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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마가복음 *

마가복음 14:22-31 성찬식 그 가치의 재발견

by 朴 海 東 2015. 12. 4.

성찬식 그 가치의 재발견

마가복음 14:22-31

묵상내용

지난 봄 부활주일이 가까울 무렵
하얼빈 북쪽에 있는 깊숙한 농촌 마을에서
가난한 가정교회 성도들과 성찬을 나누는 기회가 있었다

가정 교회 건물 안에는 성찬을 사모하여 모인
동리 사람들로 빽빽하였는데
막상 예배가 시작되고 성찬을 나누는 시간에 보니
그들이 준비했다고 하는 떡도 포도주도 모자라며
그것을 받쳐 드는 쟁반마저 준비되지 않은 상황 이었다.

응급조치로 조금 준비된 빵을 쪼개고 또 쪼개었으며
잔의 포도주도 반씩 비워내어 다른 잔으로 옮기고
포도주 잔을 옮길 때에는 쟁반 대신
세수 대야를 이용해서라도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잔을 돌려야 했다

성찬식 내내 마음이 무겁고 주님 앞에 죄송했지만
주님께서 그 초라하고 구차한 사람들과
그 성찬식 가운데 함께 임재 하셨고
그들의 신앙과 고백을 받으셨다는 위로의 확신이
그나마 내 마음을 자유하게 하였다.

나라와 민족은 달라도
한 아버지 하나님과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의 교통하심 가운데 같은 신앙으로 고백하며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한 그 성찬식은
어떤 장엄한 미사에도 부끄럽지 않은
뜻 깊은 성찬식의 추억이 되어 내 마음에 남겨졌다.

1. 성찬식 그 가치의 재발견 [14:22-25]

예수님은 구약 유대인들의 전통에 따라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의식의 순서를 따르는 중
만찬에 이어지는 순서에 이르렀을 때
구약 유월절의 의미를 완성하며 성취시키는 표시로
신약의 유월절 의식으로써 최초의 성찬식을 집전하셨다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적어도 200만 두 이상의 소나 양들이 희생되므로
피 비린내가 성안에 진동하였다고 하는데

이스라엘의 전 역사 속에서 속죄를 위해 드려진
모든 희생의 제물들이
마침내 예수님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과 희생을 통해
완성되고 성취되는 표시로써
유월절(무교병)떡을 떼시며 이것은 내 몸이라고 하셨고

포도즙을 가득 채운 잔을 주시며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하심으로
이 세상에 그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죄 문제가 자신의 죽음으로 해결됨을 보이셨다

무신론자들이나 자유주의자들은
예수님의 피에 대하여 폄하하기를
예수가 흘린 피나
보통 사람들이 흘린 피나
돼지의 피가 무슨 차이가 있냐고 조롱하지만
이러한 조롱들은 모두 피의 언약 밖의 사람들이
이 보혈의 가치를 알지 못해서 떠드는 소리에 불과하다

죽음의 사자가 애굽의 모든 처음 난 것들 죽이는 밤에
대문 설주와 인방에 양의 피가 발라진 집들은
건너뛰고 지나간[Pass over: 유월)의 은혜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으로 인해
나와 내 가정에도 임하였고
이제는 내가 이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들어가게 하신 은총을 만만 감사드린다.

예수님의 희생을 기념하고
나의 것으로 받아드리는 성찬예식을
카톨릭에서는 매우 엄중한 의식으로 받아들여서
세례와 성찬예식에 참여하는 그 자체로써
구원을 받는 것으로 인정할 만큼 중요시 하는데

우리 개신교에서는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예수님이 제정하신 성찬! 그 가치의 재발견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오늘의 말씀에서 재확인하게 된다.

