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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전서 1:1-10(2)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by 朴 海 東 2020. 11. 1.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데살로니가전서 1:1-10

 

어느덧 낙엽의 계절 11월로 들어섰다.
고운 단풍잎들이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11월은
왠지 모르는 쓸쓸함이 묻어나는 계절인데
오늘 2020년 11월 첫 날,
추적추적한 비가 내리는 가운데 흐린 날씨 때문인지
아파트 창가에서 내려다보이는
은행나무 잎새들이 더 노랗게 보인다.

이제 저 나무의 잎새들이 더 진한 황금 색깔로 변하고
바람에 떨어져 바닥에 쌓이면서 가을은 저물어가겠지
사람들이 찬란한 꽃들이 피어나는 봄을 타는 것보다
가을을 타게 되는 것은
이제 곧 찬 바람이 부는 겨울을 앞두기 때문이기도 하고
떠나보내는 만추의 계절을 놓치기 싫은 아쉬움 때문이리라.

오늘은 큐티에 들어가기 전 내가 드나드는 카톡방에
문자 인사로 간단한 가을의 감상을 적고 음악을 올렸는데
유트브에서 "온맘다해" 찬송 2시간 연속듣기를 찾아서 올렸다
그리고 이제 이 찬양을 들으면서 오늘의 묵상을 써내려 간다.

그러고 보니 지난 9월부터 시작했던 구약 예레미야 묵상이
두 달 만에 끝나고 오늘부터는 신약 데살로니가전서로 들어간다.

-----데살로니가전서 1:1-10.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

1. 이 편지의 발신인으로서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 [1:1]

이 편지글의 서두에서 세 명의 안부 인사가 언급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유럽 선교의 두 번째 교회 개척이 되는 데살로니가에서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유대인들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할 때 많은 개종자들을 얻기도 했지만
시기심으로 가득한 유대인들의 심한 반발도 받았다.

유대인들이 도시의 불량배들을 동원해서 방해함으로[행17:5]
바울은 데살로니가보다 아래 도시 국가인 베뢰아로 내려가
거기서도 복음을 전했는데 이곳에도 교회가 서게 되었고
이 소문은 이내 데살로니가에도 전해져
그곳 유대인들은 “뵈레아”까지 원정 핍박을 내려오게 된다.

따라서 그곳의 형제들이 바울을 아덴[아테네]으러 데려가고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베뢰아에 남아[행17:14]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교회를 좀 더 돌보는 역할을 한 것 같다

바울은 아덴에서 자기를 인도했던 형제들과 헤어지면서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가능한 속히 자기에게 오기를 부탁하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처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전도팀이
서로 갈라지게 되어 바울도 인간인지라 선교의 동력을 잃고
아덴을 거쳐 고린도로 가서 거기서 두 사람을 기다리게 되는바

애타게 기다리던 그들이 마침내 바울과 다시 합류하게 된 것과
또 위에서 전도한 교회들이 핍박 속에서도 꿋꿋하게 서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을 때 바울은 큰 위로와 힘을 얻었고
그 시로부터 바울은 말씀에 붙잡혀서
힘있게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을 밝히고 있다 [행18:5]

따라서 데살로니가 교회로 보내는 이 편지의 서두에서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전하는 안부로 시작하는 것은
그간의 사연이 그만큼 교회와 형제들에 대한 근심 걱정과
기다림으로 절박했던 것들이 다 해소된 것을 드러내며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도 안심을 주는 안부가 된 것을 본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과 디모데는 익숙히 잘 알고 있지만
실루아노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게 된다.
바울의 서신서에 나오는 실루아노는 사도행전에서 나오는 실라인데
그는 사도행전 15장에서 이방인 개종자들의 구원 문제와 신앙을 논한
기독교 역사상 제1차 WCC가 되는 예루살렘 공회의 선언문을 가지고
바울과 함께 안디옥 교회를 찾아갔던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였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바울과 평생 동역자로 나서게 되는 것을 본다.

