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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로마서 *

로마서 7:7-25(2) 곤고한 탄식에서 환희의 송가로 나가게 하는 것

by 朴 海 東 2020. 8. 6.

곤고한 탄식에서 환희의 송가로 나가게 하는 것

로마서 7:7-25

 

1. 로마서 7장에 나타난 갈등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바울은 AD 57년 경 고린도에서 이 편지[로마서]를 썼다
이미 1.2.3차 세계 선교 여행을 끝내고 반환 길 이었다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온갖 고난을 받으며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의 존재 자체로써 
그는 복음의 산 증인이며 거룩함이 빛나는 사도이다. 

이러한 그가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진리 중의 하나인
"이신칭의"의 복음을 정리해주는 로마서를 쓰면서 
7장의 서두로써 율법으로부터의 자유까지 쓰다가[7:1-6] 

갑자기 그의 펜 끝이 밀고 나가는 힘찬 글의 전개를 멈추고
위축된 마음이 되며 이 글의 독자들에게 화두를 바꾸어 
아직 미완성인 자신의 부끄러운 내면을 폭로하면서까지 
자신 안에 있는 영적 갈등을 여과 없이 표출시키고 있으니 
이 본문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는지......... 
로마서 7:7-25절은 성경 속의 난해한 본문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생명의 삶 오늘의 본문 해설을 쓰신 분은
로마서 7장에서 갈등을 표출하는 이사람은 
바울이 회심하기 전의 이야기로써
지금 이 로마서를 쓰고 있는 그 당시의 선교사 바울이 아니라
그가 아직 율법과 전통을 중시했던 
유대교에 머물러 있었을 때를 회상하면서 쓴 것이라 하는데 

기실 로마서 7장에서 거의 서른 번 이상이나 기록되는 
"나" 혹은 "내"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밝히는 것은 
이 본문을 잘 이해하기 위하여 매우 중요한 질문이 되는 것 같다.

오늘의 말씀 안에 나타나는 "나" 혹은 "내"가가 누구인지는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여기서 "나"는 회심하지 못한 비그리스도인 인지  (아니면)
회심하였으나 성화의 과정에서 진통하는 거듭난 그리스도인 인지
둘 중의 하나로 이해하게 되는데 나는 종교개혁의 선구자이며
장로교회의 창시자인 칼빈의 견해를 따라 후자를 택하게 된다, 

오늘의 본문에서 무려 29 번이나 "나"와 "내가"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일어나는 영적 고통을 토로하는 이 사람이
만일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1) 사망에 이르는 죄 때문에 고통하며 [7:9-11]
2) 율법[말씀]의 선함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은 육에 속해 죄 아래 팔린 것을 한탄하고 [7:14-15]

3) 탄식 가운데 죄를 미워하며[7:15] 
4) 선을 행하야 하는 지식은 있으나 
능력이 없음을 한탄할 수 있겠는가 [7:18]

5) 또 속 사람으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7:22]
6) 자기 죄악을 깊이 후회하며[7:15. 18-24]
7) 이런 진통 속에 있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는 표현이 가능한 것인가? [7:26]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 불신자[비그리스도인]은 [엡 2:1-3]
하나님께 향한 영적 감각이 둔하여져서 
로마서 7장에 나오는 깊은 죄책감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로마서 7장에 나오는 “나” 곧 “내가”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며
성화 성장의 진통 속에서 갈등하는 자로서 바울 자신이면서 
또한 나 자신의 모습이며 모든 성도들의 모습인 것을 인정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토록 훌륭한 목회자이며 선교사이자
기독교 진리의 변증가인 대 사도 바울의 이러한 고민은
예수 믿고 구원받았지만 아직 내 육신에 남아있는 
죄적 속성들과 연약성 때문에 하나님의 뜻보다는 
육성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나 같은 사람을 대신해서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주었다는 점에서 나는 감동을 받는다

