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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요한3서

요한삼서 1:1-15 (3) 손 대접과 관련하여 배우는 것들

by 朴 海 東 2021. 1. 11.

손 대접과 관련하여 배우는 것들

요한삼서 1:1-15

 

사도 요한이 또 다른 교회의 감독(장로)인 
가이오에게 보낸 지극히 사적인 편지가
이렇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들어가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편지이기 때문에 
교회들이 회람하여 읽는 성격의 편지도 아닌데도 
이 편지가  어떤 연유로든 소장되고 남아있게 된 것은 
이 편지를 통하여 주님께서는 
오고 오는 모든 세대를 향하여 
반드시 주고 싶으신 교훈과 뜻이 있음을 본다 

1. 사랑
나는 주님께 무한 사랑을 받는 존재이다.[1: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 하노라" 

주님께서는 사랑의 사도 요한의 가슴을 통하여
주님의 교회에 일꾼된 가이오에게 그의 사랑을 나타내시며
더 나가 오늘 이 시대 이 편지의 독자인 내게도 말씀 하신다 

그가 나를 사랑하신다. 
아무 조건 없는 일방적 아가페적 사랑으로
"너는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라고 하신다. 

이 묵상글을 올리고 있는 이 아침
세상적으로 볼때 아무것도 아닌 것같은 
나 자신의 가난하고 초라한 모습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려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자주 상실하곤하는 나에게
너는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라"고 하는
이 한 마디 말씀 앞에서 
삶에 대한 나의 근심과 불안 같은 것들이
눈 녹듯 사라지고 다시금
주님이 나를 바라보시는 눈으로 나를 보게 된다.

"참으로 나의 사랑하는 자"라는 
이 한 마디 말씀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세상은 나에게 
너 무슨 일 하는 사람이야 (내가 하는 일로 나를 평가하려하고)
너 돈 많아(내가 가진 재산의 다소로 나를 평가하려하며)
너 얼마나 배웠어(가방 끈이 길고 짧은 것으로 나를 평하려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나를 바라보시는 눈으로가 아니라
내가 세상에서 이룬 성취를 가지고
세상이 나를 평가하는 것에 자신을 허락함으로  
얼마나 많이 열등감과 자만 사이에서 갈등하는가 

그러나 주님이 "참으로 사랑하는 자"가 되어
주님의 나라 위하여 일꾼된 나는 
세상이 나의 외적인 것을 가지고 
나를 평가하는 것에 나를 내어주지 않으며 
오직 주님이 나를 바라보시는 그 눈빛으로 
나도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흔들리지 않는 나의 정체성을 간직할 수 있다

2. 주님은 내가 잘 되기를 바라신다[1:2]

영혼의 소생과 풍성함 뿐 아니라
내 몸으로 하는 일들이 잘 되고
내 몸도 강건하기를 바라고 계신다 

이러한 요한의 간구이자 주님의 바램은
당시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헬라사상에 비추어 볼 때 
매우 파격적인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주님은 내가 영육간에 강건하며
나의 범사가 다 잘되기를 바라신다는 
이 소중한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함을 배운다.

3. 평판


형제들이 너를 평하기를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1:3-4]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고 
나에 대한 좋은 소문이 나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

옛 속담에도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했는데  
그만큼 평판과 소문은 민들례 홀씨처럼 퍼져나가는 것이다
사도 요한에게 가이오에 대한 좋은 소문이 들려지고
심히 기뻐함이 된 것처럼 
여기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고 소문들은  
천상의 주님과 천사들에게도 들려져서 
혹은 기뻐함이 되고 혹은 슬퍼함이 될 수 있음을 알고
나도 가이오처럼 진리 안에서 선한 일을 하는 자가 되어
좋은 평판과 소문의 아름다운 진원지가 될 수 있기를 기도드린다

 

 

4.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그네 된 자들을 잘 영접하라 [1:5-8]

위에서 가이오에 대한 평판과 좋은 소문은 
특별히 그가 주의 이름을 위해 
당시 나그네(순회 전도자)된 사람들을 문전 박대하지 않고
주님을 존중하는 자세로 잘 하였다는 것과 관련있는 것같다. 

주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나그네 된 그들은 세상에서 아무 위로 받는 것이 없으니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고
또 이렇게 함으로 진리를 위해 함께 일하는 자가 된다고 한다. 

