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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마태복음 *

마태복음 14:1-12 / 세례요한의 비참하고 슬픈 장례에서 배우는 것

by 朴 海 東 2015. 12. 3.

세례요한의 비참하고 슬픈 장례에서 배우는 것

▼ 마태복음 14:1-12

1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2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 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6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7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8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9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11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 마태복음 14:1-12

예수님은 일찌기 세례요한에 대하여 말씀 하실때 "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구약에서
오리라 한 엘리야가 바로 이 사람이라" 했을 만큼 세례요한은 구약성경의 장지
손가락이 가리켰던 예수님외에 또 한 분의 특별한 사람 이었다 [마11:14, 말4:5]

그는 왕의 얼굴이라도 두려워 않고 죄를 지적할 만큼 하나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사람이었으며 속세의 쾌락과 안일에서도 멀리 떠난 광야에서
마치 수도자들의 원조처럼 금욕적인 삶의 모본을 보인 사람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는 왕의 잘못을 지적한 것 때문에 헤롯왕과 특별히 불법 결혼된 왕비
헤로디아의 미움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헤롯의 생일날 춤으로 그를 기쁘게한
헤로디아 딸의 소청대로 머리가 짤려져서 소반에 담겨진채 답례품으로 전달된다

그러니까 그의 제자들은 머리 없는 시체만을 가져다가 장례를 치룬 격이 되었는데
이 얼마나 슬픈고 안타까운 이야기인가 ?

많은 사람들이 애도하는 가운데 장엄하고 엄숙한 장례식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겨우 목 짤린 시체라도 가져다가 서둘러 장례하였으니...
이러한 세례요한의 죽음을 보면서 하나님께 묻고 싶은 질문들이 너무나 많다

1. 그가 오리라 한 그 엘리야 였다면 엘리야처럼 그 사역의 수고를 알아주시고
엘리야처럼 승천은 안 시켜주실망정 마지막 가는 길에 존중과 예의를 갖춘
장레식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셔야 하는 것은 아닌가 ?

2. 아직 더 일할 수 있는 30대 젊은 나이에 데려가시는 것도 아쉬운데
더군다나 뒤에서 제 어미 헤로디아에게 사주 받은 딸의 소청으로 그의 목숨이
좌우되고 목이 잘라지게 내버려 두신 것은 너무 한 것 아닌가 ?

이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공의는 어디에 있으며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이 이렇게
비천하게 취급 당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계셔야 하는가 ?

3. 세례요한이 목이 잘려 죽임을 당한 후 헤롯은 예수의 소문을 들었을 때에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 나와 그의 능력이 역사하는 것이라고 믿었는데 [14:1]
실제 그를 그렇게 다시 살려 일으켜 세울 수는 없었던 것일까 ?

세례요한의 죽음을 보면서 슬픔의 사람, 비운의 사람으로 동정하고 애도하는 마음이
끓어 오르는 한 켠에 그러나 이 모든것이 주의 길을 예비하러 왔던 한 사람의 최후
최선의 역활을 다 하고 간 모습으로 받아 들여지게 된다

그는 인간적으로 볼때에 목이 짤리는 죽음을 통하여 비운의 사람으로 비쳐지지만
자신과 예수님이 보냄을 받아 사역하는 당시 세상이 얼마나 불의한가를 고발하며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을 한 순교의 제물로 바쳐놓고 먼저 떠나고 있다

이로써 그는 주의 길을 예비하러 온 자의 역활을 다하고 하나님 앞으로 갔으니
구약과 신약을 연결시키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써 순교의 한 피를 덧 뿌리고
간 셈이다

너무 젊은 나이에 너무나 정의로운 사람이 너무 일찍 떠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죽음이고 순교의 제물로 받으신 죽음이라면

그의 죽음과 혐오스런 사형의 집행과 또 제대로 된 장례식도 받지 못하고 떠난
그의 죽음에 대해서 너무 슬퍼할 것만도 아니다

모세의 죽음으로 여호수아 사역의 시작이 열렸던 것처럼
그의 죽음을 통하여 예수님의 본격적인 사역이 시작되고 열리게 되었으니

바로 이것이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시체를 장사한 후 예수님께 가서 사건의 전말을
고한 이유이다 [14:12]

예수님은 진즉 세례요한이 투옥된 것을 들으신 후 이제는 자신이 나서야 할
차례라는 것을 인식하셨고 본격적인 사역을 준비하셨는데 [마4:12-17]

이제 세례요한의 죽음을 통보 받은 이 싯점을 분깃점으로 삼아
예수님은 본격적인 공생애 사역의 깊이로 들어가셨다 [마14:13-14]

------------[ 적 용 ]----------

세상에 보냄을 받아 한 세대를 쓰임 받고 가는 하나님의 종들의 마지막 가는 길이
각 각 다른 것 같다

오늘의 말씀에서 보여주는 세례요한의 죽음처럼 목 짤리고 제대로 된 장례식도
받지 못하고 가는 분도 있는가 하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많은 사람들의 정중한 조문의 흐느낌 가운데 영광스럽게
가는 분도 있다

그 마지막 죽음의 모습이나 그 장례의 모습이 어떠함을 떠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을 위해 살다가 주님을 위해 죽은 죽음인가 하는 것이다

자기 수명대로 다 살고 많은 사람들이 존중하며 애도하는 가운데 마지막 길을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혹 나의 죽음이 세례요한의 죽음처럼 된다하여도 혹은

전통에서 전해주는 것처럼 바울이 악명높은 메멀틴 감옥에 2차 투옥된 후
Ostin식 참수로 목이 잘려 죽는것 같은 결말을 볼찌라도 결코 개의치 말아야 할 것은

그의 죽음과 장례가 어떠했는가를 평가하는 세상의 평판과 판단은
하나님의 나라 관점에서 볼 때 전혀 무가치한 것이며 중요한 것은
그는 더 이상 세상에 있지않고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창5:24]

기도하기

내가 이 세상에서 나의 마지막 가는 길이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
개의치 않게 하소서
다만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죽음이 되게하여 주소서

혹 나의 죽음과 장레가 세례요한처럼 비참하고 불운하게 된다하여도
세상적인 평판과 판단들을 무시할 수 있는 믿음으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게 하소서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을 것이며
그 죽음이 흉했던 만큼 그 영광도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 No Cross ! No Crow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