나는 위대한 사도로 보이며 거룩함에 빛나는 바울이
자신의 내면을 들쳐 보여준 오늘의 말씀 때문에 위로를 받는다

진정 거듭난 사람은 그래서 하나님과 말씀의 빛에
더 가까이 나가는 사람은 더 가까이 나갈수록
자신에게서 보이는 죄가 더 크게 보이는 법이어서 그런지
바울 서신에 나타난 글을 보면 그가 최후로 쓰게 되는 글로써 
믿음의 아들 디모데 에게 보내는 편지 글에 보면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까지 고백하는 것을 본다[딤전1:15]

기독교 역사에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것 같은
위대한 선교적 과업을 완수했고 
그가 쓴 편지들이 기독교의 위대한 진리들을 전수시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신약 성경의 1/3을 쓰게 되는 바울이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자신은 그렇게 흠모할만할 위대한 성인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로마서 7장의 이야기는 
오늘 내가 주님 앞에 부름 받게 되는 그날 까지 
내가 어떤 자세를 견지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게 한다.

나는 이렇게 솔직한 바울이 참 좋다
그리고 나도 주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이런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마음 깊이 받아 드린다.

더불어 나 역시 영혼은 구원받았지만 
아직 내 몸이 구속받지 못하여서 나타나는 진통들에 대해
어떻게 받아 드려야 하는지를 바울의 글에서 배우게 된다.

적용하기

2. 곤고한 탄식에서 환희의 송가로 나가게 하는 것

거듭난 그리스도인이지만 아직 육체 가운데 거하고 있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내적 갈등 가운데 거할 수 밖에 없는 
우리 모두를 대신한 바울의 장탄식은 
7: 24절에서 절정을 이루는가 하면
곧 바로 이어지는 7:25절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를 축으로 대 반전을 일으킨다.

먼저 7: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는 장탄식을 보게 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사망의 몸이란
당시 로마 제국의 사형제도의 한 방법으로써 
사형시킬 죄인을 죽은 시체와 함께 두루 말아 죽이는 방법이다 

바울은 자신 안에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자 하는 속사람과
이 속사람을 거스려 싸우는 또 하나의 세력으로써 죄의 법이 
자신 안에서 일으키는 갈등에 대해 표현하기를 
이러한 자신의 상태를 “사망의 몸”이라고 표현하였으니
죄를 싫어하면서도 그 죄의 영향력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이렇게까지 고백하였을까 짐작이 간다.

거듭난 성도가 세상에서 육체를 입고 사는 동안에는 
그의 영은 이미 구원받았지만 아직 그의 육체[몸]은 
구원받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고통과 갈등은
따라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바울의 고백에서 배운다 
그러나 이 갈등과 절망 속에 비쳐오는 한 빛이 있으니 
7:24절까지의 고통을 넉넉히 반전시키는 
7:25절에 나타난 소망의 빛으로 나가는 출구로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는 환희의 탄성이다

“나”와 “내가”을 29번이나 써가면서 자신에게 절망했던 그가
시선을 돌려 자신의 구원자 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
이미 그 안에서 준비된 승리의 삶을 발견하게 된 것인데 
이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그리고 바울은 왜 이렇게 기쁨의 탄성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고 하는 한 마디로 농축한 것일까? 

이어지는 8장에서 바울의 극심한 영적 침체의 탄식을 
영적 환희로 반전시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시는 길이 열려진
성령님과 그의 사역에 해답이 있으며
따라서 그가 그토록 고민하고 고통 했던 
아직 구속 받지 못한 육체[몸]의 구원까지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는지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롬8:23-25]

이제 오늘의 묵상으로써 바울의 장탄식이 주를 이루었고 
이러한 탄식과 절망의 출구로써 제시된 로마서 7:25절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를 시작으로 내일 말씀에서 펼쳐지는 
로마서 8장의 은혜와 축복들을 기대하면서 오늘의 묵상을 내린다

주님! 
자기 자신을 스물 아홉 번 바라보면서 
장탄식을 쏟아낸 대사도 바울의 탄식이
단 한 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에서
변화와 반전을 일으키는 모습을 봅니다 

오늘 하루도
나 자신을 한 번 바라보고 
나의 모습에 실망될 때 마다 
거꾸로 주님을 서른 번씩 바라보면서 
주님 때문에 기뻐하고 
말씀과 성령 안에서 열어주시는 
소망의 출구로 나갈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