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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9:1-12 나의 실로암 예수

by 朴 海 東 2015. 12. 7.

나의 실로암 예수

요한복음 9:1-12

묵상내용

1. 발견되어지고 만나지는 축복 [9:1]

나는 매일 아침 기도하는 마음으로 우리 아파트 단지를
세 바퀴 도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어제 아침은 마지막 세 바퀴째를 돌다가 경비 아저씨가
아파트 경비실에서 멀리 떨어진 쪽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아직 이른 아침이고 아무도 지나는 사람도 없어서
이 분을 안고 간신히 끌다시피 경비실로 데려와서
119에 신고했는데 다행히 응급차가 와서 실어갔고
목숨은 건지게 되었습니다.

이 분이 근무 중에 쓰러졌으니 산재보험이라도
받을 수 있게 도움을 주려고 찾아가 보니
뇌경색으로 쓰러진 것이어서 받을 수 없다고 하여
마음이 안타까웠고 그나마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나 여기 9장에 나오는 소경 모두가
자신들이 스스로 예수님께 찾아 나온 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치유를 간청한 것도 아닌데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나에게 만나지고
내 눈에 보인 바 되어서 목숨을 건진 것처럼

38년 된 병자나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이
예수님의 눈에 발견 되고 만나져서
치유 받게 된 것은 아버지께서 아들의 발걸음을
이렇게 이끄신 결과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더불어 주님께 고침 받았던 이 두 사람처럼
영적으로 죽은 자 같이 되었고
소경 되었던 내가 주님의 눈에 발견되어져서
살려냄을 받았고 눈을 뜨게 된 것이
얼마나 큰 감사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2. 예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9:2-3]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을 보고 제자들은
누구의 죄 때문인지 인과응보적인 생각으로
주님께 물었고 주님은 죄의 결과가 아닌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불쌍하고 불행하기 짝이 없는 이 태생소경에게
하나님의 하실 일이 있고
그에게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정말 외모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우리[나]에게
큰 충격으로 닿아지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욥이 당한 고난에 대해 인과응보로만 해석하여
끝도 없는 논쟁을 이어간 욥의 세 친구처럼
그리고 여기 제자들의 시각처럼

다른 사람의 불행 속에 깃들어있는 하나님의
숨은 계획을 알지 못해서 인과응보적으로 해석하며
함부로 판단해온 나의 잘못된 선입견과 시각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이제부터는 정말 나의 시각이 아닌 예수님의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기를 마음 깊이 다짐 합니다

3. 시간을 잘못 사용하는 죄 짓지 않기 [9:4-5]

예수님은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고쳐주시면서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말씀하심으로
예수님처럼 그를 따르는 우리[나]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다고 하시는 말씀 속에는
Now & Here[지금 여기에서] 주어진 기회와 시간을
귀하게 여기고 선용하지 않으면
기회가 항상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십니다.

오늘 나는 시간을 덧없이 허송하는 사람은 아닌지
나 자신을 돌아보며 예수님처럼 지금은 일할 수 있는
낮의 시간인 것을 기억하고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묵상적용

4. 실로암 되시는 예수님 [9:6-7]

그러나 오늘의 말씀에서 가장 관심으로 닿아지는 말씀은
예수님이 태생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특이한 방법입니다

왜 땅바닥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서 눈에 바르셨는지
그리고 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셨는지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한 마디로도 고칠 능력이 있으시고
혹은 손에 눈을 대어서라도 하실 수 있는데
왜 굳이 이런 방법을 사용하셨는지........
억지 해석을 갖다 붙이기보다
이것이 예수님 당시 사람들을 치료하는
민간요법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됩니다.

따라서 침과 침으로 이긴 진흙을 환처에 붙이는
당시의 민간요법을 차제에 두고라도
여기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왜 소경이 찾아가기도 힘들었을 실로암 못에 까지
찾아가서 씻으라고 하셨는지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바로 이점에서 요한은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
이 기사를 기록했는지 생각해 보게 되는데

요한복음을 시작하는 1장을 제외하고
2장부터 9장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장 예외 없이
유대인들과의 충돌이 있었고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끝없는 기독론적 논쟁이 있었습니다.

요한은 여기 9장에 들어와서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실로암 [보냄을 받았다는 뜻] 못에 가서
눈을 씻고 밝은 눈으로 온 것처럼

예수님에 대해서 눈이 닫혀있는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이 책의 일차적 독자들인 당시의 사람들에게
더 나가서 오고오는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실로암"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처럼
곧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으신 분이시니
실로암 되시는 이 예수를 만나고
이 실로암이 되시는 그의 말씀의 샘물에서
눈을 뜨라고하는 강력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봅니다.

제 몸을 가늘 수 없었던 38년 된 병자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것처럼

그리고 여기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이
실로암 못에 가서 씻고 오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더듬거리면서도 실로암 못을 찾아가
밝은 눈으로 돌아 온 것처럼

내가 주님을 찾고 만나는 과정이
소경의 길처럼 갈 바를 모르고 망막하였어도
마침내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실로암의 의미를 가지신 예수님과
실로암 연못의 의미를 가진 예수님의 말씀으로
내가 나의 닫힌 눈을 씻고
광명한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새 삶을 찾게 된 것을 이 아침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말씀에 응답하는 찬양기도]----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