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1:19-28 아 ~ 세례요한 !

by 朴 海 東 2015. 12. 7.

아 ~ 세례요한 !

요한복음 1:19-28

묵상내용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생명의 종교에서
형식주의 종교로 전락된 유대교와 그 지도층들에 대해
준열한 책망으로 돌 직구를 날리며 [마3:7]
연일 회개를 촉구하고 또 그 회개의 표시로
세례를 베풀었던 세례 요한에 대해 [마3:1-10]

매우 기분이 상했던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심기를 건드린 세례요한을
거짓 메시야로 적발하고 처단하기 위한
예비 조사를 위해 공동 조사단을 파견하여
피차간에 주고받는 다섯 가지 질문과 답변이 나옵니다.

첫 번째 질문: 네가 그리스도냐 [1:20]
두 번째 질문: 네가 엘리야냐 [1:20上]
세 번째 질문: 네가 그 선지자냐(신18:18) [1:21下 ]
네 번째 질문: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 [너는 누구냐: 1:22]
다섯 째 질문: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1:25]

여기서 공동 조사단이 질문한 다섯 번째 질문은
매우 엄중한 질문인데
그것은 에스겔36:25/37:23절에 근거하여
오직 하나님과 그이 이름으로 오는 메시야/그리스도만이
이 정결의식으로써 세례를 베풀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따라서 세례요한의 답변에서는 거짓 메시야의 단서를
잡아내지 못했지만 이 세례행위를 꼬투리로 잡아
거짓 메시야로 처단하려고 하는 음모가 숨어 있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세례요한은
자신이 베푸는 물세례는 곧 자기 뒤에 등장하실
메시야/그리스도께서 베푸실 (성령)세례에 대한
예비적인 세례이며
그를 사람들 가운데 드러내기 위한 세례로써
이미 그 분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으로 서 있음을 밝혔고[1:26]

자신은 당시의 [이방]종들이 주인이 돌아왔을 때
자신들의 주인에게 행했던 관습처럼
그 분의 발아래 무릎을 끓고
그 분의 샌들 끈을 풀어드리기도 감당치 못할
종으로 자처 합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은
세례요한은 훗날 예수님의 설명처럼
분명히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했던 대로 [말4:3]
오리라한 그 엘리야임에도 불구하고 [눅7:27]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으로 보냄 받은 [눅1:17]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당시의 유대인들이 기대한
다시 오는 엘리야는
죽지 않고 승천한 자이기에 [왕하2:11]
반드시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에 근거하여[말4:5-6]
종말에 그 엘리야가 문자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재림할 것이라는
잘못된 엘리야 관을 가졌기 때문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어찌되었던 세례요한을 거짓 메시야로 몰아서
제거하기 위해 파견된 공동 조사단과
세례요한 사이에 오고간 이 대화 속에서
세례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

그것은 한 마디로 자신을 이사야의 예언처럼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외치는
광야의 소리라고 정의 합니다 [사40:3]

여기서 세례요한은 자신을 인격이 아닌
하나의 “소리”라고만 말하고 있는데
이는 자신을 낮추고 곧 등장하실 그리스도를
높이고자 의도적으로 하는 말로써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다만 너희가 그토록 기다려온 분이
이미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한 목소리라고 자신을 지극히 낮추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의 말씀에서 세례요한은
자신의 정체성을 두 가지로 표현했는데
하나는 (광야에서 외치는)소리이며
다른 하나는 당시 유대인 종들은 하지 않았고
이방인 종들만 그 주인에게 하였던
주인의 발아래 무릎 끓고 신발 끈 푸는 종으로
자신을 비하하였으니
세상에 이 보다 더 낮아진 정체성을 가지고
주님을 섬긴 종은 달리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묵상적용

예수님을 높이 드러내기 위하여
이렇게 자신을 비하시키며
지극히 낮은 자의 자리로 내려간
당대의 영웅 세례 요한의 모습은

마치 오늘 세례요한처럼 동일하게
주님을 증거 하는 자들로 세움을 받았지만
높은 자리를 탐하고
더 좋은 조건과 대우를 기대하며
체면을 앞세우며 품위 유지를 위해
겉 치레 하기를 좋아하는
우리 목회자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밝히는 것으로 닿아집니다.

목사와 장로들의 회합인 교단 노회에 나가보면
은근히 누가 좋고 비싼 차를 타고 왔는지
비교하게 되는 마음이 숨어 있는 것을 보면서
주님의 신발 끈이라도 풀기 감당치 못할
종으로 자처했던 세례요한의 고백 앞에
심히 부끄러워지는 마음입니다

전도사 시절 이었던가 내가 섬겼던 교회의
목사님이 그해에 노회장으로 당선 되었는데
그 분은 노회장의 품위에 걸 맞는
좋은 자가용을 타고 가야
개인이나 교회의 체면이 선다고 하며
당회와 제직회에서 승용차 교체를 요구하셨고
또 그렇게 요청하신대로 좋은 승용차를 타고
나가시는 것을 보고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마음 깊이 다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안에도 그 분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위선과 허위로 나 자신을 단장하고 싶고
체면을 세우고 싶은 거짓된 마음이 있는 것을 보면서

오직 자신의 사명에만 충실했던
세례요한의 강직한 성품과 인격 앞에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오 주님 !
나도 세례요한처럼
주님을 위하여
주님을 증거하는
오직 한 소리로만 존재하며

주님의 신발 끈을 푸는 종으로
오직 주님과
주님의 양 무리를 섬기는 종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입혀 주옵소서.

 

*. Tip.

사도 요한은 지난날 자신이 주님의 제자로 따르기 전

먼저 세례요하의 제자로 있었을 때[요1:36-39]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만남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하였고

귀로 들었던 모든 일들을 상세히 드러냄으로써

이미 이 세상에 오셨다가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모든 구속사역을 십자가와 부활로 성취하시고

다시 하늘 보좌로 돌아가신 예수님이

곧 자신이 본래 추종했던 세례요한이 그토록 증거했고

세상 가운데 드러내고 싶었던

바로 그 메시야/그리스도 였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위대한 점은 이처럼 자신을 주님 앞에서

한 목소리와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할 종으로 비유한 것 뿐 아니라

본래 자신의 제자였고 추종자였던 요한과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까지

자신을 떠나 주님을 따르게한데서 더욱 감동을 줍니다[요1:3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