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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4:1-10 Road to the Samaria !

by 朴 海 東 2015. 12. 7.

Road to the Samaria !

 

요한복음 4:1-10

 

 

묵상내용

[Road to the Samaria]

요한복음이 전개해나가는 내용이 깊어질수록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이 어떤 관점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에 대해 기록해 나가는가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요한은 예수님이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대화 하나에서도,
이런 점을 놓치지 않고 기록해 나간 것 같다

3장에서는 당시 유대사회의 최고 상류층이며
경건한 율법주의자 니고데모를 등장시켰다면

4장에서는 예수님이 당시 유대인들이 꺼려하는
사마리아 길로 가시면서 만나게 되는 한 여인,
그러니까 가장 하류층의 여인이며
도덕적으로도 몇 번의 이혼 경력을 가지고
밑바닥 인생을 전전해온 한 여인을 등장시킨다.

니고데모와 이 여인을 비교해 볼 때
상류층과 하류층의 차이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있으며
경건한 자와 불경건한 자의 차이가 있고

무엇보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이라고 하는
지역과 종족의 차이가 있는데
예수님은 이러한 모든 차이를 넘어서서
이들을 똑 같이 동일한 인격으로
상대하시며 만나 주시는 것을 통해
예수님께서 품으시고 구원하시는 영역에는
이런 모든 것들이 초월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보면
예수님은 니고데모보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 가신 것을 엿보게 되는데

이는 니고데모가 밤중에
그것도 자기 발로 찾아온 것에 비해
사마리아 여인에 대해서는
뜨거운 더위를 무릅쓰고 한 낮에
직접 자신의 발로 찾아가고 계시며

그것도 유대인과 사마리아 인들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미움과 종족 차별이라는
높은 장벽을 넘어서서 찾아가셨다고 하는 점이다.

물론 예수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 가시게 되는 이유가
바리새인들이 자신을 세례요한과 비교시키며
경쟁의식을 충돌 질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표면적 이유를 달고 있지만 [4:1]

예수님은 이미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는 여정에서
굳이 해변 길로 가는 제1 루트와
요단강을 건너 베뢰아 지방으로 돌아가는 제 2루트를
마다하고 극단적인 경우에 선택하는 제3의 루트로써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제3의 루트를 선택하신 데에는

하늘 아버지께서 사마리아 땅에 살고 있는
이 한 가련한 여인을 찾아가게 하시는 뜻이 있음을 보며
예수님이 이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 가시는 그 자체로써
이미 충족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있으며
이 세상 그 누구, 어떤 사람이라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은
결코 없다는 것을 이 예수님의 행보에서 엿보게 된다.

그런데 오늘의 사마리아 여인과 만나시며
그 녀의 마음을 열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사용하시는
대화의 접근법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쉽게 열게 하시는 방법으로써
동정심에 호소하신다.
그러니까 자신이 상대방에게 동정을 베풀어 마음을
열게 하는 방법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상대방이 나에게 작은 동정이라도 베풀어서
그것으로 인해 마음을 열게 하는 방법인데
예수님은 후자의 방법을 사용하여
이 여인의 마음을 두드리셨다.

그러나 물 한 잔만 달라고 하는 이런 가벼운 요청은
누구라도 거절할 수 없는 쉽고 가벼운 요청인데
뜻 밖에도 사마리아 여인은
얼마나 마음이 굳게 닫혀있는 사람이었는지
이런 가벼운 요청조차도 거절할 만큼 쌀쌀함을 내 비쳤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도리어 자신이 동정을 베푸는 방법으로
그녀에게 접근하시는데 그것은
그녀가 호감을 가지고 마음의 틈새를 열만한 단어로써
선물 이라는 말과 생수라는 말을 사용하시어
이것을 너에게 주고 싶으며 줄 수 있다는 말씀으로
그 녀의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리셨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예수님의 이러한 대화 접근법은
그대로 적중하여 그녀와 소통의 물꼬를 트게 되며
자기와 대화 하고 있는 분이 곧 그토록 기다려온
메시야 인 것을 확인하게 되고 [4:26]

이토록 더럽고 비천한 자기 같은 것을 만나주기 위해
그 먼 길을 걸어오신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감격하여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 들어가
이 소식을 알리는데 까지 나아가게 된다. [4:28]

묵상적용

그러나 오늘의 말씀에서 가장 나의 마음을 끄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더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시면서
다른 유대인들처럼 제1, 제2의 루트가 아닌
제3의 루트로써 굳이 사마리아 길로 가신 것에
묵상의 방점을 찍게 된다.

당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를 가로막은
해묵은 갈등은 길게는 700년에서
작게는 400년 이상 이어오고 있었는데

그 출발은 주전 722년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 멸망하면서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이스라엘의 피를 혼혈로 만들기 위해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라아에 이방민족들을 이주시켜
통혼하게 함으로부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성민으로서
순수 혈통을 잃었고 사마리아 인들로 불리게 되는데
여기서 부터 이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경멸이 시작된다.

그런데 후에 남 왕국 유다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으나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페르샤 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그들은 순수 민족성을 보존할 수 있었고
성전의 재건축도 할 수 있었는데

사마리아 인들의 성전 건축 연합 제의를 거절한 이유로
성전 재건에 많은 방해를 받게 되었으며 [스4:1-4]
이로써 두 민족 사이의 골을 더 깊어지게 되었다

그 후 사마리아 인들은 모세가 축복의 산으로 명명한
그리심산에 자신들의 성전을 건축하고 모세 오경만을
받아드리는 여호와 신앙을 이어가는데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 중심 예배를 명하신
신명기 말씀에 대한 정면 도전이 되어 [신12:6,11,18]

마카비 가문의 통치 시대에 유다의 침공을 받게 되고
이 성전 마저도 유다인들에게 파괴되자 [BC 128년]
두 민족 사이의 증오는 더 깊어지게 된다.

더 이상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두 민족 사이에 존재하는 해묵은 갈등을 넘어서서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가신 행보는 파격적인 것이며
이것은 장차 복음을 통하여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올 것에 대한 신호탄이 되어서

후에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지나
승천하시기 전에 지상대위임령을 내리시면서[마28:18-20]
예루살렘과 유대를 넘어서서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를 명하시게 되며
사도행전에서는 사마리아 전도와 교회 개척에 대표적인
선두주자로서 빌립 집사와 그 가문이 사마리아에서 펼친
헌신적인 선교사역들을 전해주고 있다 [행8:4-8, 21:8]

오늘의 말씀에서 묵상의 초점으로 삼게 되는
예수님의 사마리아 길로의 행보는

오늘 우리 민족과 같은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사상의 대립으로 해묵은 갈등에 놓여있는
북한과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되는지 그 해답을 본다.

그것은 주님의 은혜를 충족하도록 받은 우리가
먼저 북한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이며

하늘 아버지의 뜻을 따라 모든 장벽을 초월하여
사마리아를 찾아가셨던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가 먼저 찾아가야 되며 이 일을 위해서
남한의 교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된다는 것을
오늘의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한다.

--------[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가련한 한 여인의 구원을 위해
사마리아 길로 가신 주님 !

주님께서는 이 한 여인을 통해
사마리아 전체의 구원을 내다보셨습니다

오늘 우리 남한 사회가 더 이상
종북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지금 같은 분단과 갈등 상황을
끝없이 이어가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파격적인 행보를 본받아
또 다른 사마리아로 가는 길인
북한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