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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4:11-18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

by 朴 海 東 2015. 12. 7.

 

 

요한복음 4:11-18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1. 사마리아 수가 성 우물가에서 [대화 1]

사마리아 여인의 닫힌 마음을 열게 한 틈새 공략은
그녀에게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단어로써
생수[Living Water]였음이 분명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물 한잔 달라는 예수님의 말에
쌀쌀맞게 하며 눈도 안 맞추었던 이 여인이 마침내
예수님과의 대화에 빨려 들어온 것이다

전도할 때 이 세상의 온갖 잡다한 근심과 걱정을 가지고
살아가며 사마리아 여인처럼 아예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사람이 가장 필요로 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다
과연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가장 절실했던 문제는
물을 길러오는 문제였던 것 같은데
물동이를 이고 여기 동네 우물가에까지 와서
물을 길어가는 것도 고생이었지만

무슨 사연을 안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나 그 무엇보다
이 우물가에서 동네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부담이었고 고통이어서
바로 이 점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뜨거운 한 낮에 물을 길러온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정말 물 길러 올 필요도 없는 솟아나는 샘물로써
생수의 샘물을 소원했고
이런 샘물 하나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었을 것이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해주소서[4:15]



그런데 뜻 밖에도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이 생수이며
이 생수의 근원이시며 공급자라고 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4:13-14]



2. 목마른 영혼의 우물가에서 [대화 2]

사마리아 수가 성 우물가에서 생수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대화의 물꼬를 여신 예수님은
이제 이 여인의 심층부 가장 깊숙한 곳인 영혼의 문제를
터치하시기 위해 양심의 문제를 건드리신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주실 수 있는 진정한 생수를 위해서는
이 생수에 대한 갈증이 있어야 하는데
자신이 살아온 날들에 대한 죄책감이 없이는
이 갈증이 채워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이르시되 네 남편을 불러오라(4:16)
사마리아 여인: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옳도다



예수님의 신적 통찰력은 이미 이 여인의 삶을 다 아셨고
무엇이 이 여인에게 목마름이며
이 목마른 갈증을 풀어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셨기에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가는 여정에서
굳이 제1루트[지중해 해변 길]와 제2루트[요단 동편 길]을
마다하시고 미움과 분쟁의 장벽을 넘어 뜨거운 태양 아래
타는 목마름을 이기시며 여기까지 오시지 않았던가...(?)

묵상적용

3. 예수님과 이 여인의 대화에서 요한이 의도하는 것:

요한은 어찌 보면 세상에서 가장 목마른 삶을 살아온
한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너의 목마름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채워질 수 있는지 묻고 있는 것 같다.

당시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삼중 적 굴레가 씌어져 있었다.
1) 사마리아 인이라는 굴레
[당시 사마리아 인들은 노예보다 한 단계 낮은 계층이었다]

2) 여자라는 굴레
[당시 여자들은 사람 축에도 끼지 못해서
족보에도 오르지 못하고 사람 수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3) 행실이 부도덕한 이혼녀라는 굴레
[1세기 문화적 상황에서 이혼 당한 여자는 중고품 여인으로
취급당했고 값싼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여
그녀를 소유하기 위해서 다시 결혼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그동안 막장 인생을 살아온 이 사마리아 여인은
그동안 다섯 번이나 남자를 갈았고
또 지금 있는 남편도 정식 결혼 관계가 아닌 정부[기둥서방]
정도의 관계를 가지고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이 가장 싫었던 것이 분명한데
지금 예수님은 이 문제를 건드리고 계신다.

왜냐하면 진정한 생수가 되시는 예수님 자신을 이 여인에게
주시기 위해서는 지금 그녀가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거짓 생수[만족]들에서 벗어나도록 자신을 바로 보게 하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별히 여기서 이 여인이 그동안 남편을 다섯 번 갈았고
또 지금 여섯 번째 남편과 함께 살고 있음을 강조하는
이 여섯이란 숫자는 성경에서 언제나 완전 수 인 일곱에서
하나가 부족한 불완전한 것을 의미하는데

그러니까 여기서 예수님이 말하고자하는 의도이자 요한이
그 의도를 깨닫고 전달하고 있는 정말 중요한 핵심은
여섯 남자가 있다 하더라도
참 신랑[남편]되는 예수가 없으면
남편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여섯 남편은 실제로 여섯 남자를
갈아치운 것이기도 하겠지만
이것을 더 구체적이며 실제적으로 적용한다면
이 여섯 남편은 인간들이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돈/명예/권련/학력/쾌락/선행이라는 남편일 수도 있는데

일곱 번째 남편인 예수라는 남편이 없으면
다 없는 것과 같고 오직 예수로만 사람의 마음에
뻥 뚫린 구멍을 메워줄 수 있으며

오직 예수로만 인간의 근원적인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생수가 됨을 된다는 것을
요한은 전달해 주고 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과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실패한 이유가
무엇이었던가를 밝혔던 예례미야 선지의 말씀이 생각난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이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을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라[렘2:12]



---------[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

나의 목마른 영혼을 만족케 하시려고
생수[성령]을 주시는 주님의 선물이
이토록 중요한지를 모르고

여섯 남편을 가졌던 사마리아 여인처럼
세상의 것들을 곁 눈질하며 살았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며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떠나거나
터진 웅덩이를 파는 자 되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