기도하기

2. 기록된 말씀에 의지하기 [14:27-28]

1) 제자들마저 자신을 버리고 흩어질 때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성찬을 나누신 후
찬미하고 감람산에 올랐을 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속에 쓸쓸함이 묻어 있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라


지난 3년 동안 동고동락하였던 제자들마저
모두 자신을 버리고 흩어져버릴 막다른 상황에서
마침내 홀로 남겨져 밀려오는 외로움을
홀로 감당해야 할 쓸쓸함 속에서
그나마 예수님이 자신의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 모두 성경에 기록된 대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록된 말씀에 의지함으로
홀로 남겨지는 외로움을 떨쳐 버리신다[슥13:7]

2) 시시각각 목을 조여 오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제자들이 자신을 버리고 모두 흩어져 버릴지라도
이것은 모두 성경에 기록된 대로 되는 것이기에
나는 결코 너희들을 탓하지 않을 것이며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는 말씀에서
기록된 말씀에 의지하여 죽음을 넘어서는
주님의 비장한 마음과 믿음의 담대함이 엿보인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놓은 상황에서
흔들리고 흩어질 제자들을 향해
어떻게 이처럼 담대하게
자신의 부활을 선언할 수 있었을까

예수님은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으로가 아니라
시편에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말씀을 의지하였는데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16:10]
고하신
기록된 말씀을 굳게 의지하셨기에
담대히 자신을 부활을 선언하신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적용과 기도 ]
나는 나의 신앙의 본질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

카톨릭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의 본질을
세례나 성찬이나 견진성례 같은 일곱가지(7)성례에 두며
적극적 사고방식을 주장하는 성공신학의 추종자들은
나는 할 수 있다는 신념에 자신들을 세우며

신비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느끼고 의식할 수 있는
영적 감각에 본질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지는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더라도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자신이 추구하는 모든 것들을
신념이나 감각적인 것들에 의존하지 않으시고
또 구약의 전통적 의식들에 의존하지도 않으셨고

오직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입각하여
모든 것을 행하셨음을 볼 때에
오늘 내가 추구해야할 신앙의 색깔과 본질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엿보게 된다.

기록된 말씀에 의지하여
모든 선한 일에 본을 보여주신 주님이시여 !

내가 이 땅에서 주님을 섬기는 날 동안에
내가 참여할 수 있는 화려한 의식이 없어도
그리고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이고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기록된 말씀에 의지하여
주님께 향한 나의 행보를 든든히 하게 하옵소서

묵상적용

3.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14:28-31]


모든 사람이 다 주를 버려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않겠나이다

베드로의 다짐을 나도 그동안 얼마나 많이 다짐 했던가

주님과 함께 죽음에 가더라도 부인하지 않겠다던
베드로의 다짐이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무참하게 깨어졌을 때 베드로가 느꼈을 그 참담함은
곧 내가 그동안 수없이 다짐하고도 또 다시 무너지며
신앙생활에서 맛보았던
바로 그 쓰디쓴 실패이며 나의 참담함이다

그러나 베드로의 실패와 배신을 다 아시면서도
여전히 그를 용납하시며
그를 회복시키실 것을 암시하는 주님의 약속에서
나도 한 줄기 희망을 본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너희를 앞장서서]
갈릴리로 가리라 [14:28]


이 얼마나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주님의 약속인가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는 약속에서
"먼저”가 가지는 의미는
너희의 앞에서
또는 너희의 앞장에 서서인데
주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의 실패와 배신을
다 아시고 내다 보시면서도
결코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실 것과
그들이 자신들이 경험한 실패와 좌절을 딛고
더 단단한 신앙으로 일으켜 세워질 것이며
회복하실 것을 담아서 하시는 약속으로 이해하게 된다.

-----[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

다짐하고 또 다짐해도 안 되는
베드로와 제자들을
끝까지 용납해주시고
기다려주셨던 주님의 은혜가
내게도 임하여 나를 세워주심같이

참고 용납하며 기다려주는
주님의 그 동일하신 은혜를
내가 오늘 나의 선교지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타낼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