바울이 2차 선교여행 중에 성령의 인도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 첫 번째 교회 설립이 되는 빌립보에서
채찍에 맞고 옥에 갇혔을 때 실라[실루아노]도 함께 갇히게 되는데

상전들이 아전을 보내 석방하게 될 때 바울이 말하기를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게 가두었다가 이제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려 하느냐”고
문책하는 "우리" 속에는 바울뿐 아니라 실라/실루아노 역시
당당한 로마 시민권 자 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러나)
이들이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나선 것을 보게 된다.

 

 

2.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성도의 과거와 현재와 장래에 대하여]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하여
바울은 그들이 많은 핍박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 마게도냐와 아가야 뿐 아니라
각처에 아름다운 소문으로 퍼져있다는 것을 알리는데[1:8]
그 소문의 진상이 무엇인지도 밝히고 있는바
그것은 그들이 바울 전도팀을 맞아서
1. 어떻게 복음을 들었으며 [1:9A]
2. 어떻게 결단과 회심의 열매를 맺었고
어떻게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1:9B]
3. 그리고 어떤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밝힌 것이다[1:10]

여기서 복음을 받은 자세로써
1)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갔는지와....”는
그들이 바울 전도팀이 그 도시에 아서 복음을 전했을 때 환영하며
유대인들의 박해 가운데서도 용기를 가지고 받아드린 것을 밝히며

2)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는 [1:9]
과거와 현재의 비교로써
복음을 듣기 전에는 귀신의 영을 따르는 헬라 사상에 기초하여
헬라의 무수한 귀신[우상]들을 섬기며
그 악하고 더러운 귀신의 영이 시키는대로 살았던 자들이었는데
이것들을 다 버리고
살아계시며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되어
개종의 확고한 체험을 드러내었다는 것으로써
이것이 곧 앞서 말한 믿음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이며
그들이 말씀을 듣고 믿는 바를 삶으로 드러낸 것을 본다.[1:3]

3) 더불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 대한 또 하나 아름다운 소문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 시니라”인데[1:10]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가진 예수 재림 소망 신앙은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나]에도
큰 각성과 도전으로 닿아진다.

그들이 가진 예수 재림의 소망에 담긴 신앙을 보면
(1) 예수의 대리적 대속적 죽음을 믿는 복음적 신앙에 기초하며
(2)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내시어
택한 백성의 구주와 심판자로 세우신 부활 신앙을 믿는 것이며

(3) 그리고 그 아들이 장차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재림 신앙과
(4) 최후 심판의 날 그들이 믿는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무서운 진노와 형벌에서 무죄로 방면되며 구원받을 것을 믿는 신앙이다.

이제 극심한 핍박 중에서도 성도의 믿음을 지키며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오늘 나의 신앙의 현주소는 어디에 두고 있는지
그리고 신앙생활은 어떤 자세로 어떻게 해야
성경이 보여주는 바른 신앙생활인지도 배우게 되는데

이것은 이미 앞에서 언급된 말씀의 반복으로써
믿음의 역사와 [말씀을 듣고 믿은 회심의 결단을 삶 속에 실천함이며]
사랑의 수고와 [나도 주님의 희생을 따라 행동하는 사랑을 나타내고]
소망의 인내[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소망을 가지고 인내함으로
더욱 아름답게 연단 되는 신앙에 서는 것] 속에 다 들어있음을 본다.

주님!
초기 교회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보여준
신앙생활의 모델로써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나의 신앙과 삶 속에 잘 실천해 갈 수 있게 하옵소서

특별히 그들이 보여준 믿음의 역사로써
헬라[세상]의 귀신 문화와 사상에 기초하여
더럽고 악한 영의 이끌림을 따라 살았던 것들을 청산하고
택함받은 받은 성도의 거룩한 삶을 추구한 믿음의 역사를
나도 나의 신앙과 삶 속에서 잘 나타낼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