형극 속으로
친히 자발적으로 기꺼이 십자가의 길로 들어가고 계심을 엿보게 한다. 

6. 급박한 상황에서 나온 베드로의 칼부림 [18:10]

자신의 주님이신 예수님이 체포되시려는 위급한 상황에서
칼부림을 하는 베드로의 모습은
그가 평소 몸에 칼을 지니고 다녔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지만
자신의 주군을 위하여 계란으로 바위치기 식이지만 그래도
칼을 휘두른 모습에서 주님을 향한 그의 순진한 충성심도 엿보인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베드로의 칼부림에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 라는 이의 오른쪽 귀가 베어졌다고 했는데 
여기서 이 책의 저자 요한은 대제사장 집과 아는 사이여서[18:15]
그 종의 이름도 알았던 것 같고 또 베인 귀가 오른쪽 귀라고 한 것은
그 밤에 일어난 일련의 모든 과정과 일들이 팩트(Fact)인 것을 증거한다.



7.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18:11]

칼을 칼집에 꽂으라는 이 말씀이 특별히 마음에 닿아지는 것은
때로  하늘 아버지의 섭리 가운데 진행되는 일인 것을 몰라서 
내가 내 판단과 생각을 따라 하는 것이 옳은 것인 줄 알고 
내 분노와 내 혈기로 주님 앞에서 함부로 행하였던 일들이 
베드로의 모습과 겹쳐서 생각나는 이아침 
칼을 칼집에 꽂으라!는 주님의 말씀이 마음 깊은 울림으로 닿아진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이 모든 일들이 어떤 인간의 계획 곧
유다의 배신이나 종교지도자들의 음모에 의해 주도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베드로의 칼부림 같은 인간의 노력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오직 아버지의 뜻과 섭리 가운데 있음을 이 한 마디 속에서 증거 하신다. 
 --------------       ---------------        --------------      -----------------

요즘 코로나 19 역병으로 온 나라와 사람들이 힘든 때를 보내고 있다
이 역병을 차단시키기 위해 온 국가적으로 안간 힘을 쓰고 있으며
과학적인 방법들을 동원하여 방역에도 힘쓰고 있다. 

그런데 이 코로나 역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교회들까지 
모든 예배와 기도회까지 멈춰서게 된 것을 생각하면
정말 이 역병을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과학적인 힘으로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이것이 어디까지 창궐할 것인가(?)
만일 이 것이 하늘 아버지의 징계적인 것으로 나타난 것이라면
우리가 모든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하여도 
그의 섭리의 기한까지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불확실한  때에는 더 기도할 수 밖에 없다
다윗의 시대 말기에 그의 인구조사로 말미암아 임한 징계에서
석달 동안 원수에게 쫓길 것인지
7년 기근을 당할 것인지 
아니면 사흘 동안 역병[전염병]이 날 것인지 
세 가지 중 하나를 택하라 했을 때 [삼하24:13]
다윗은 역병(전염병)을 택했고
그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기도 하였다[삼하 24장]

그 때 다윗이 통탄한 마음이 되어 주의 사자가 나타난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기도의) 제단을 쌓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고 
당시 전염병의 창궐을 막아주신 것을 감안하면 [삼하24:25]
오늘 우리는 꼭 교회당이 아닌 곳에서라도 그 곳이 어느 곳이든
다윗의 오르난의 타작 마당 같은 기도의 단을 쌓을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 우리들의 시대와 하나님의 신정통치 왕국 이었던
다윗의 시대를 동일시하여 말 할 수는 없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시대는 변했어도 
그 때 그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신 우리 하나님이 아니신가(?)

지금 4월 12일 영광의 부활주일을 앞두고
40일 사순절 기간을 지나면서 부딪히고 있는 
이 코로나 19 역병[전염병]을 통과하면서

세계 모든 나라 가운데 중국이 이 역병의 발원지가 되고
그 피해가 중다한 것은 그 나라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주님의 교회들을 박해한 때문이라면


그 다음으로 피해가 큰 나라로서 우리나라의 경우는 
거꾸로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는 교회의 힘이 너무 커서
정부 권력이라도 끌어내리려고 하는 만용 때문이 아닌지
나름대로 생각해보는데 내가 너무 오버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점에 대해 이글의 독자들은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주말마다 광화문에 나가서 반정부 데모를 주도하는 사람들이나
참여하지 않지만 그 뒤에서 대리 만족을 얻는 사람들은 
진정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이념 성취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인지 
이번 코로나 19 역병이라는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진정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며 
베르로처럼 (주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그 칼을 칼집에 꽃으면 좋겠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나라와 민족의 안위와 평안을 위해 기도할 때이다
주의 이름을 함부로 도용하며 교만해진 마음을 겸비히 낮추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이 땅 이 민족 가운데 임하기를
그 어느 때 보다 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인 것을 마음 깊이 새긴다



주님! 
지금 이 땅에 창궐하는 코로나 19 역병이
주님의 섭리 가운데 진행되는 일이라면
우리가 그 그 기한을  조정할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일이지만

다윗의 오르난 타작 마당의 기도를 받으시고 
전염병을 멈추게 하심을 생각하면서 
주님의 무한하신 긍휼과 자비를 간구 합니다.

이 재앙이 너무 오래가지 않게 하여 주시고
다윗의 시대에 사흘로 상징된 고통의 기간이
우리에게도 제한 된 기간으로 멈춰지게 하옵소서  

주님! 
이 땅 이 민족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시고
이 코로나 역병을 통하여
우리가 더욱 겸비하여 지고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백성이 되게 하시며
주님의 치유와 회복케 하심이
이 땅을 덮는 역사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