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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베드로전서*

베드로전서 4:1-11(3)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끝장냈음이라

by 朴 海 東 2020. 12. 29.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끝장냈음이라

베드로전서 4:1-11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천 명을 돌파하는 가운데
정부에서도 방역 2.5단계에서 3단계로 격상하려고 한다.
핸드폰에서도 하루에도 여러번 확진자 동정을 알려주며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은 검사를 받으라는 문자가 온다

최근에는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화곡동 **교회에서도
정부 방역 지침을 무시하고 부흥회를 하다가
확진자가 170여명이나 나와 여론의 뭇매를 맞는 일도 생겼다.
이런 현상들을 어떻게 해석하여야할까..........?

시편 91편은 여호와께서 염병이 횅횅하는 재앙의 날에도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저가 그 깃으로 덮어주심으로 그의 날개 아래 피하고
보호를 받는다고 하였는데[시91:1-7]
유독 교회에서 확진자가 많이 나오는 것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찌 정말 우려스럽다.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시공간의 제한과 환경적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이런 일반적인 상식과 자연을 무시하면서
하나님만 앞세운다고 한다면 이는 잘못된 신앙이며
세상 앞에 비틀어지고 일그러진 기독교를 보이게 될 것이다.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과 비방을 당할지언정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을 자초하는 것 때문에
주님의 영광을 가려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은 맹신적인 신앙을 버리고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정부의 지시와 방역 준수를 잘 따르는 것이
곧 주님의 말씀에 부종하는 것임은 너무나 명백하다.
앞선 말씀에서도 인간에 세운 모든 (정부의)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라고 하셨다 [2:13-17]

베드로 사도를 통하여 전달되는 오늘의 말씀[4:1-11]에서는
특별히 그 시대적 상황이나 베드로가 인용하는 글들에서
난해한 문장들이 많이 발견되기 때문에
가능한 난해구절 해설을 중심으로 하는 묵상을 하게 된다

1. 고난 받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4:1]

여기서 자칫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고난을 받으신 것 때문에
그 고난이 그를 성결케 하고 그가 죄를 짓지 않게 되었다고
오해될 소지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죄를 그쳤음이라고 하심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그 몸으로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없이하셨다.
우리의 죄를 해치우셨다의 의미를 가진다.[be done with~]

따라서 그가 이처럼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고난 받으심은
내가 더 이상은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고 하신다[4:2]

주님!
제가 이러한 주님의 분명하신 뜻을 마음 깊이 새기며
육체의 남은 때를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나를 도와주소서

2.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4:3]

사도는 우리가 이방인으로 살 때
음란/정욕/술취함/방탕/연락/우상숭배를 하며
이방인의 뜻을 좋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다고 한다

나도 가끔 죄악 된 본성이 내 마음에서 삐치고 올라오려 할 때
“지나간 때로 족하다”는 말씀을 자주 상기하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죄 지을 것 다 짓고
죄의 낙을 충분히 즐기다가 말년에 이르러서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면 안 되냐는 말을 들어보기도 했는데
회개의 은총이라는 것이 그렇게 내 생각대로
아무 때나 주어지는 싸구려 은혜가 아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 이로다 하신 말씀 같이
구원의 시제는 항상 여기서 지금(Here & Now)이 기회이다

인생을 죄와 더불어 지내며 즐길 것 다 즐기고
인생 말년에 이르러 회개하고 주께 돌아오겠다고 하는 것은
천로역정에 나온 존 번연의 글에 의하면
그 것은 마라톤 경주자가 이제 조금밖에 남지 않은 기회를 가지고
마라톤의 전 구간을 완주하려는 것 같은 어리석음 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지난 간 날로 족하다하는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어려서 혹은 젊은 날에 보다 일찍 예수를 믿게 되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고 축복인지 말할 수 없는데
그것은 마치 나의 사랑하는 주님께
다 시들어빠진 내 인생의 꽃다발을 바침이 아니요
아직 싱싱하고 향기를 토하는 꽃다발을 바침이요
맛있는 생선으로 말하면 꼬랑지 부분을 밥상에 올려드림이 아니요
고기의 가운데 토막 같은 내 인생의 가장 좋은 시기를 드림이니
천국에서 받을 상급이 그만큼 크고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은 말하기를
육체의 원욕이 다 시들어져서 더 이상 죄와 싸우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는 연령대에 주님을 섬기는 것과
육체의 원욕이 왕성하여
죄와 더불어 싸우는 성화 적 투쟁이 힘든 젊은 시기에
주님의 뜻을 따라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으로써
천국에서 받아 누릴 상급이 그만큼 더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3.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되다[4:6]

이어지는 문맥에서 이처럼 성도가 죄를 멀리하며
의롭게 살려고 할 때에
세상 사람들은 예수 믿으면 무슨 재미로 사냐고
비방하고 조소하며[4:4]
예수 믿다 죽은 사람들은 불행한 것처럼 조롱함으로
지금 살아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낙심의 유혹을 받을 수 있는데
사도는 이러한 점들을 배경으로 분명한 위로를 전한다.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여기서 죽은 자들이란 살아 생전에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고 살다가 죽은 자들인데)
그들 역시 예수 믿지 않는 자들처럼 육체로는 죽음을 당했어도
이방인들의 조롱처럼 그렇게 인생이 허무하게 끝난 것이 아니라
그들은 영적으로 살아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원한 생명(영생)에 들어갔음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4:6]

그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잠든 것이며
평안한 안식 가운데 영광스런 부활의 그날을 기다리고 있음이다

주님!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갈 때
나의 믿음을 무너뜨리려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주 성령의 위로와 평강으로
이 모든 풍파를 넘어서서
마침내 주님의 품에 이르게 하옵소서

 

(찬양으로 드리는 기도)
이세상 풍파 심하고 또 환난 질고 많으나
나 편히 쉬게 될 곳은 주 예비하신 시은소

주 믿는 형제 자매들 그 몸은 떠나 있으나
주 앞에 기도 드릴 곳 다 함께 모일 시은소

내 손과 혀가 굳어도 내 몸의 피가 식어도
나 영영 잊지 못할 곳 은혜의 보좌 시은소

(* 여기서 시은소는 자비하신 주님께서
그의 임재를 나타내시는 곳, 천국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