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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누가복음 *

누가복음 6:1-11 눈은 마음의 창-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십니까

by 朴 海 東 2015. 12. 5.

눈은 마음의 창-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십니까

누가복음 6:1-11

묵상내용

예수님 당시 유대나라에는 백성들에게 정신적 지도자 역활을 했던 바리새인들이
전국적으로 약 칠천명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이제 가는 곳마다 이들의 감시 안테나 망에 포착되는 인물이 되셨다.

예수님의 등장으로 인해 백성들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때문인지
그들은 사사건건 예수님의 비리와 약점을 캐내려고 혈안이 된 것처럼 보인다

하여 배고픈 예수 전도단이 어느 안식일에 밀밭 길을 지나가면서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며 먹은 것이 그들의 눈에는 안식일 위법으로 포착 된 것이다

모세 율법에 의하면 배고픈 사람이 남의 포도원에 들어가서 포도를 따먹을 수 있으나
그릇에 담아 가지고 가서는 안되며
배고픈 사람이 남의 곡식 밭을 지나가다가 이삭을 잘라 비벼 먹는 것은 가하나
낫으로 잘라 거두워 가는 것은 금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이삭을 잘라 먹은 것으로는
꼬투리를 잡을 수 없었으므로 왜 안식일에 그런 일을 하느냐는 것에 시비를 건 것같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빈것이 안식일에 추수를 하는
격이 되었고 이는 안식일 위법 사례가 되었다는 쪽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하던 중 배가 고팠을 때
아비아달 제사장이 있는 성막에 들어가 제사장 외에는 누구도 먹을 수 없었던
진설병을 자신과 자신의 추종자들이 함께 먹었던 성경적 사레를 들어
비판하는 이들의 입을 막으신다.

강아지도 밥 먹을 때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우리네 속담이 있는 것처럼
배고픈 사람이 배고픈 허기를 채우기 위해 하는 일은 이처럼 하나님도 눈 감아
주시는 일이니 이런 일을 가지고 시시비비를 따지지 말라는 말씀으로 받아 들여진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에서 정말 중요하게 닿아지는 구절은
---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 이니라 [6:5]----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굳이 이 말씀을 덧 붙이신 것은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너희의 진정한 안식과 쉼의 축복을 위하여 준 계명을
오히려 사람들에게 올가미를 씌워 구속하는 악 법으로 전락 시켰느냐
이 안식일 율법의 진정한 해석자는 나니라.

너희는 율법의 더 중요한 의와 인과 신은 버리고 율법의 문자적 해석에 메달려서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며
너희들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리에 세우고 있구나" 하는 말씀으로 받아 들여진다.

하나님이 자기백성의 진정한 안식과 쉼을 주기 위해서 율법으로 주신 안식일 제도가
예수님 당시에 이르러는 오히려 백성들의 목을 옥죄는 율법으로 작용하고 있었으므로
예수님은 안식일 제도의 얽매임으로부터 백성들을 자유케 하기 위해서 힘쓰신 것같다

이어져 나오는 고창병 환자를 바리새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일부러 안식일에 회당에서 고쳐주는 사건도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진다.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그래서 안식일에 더 많은 병인들을 고치시고
안식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시는 일을 하시므로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잘 못 만들어 놓은 안식일 제도의 파괴자로 비쳐진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기존 질서의 파괴자로 보였을 것이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인물로 비쳐졌으므로

오늘의 말씀 마지막 결론의 이야기처럼
"저희는 분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처치할 것을 서로 의논하니라" 쪽으로
-전체 가닥을 잡아가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처럼 보여진다 [6: 11]

--------[ 적 용 ]--------

내가 다른 사람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 하는 사람의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착하고 선한 마음을 나의 눈을 통하여 투영시키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약점을 잡거나 비판적 안목으로만 바라보는 사람의 인생은 불행하다.

그들은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피곤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고
자신도 남도 다 힘들고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 친족 가운데 어떤 분은 만날 때마다 무슨 좋은 이야기는 안 나오고
무슨 트집 잡을 것이 없는가 하는 시각으로만 사람을 상대하기 때문에
그 분을 만나는 일이 생기면 벌써부터 마음이 힘들어 진다

트집 잡을 것이 없으면 옷 입은 것이나 심지어는 코털까지 트집을 잡을 정도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 보았다. 왜 저분은 사사건건 모든 것을 부정적으만 보고
왜 다른 사람의 꼬투리를 잡는 것에 저토록 민감하게 하는 것일까.......(?)

나는 그 분의 마음 속에 있는 어떤 상처를 보았다.
그리고 그 상처들로 말미암아 굳어진 마음의 어떤 악함들을 보았다.
지난 날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약점에 대해 많은 지적을 받았거나 그로 인한
상처가 있기 때문에 자기 방어와 자기 보호 차원에서 다른 사람에 대해
먼저 선수를 치고 나가는 것이 그 분의 마음과 생각에 베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말씀에 주제로 등장하는 안식일 문제를 논하기 전에
먼저 이 좋은 안식일을 축복의 날로 선용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올가미 씌우는
법 망으로 사용하고 있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 특히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우리 가족은....(?) 혹은 우리 교회에는 ...(?)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것들을 부정적 시각으로만 바라보므로 잘 못 사용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그리고 내가 그 부정적이고 비판적 시각의 주인공이 되어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나의 마음이 나의 눈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거나 사건들을 바라볼 때
오늘의 말씀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처럼 엿보는 자의 불행한 시각으로 가지말고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들을 세워주고 보호해주는 선한 눈 빛의 사람이 되어야겠다

기도하기

주님께서 사람들을 바라보시는 그 긍휼과 사랑의 눈 빛으로
내가 다른 사람들을, 그리고 모든 것들을 바라 볼 수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