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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3:1-8 Are You born again

by 朴 海 東 2015. 12. 7.

Are You born again

 

요한복음 3:1-8

 

 

묵상내용

1. 사람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2:23-25]

요한복음 전체를 이해해가는 열쇄가 될 수 있을만한 요한복음 3장과 특별히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의 입장에서 묵상해보게 된다.

이미 요한은 밤에 은밀하게 예수님을 찾아온 유대인의 지도자 니고데모의 방문이 있기 전에 유월절 절기 기간 중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라고 기록하였다 [2:23-25]

이제 3장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한 실례로써 예수를 방문한 니고데모를 소개하고 있는데 요한은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시는 예수님이 당시 니고데모의 마음을 꿰뚫어보시고 주고 받았던 인상 깊었던 그 날의 대화들을 떠올리며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사람은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는지 천하보다 귀한 거듭남의 진리를 전달하고 있다.

2.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서 보는 것

이 복음서를 기록한 요한은 성령의 감동 가운데 정말 기록 변주의 천재성을 발휘하면서 밤의 어휘를 사용하여 니고데모의 심리를 들쳐 내고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은 공생애가 끝나갈 무렵 최후의 만찬 상에서 유다의 배신을 암시하시고 회개를 기회를 주시지만 끝내 회개를 거절하고 떠나가는 변절자에 대해 요한은 밤의 어휘를 사용하여 기록하기를
유가가 그 조각을 받고 나가니 곧 밤 이러라[요13:30]
고 기록함으로써
유다에게 드리워진 어두운 절망을 어두운 밤이 주는 절망적인 분위기로 암시했는데

오늘의 말씀에서 예수님을 찾아온 한 유대의 지도자 니고데모의 방문이 밤에 이루어진 것을 통해 그가 당시 유대사회의 최고 권력층인 72인 산헤드린 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에 찾아온 것뿐만 아니라

진정 유다 백성의 장래를 염려하는 지도자로써 그의 마음이 밤처럼 어둠으로 눌려있는 절망감과 또 자신이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지도자이자
당시 전국적으로 6천여명 안에 들어가는 바리새파로서 최고의 경건주의자이며 율법을 통달하는 자였지만 여전히 영적인 밤의 어둠에 눌려 헤매는 자로서 참 구원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예수님이 자신에게 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찾아온 밤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

3. 니고데모에게 던지신 말씀에서 엿보게 되는 것들;

그런데 니고데모가 예수님이 유월절 기간 중에 예루살렘에서 행한 표적들을 언급하면서 당신은 하나님께서 우리 백성에게 보내신 선생으로 받아드린다고 말하는 것에 반해 예수님은 이 말과 전혀 상관없는 것 같은 동문서답 같은 답변을 하시는 것 같은데 그것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나의 묵상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이 궁금증에 모아지게 되는데
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문제와 하나님의 나라 보는 문제를 거론하셨는지 정말 궁금하기 짝이 없다.예수님의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은 과연 동문서답격 말씀인가(?)

묵상적용

1)
니고데모는 민족의 지도자로서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유다의 임금으로 앞세워서 로마로부터 유다의 독립을 추구하고 싶어 찾아온 것일까...(?)

당시 바리새인들은 로마의 무력통치와 타락된 헬라문화의 세속화 위협 속에서 유다 민족 고유의 히브리 신앙을 지켜내며 민족자존의 독립을 꿈꾸었고
실제로 바리새파 사람들 중에는 상당수가 열심당원에 가담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이러한 심리를 꿰뚫어 보시고 자신이 정치적인 메시야가 아니며 땅의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오신 것을 이렇게 말씀하신 것일까...(?)

2)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거듭남의 문제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것은 동의어로써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게 되는데 니고데모는 자신이 민족의 지도자였고 당대 민족의 신앙을 영도하는 바리새파로서 율법을 가르치는 자였지만 캄캄한 밤으로만 살아가는 소경처럼 여전히 영적 어둠과 무지 가운데 살아가는 자신의 고민을 예수님께 해결 받고 싶은 고뇌하는 지성으로써 찾아온 것 뿐 아니라

자신이 유다 민족의 지도자로서 다른 사람들처럼 메시야가 오시어 찬란했던 다윗 왕국의 시대처럼 그 날을 영광을 재현해주는 메시야의 날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로 찾아온 것 같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믿고 기대하기 보다는 선생[랍비]정도로 바라보는 자신의 영적 수준을 자신의 입으로 고백하였던 바 [3:2]

이런 니고데모의 마음을 다 꿰뚫어보신 주님은 네가 아직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는 영적인 눈이 열리지 못했고 이 나라에 들어올 수 있도록 네가 아직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아서 온 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서 나를 보고 선생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주지시키는 것으로 받아드려 진다.

그리고 이러한 거듭남의 역사는 바람의 운행을 사람이 관여할 수 없는 것처럼
오직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가지고 행하시는 것으로 성령의 역사로만 되며, 사람은 이 점에 있어서 수동적일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셨는데 [3:8]

이것은 당시 사람이 구원 받기 위해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모세의 율법을 더욱 세분화 시키며 행위구원을 강조하고 백성들에게 이 율법의 굴레[멍에]를 씌웠던 최고의 경건주의자 바리새파였던 니고데모에게 큰 충격의 말씀으로 닿아졌을 것임에 틀림없다.

3)
오늘의 묵상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의 구주요 주님 되심을 믿고 알게 해주신 성령님의 역사를 무한 감사드린다.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下]


오늘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서 진정한 인간의 구원자로 오신 것을 알지 못하고 위대한 인류의 스승[선생]정도로만 생각하며 또 우리 자녀들이 보는 교과서에도 세계의 4대 성인 중에 한 사람 정도로 쓰여 있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인간이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바로 알게 되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들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무나의 것이 아니며 이것은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되는 것이 아니고

또 니고데모와 또 당시 예루살렘의 사람들처럼 예수님이 유월절 절기에 행하신 수 많은 표적을 보고서도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여 이루어지는 놀라운 신비이며 축복이라고 생각할 때

이 아침 내가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고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게 되며 이 나라의 백성으로 불러주신 주님께 무한 감사드린다.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나의 눈 열어 예수님을 바로 보게 하시고
나를 어둠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신 성령님!

오늘도 바람같은 운행으로
사람들의 영혼에 접촉하시며 역사하실 때
제가 성령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예수 복음의 전달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