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절묵상 3:16] 요한이 전하는 복음 중의 복음 [1]
▼ 요한복음 3:9-21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은 복음서의 시작을
로고스[말씀] 찬가로 시작하였고
로고스[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고 하였으며 [1:14]
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1:18]고 하였는데
요한은 이 로고스
찬가의 절정에서 소개했던 독생자가
그냥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오실 수밖에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 때문 인 것을 밝힌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3:16 上]
성경 전체를 한 구절로 요약한 것처럼 빛나는 계시가 되는
이
말씀 속에는 신론/인죄론/기독론/구원론이 함축적으로
들어있는데 이처럼 심오하고 깊은 말씀들을 압축파일처럼
담고 있는 이 말씀을 나의
이 졸렬한 필설로 풀어내기에는
언어도단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이 한 구절 말씀에 담긴 한 단어만이라도 붙잡고
나의
마음을 나타내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을 따랐던 요한이 예수님을 통하여
바라보게 되었던 하나님과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주시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 나의 마음을 집중하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어떤 찬송가 작가의
고백처럼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다 하였고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라고 한 것처럼
내 지식과 감정의 그릇에 담아져서
알 수 있고 느껴질 수 있는 그 사랑이란 한계가 있으며
그것은
마치 바닷물이 출렁이는 해변에서
한 컵의 바닷물을 담는 것에 지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이 사랑을
깨닫고 알게 되며
이 사랑에 반응하여 하나님 사랑의 표시인 독생자를
자신의 구주요 주님으로 영접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오늘의 말씀에서 요한은 이 복음 중의 복음인 요3:16절을
말하기 전에 그래서 먼저 모세의 놋 뱀 사건을 예로
들며
예수님이 이 사건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말씀하신 것을
상기 시키고 있다 [3;14-15].
광야 노중에서 불평하므로
불 뱀에 물려서 죽어가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모세가 만든
장대위의 놋 뱀을 바라보므로 생명을 얻은
것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하나님이 내어 주신 아들이 매달린
십자가로 그 시선을 향하게 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인지
내가 다 알고 느끼지 못한다고 하여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매달려 죽게 하신
이 십자가를 통해 자기 사랑을 표시했다는 것인데
비록 나는 부정하고
더러운 자여서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 가련한 내가 하나님께 나올 수 있게 하려고
자기
아들을 이렇게까지 하셨다는
무서운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할 때
내가 이 사랑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나의 멸망이요
이 사랑을
받아드리는 것 자체가 구원인 것을 믿는다
--------[ 말씀에 응답하는 찬양기도]-------
다 표현 못해도 나
표현하리라
다 고백 못해도 나 고백하리라
다 알수 없어도 나 알아가리라
다 닮지 못해도 나 닮아가리라 X2
그
사랑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사랑 얼마나 날 부요케 하는지
그 사랑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그 사랑 얼마나 나를 감격하게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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