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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3:22-36 들러리

by 朴 海 東 2015. 12. 7.

들러리

 

요한복음 3:22-36

 

 

묵상내용

신앙생활에 있어서 시기심의 병이라는 것은
사람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가장 무서운 독소 중의 하나다

교회 안에서나, 신앙 단체 또는 공동체 안에서
이 시기심의 병은 언제나 내 영혼에 잠복하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내 마음을 괴롭힐 수 있는데
오늘의 말씀에서 보여주는 세례요한의 자세야 말로
내 안의 시기심을 다스릴 수 있는 묘약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가 있었던 예루살렘을 떠나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풀었던 요단강 쪽으로 가서
세례를 베푼 것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이어지는 말씀에 보면
사실은 예수님이 세례를 준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준 것이었다[ [4:1-2]

왜냐하면 예수님은 세례를 베푸시기보다
세례를 주라고 명하시는 분이되시기 때문이다[마28:19]

세례요한과 예수님을 비교하게 되는 오늘의 말씀에서
그동안 세례요한에게 와서 세례를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그를 떠나 예수에게로 몰려든다고 하니

세례요한을 추종하는 제자들에게 이것은 기분이 나쁘고
시기심을 유발시키는 일로 작용이 되었고
따라서 자신들의 선생인 세례요한에게
시기심을 유발시키는 말로 세례요한을 흔들어놓고 있는데
이에 대한 세례요한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하다.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것이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3:27]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3:30]


예수님을 세례요한과 비교우위에 놓고
실망감에 사로잡힌 자신의 제자들에게
세례요한이 그들을 달래면서 하게 되는 이 말씀들은

내가 이 땅에서 주님을 섬기는 동안에 발생될 수 있는
수많은 시기심을 충동질할 수 있는 마귀의 유혹 앞에서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축복의 말씀으로 받아 드린다.

이런 점에서 세례요한이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구속 역사의 무대에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후
자신은 나레이터의 역할로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즉각 물러날 수 있었는데도

하나님께서 그를 즉각적으로 불러 가시지 않고
구속역사의 무대에서 퇴장 시키지도 않으시며
잠깐 동안의 기간이지만 요단강이라는 사역지에서
예수님의 사역과 중첩되게 내버려 두신 이유가

오늘의 말씀과 같은 이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통해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천국 일꾼[종]들에게
하나의 Sample 로 삼으셨다고 생각하니
과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만사에는 때가 있고
의미가 있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데 세례요한의 겸손을 보여주는 오늘의 말씀에서
더욱 마음에 감동으로 닿아지는 말씀은
그가 자기 자신을 예수님의 “들러리”라고 자처한 것인데

그것은 신랑의 결혼식에 그의 친구가 들러리가 되어
신부의 집으로 인도해가는 역할과 비교하여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설명한 것이다 [3:29]

오늘 이 땅에서 천국 일꾼이 되어 주님을 섬기는 일에는
주인공이 되는 것보다 들러리가 되어
주님을 섬기는 일들이 더 많고 또 주님은 이처럼
기꺼이 들러리가 될 사람들을 필요로 하시는데
너도 나도 모두 주인공이 되려고 하니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지는 것들을 많이 보게 된다.

세례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밝히 고백처럼
주님이 나를 이 자리에 세우신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가를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또 하나님 나라의 일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개입하시어 각 사람의 위치와
역할을 세우시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분수 이상의 생각을 가지지 않아야 하고[롬12:3]
하나님께서 나에게 세워주신 위치에서
거기에 걸맞게 처신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정말 아름다운 신앙이며

바울의 말처럼 주님이 오시는 그날에
주인공이나 들러리나 같은 상을 받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딤후4:8]

묵상적용

그런데 예수님과 세례요한과의 관계에서 보는 것처럼
내가 주님의 들러리가 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오히려 영광스러운 일로 받아 드릴 수 있으나

같은 주의 종이 된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다른 사람의 들러리가 된다고 하는 것은
받아 드리기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왜냐하면 사람의 심리 가운데는
내가 항상 중심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서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했던 것처럼
내가 다른 사람에게 나 자신을 맞추어 주기보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맞추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더불어 내가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싶은 사람이 되어
인기와 영예를 얻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은 교회를 하는 목회자나 성도들은
대형교회 목회자나 성도들에 대한 안티 반응이 있고
목회자들 사이에는 누가 설교를 더 잘하는지
혹은 누가 더 베스트셀러 책을 내었는지 ....등 등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그리고 신앙생활 중에도
마음에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일들은
정말 많고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아침
주님께서 세례요한을 통하여 보여주신
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신앙고백들을 마음에 품고
내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시기심의 발로들을 잠재운다.

모든 것은 주님의 주권적인 손에 달려 있다

지금 나의 위치가 밑바닥에 있는 것 같고
지금 나의 위상이 존경받는 자의 위치가 아니라
사람들이 막 대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하여도

나를 이런 자리에 세워주신 주님의 주권을 생각하면
이것은 주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이며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주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실 때 그의 자리를
짐승의 우릿간 여물통 위에서부터 시작하셨으며
마침내는 십자가에서
그 몸이 못 박혀지는 자리까지 내려가시고
생명이신 분이 죽음의 자리까지 내려가지 않았던가?

모든 것은 주님의 손에 달려 있으며
주님께서 감독으로 연출하시는 구속역사의 무대에서
주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잠시 잠깐의 역할일 뿐이다

그러니 세례요한의 입을 통하여
주님이 주시는 말씀에 기대어 위로를 삼고
주님이 시키시는 나의 위치와 나의 역할에 충실하자.


만일 하늘에서 주신 것이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John - [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