주후 2세기 초 사도 요한의 생애 말기에 이르러
곳곳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많은 교회들이 세워지면서
예수님과 사도들을 통하여 전수되는 진리의 도를 
바르게 전해 줄 순회 교사들이 필요했던 것 같은데
때로는 거짓 교사들의 순회 방문도 있었기 때문에 
방문을 받는 교회가 안심하고 영접할 수 있도록 
보내는 교회나 지도자를 통해 천거서도 소지했던 것 같다. 

오늘의 말씀에서는 이렇게 천거를 받고 간 순회 교사로서
 "데메드리오"가 소개되고 있는데[1:12]
그는 뭇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은 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천거를 받아 간 사람일지라도 
문전박대를 한 교회 지도자들(감독 혹은 장로들)이 있어서
이 소문이 사도 요한에게까지 전달된 것 같은데 
여기서는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1:9)

그는 으뜸 되기를 좋아하며
악한 말로 사도 요한과 그가 보낸 전도자들을 비방하면서
나그네 된 그들을 영접하지 않는 것은 그만두고
영접하고자 하는 자들까지 금하고 교회에서 내어쫓았다고 하니 
이 사람 "디오드레베"가 얼마나 잘못된 사람인지 짐작하게 한다.

“디오드레베”라는 교회 지도자가 왜 이렇게 나쁜 평판을 얻고
나쁜 사람이 되어 그 소문이 사도 요한에게까지 이르게 되고 
천상에 계신 주님과 천사들에게까지 알려진 것을 생각할 때 
이 사람의 이름이 언급된 것은 
오늘 우리 시대에도 교회의 목사나 장로가 된 사람들 중에도
마땅히 영접하고 도와야 할 주님의 일꾼들을 박대하는 일들이
있으리라는 경고와 경종을 받게 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어쩌면 “디오드레베”는 당시 소아시아에 산재한 초기 교회에서
어느 지역의 감독(장로)였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봉사와 섬김보다 
도리어 군림하고 위세를 부리는 악한 종의 모델로 제시된 것 같고 
또 그의 이러한 무례한 행동들은 그냥 이렇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으뜸 되기 좋아하는 그의 교만이 
그 마음에 샘물처럼 솟아나야 할 은혜를 고갈시켜서 
그는 교회 일꾼이라고 하면서 악에 악을 더하는 일꾼이 된 것같다

사람이 마음에 은혜가 메말라지면 여유가 없게 되고 
계산적인 생각이 앞서게 되어 야박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데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서
이런 자리에 떨어지는 것은 자신이나 교회를 위해서도  
참 안타까운 일이며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가끔 주님께서는 어떤 교회나 지도자의 마음을 알아보시기 위해서
사도 요한의 시대처럼 오늘날도 아무 볼품 없는 가난한 선교사나 
또 다른 천국 일꾼들의 발걸음이 
그 교회에 닿게 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서 그 교회가 
주님께 칭찬받고 축복받을 만한 그릇인지 아닌지 드러내기도 하신다.

이럴 때 지극히 작은 소자(주님의 제자된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하는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따뜻한 친절과 사랑으로 맞아 줄 수 있다면
그는 혹은 그 교회는 주님의 칭찬과 축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나의 주변을 돌아볼 때에 
사회적으로나 교계 적으로 지명도가 있거나 유명한 사람들은
서로 다투어 영접하고 강단에 세우려고 하지만
대부분 별 볼일 없게 보이는 선교사들은 설 곳이 없는 것을 보면
여기 요한3서의 “디오드레베”의 이야기는 
사도 요한 당시의 이야기 이전에 오늘 나와 나의 교회 이야기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삼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드린다.

히브리서 저자가 손 접대하기를 잊지 말라는 교훈을 하면서 
 아브라함의 손 대접의 선행을 해석하기를 [히13;1]
그의 손 대접이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한 것이 되었다는 말씀은
오늘의 말씀과 관련하여 내가 평소에 
내 마음이 교만하거나 강팍함으로 계산적인 사람이 되지 않고 
은혜로운 마음과 여유로움을 유지함으로 
이런 은혜와 축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한다.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  할 것이 아니니라 ”[히 13: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