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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10:31-42 예루살렘 Vs 요단강 저편[베다니]

by 朴 海 東 2015. 12. 7.

예루살렘 Vs 요단강 저편[베다니]

요한복음 10:31-42

묵상내용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30 대 초반의 청년으로서 자신을 하나님,
곧 하나님의 아들로 계시하신 것으로 보여진다.

오늘의 말씀에서는 지금까지 이어온 기독론 논쟁을
종식시키는 돌 직구를 날린 말씀으로써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니라"고 증거 하신 것 때문에
다시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몰리신다.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는
온 회중이 그를 돌로 치라고 한 말씀[레24:16]에 따라
지금 예수님을 처단하려고 했는데

실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지 못해서
예수님이 사람으로서 자신을 자칭 하나님이라고 한다는
신성모독죄를 적용하여 죽이려고 하였으니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죽이려는
심각한 우를 범하고 있는 셈이 되었다.

예수님은 이러한 유대인들의 무지를 깨우치시기 위해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 곧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사람들을 “신”이라고 지칭하신
말씀들을 인용하시면서[시82:6, 출4:16,7:1, 슥12:8]
자신의 말에 하자가 없음을 증거 하시고

특별히 시82편 6절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대표하는 것 때문에 땅 위의 재판장들이
신[gods]이라고 불러졌다면
메시야의 임무를 받아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당연히 이 칭호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논증하시며
그래도 못 믿겠다면 자신이 그동안 보여준
메시야의 표적으로써 행한 일들을 통해 믿으라고 하신다.

그러나 예수의 말이 비집고 들어갈 틈새가 없을 만큼
마음이 완악하여진 그들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는데
어찌 보면 예수님의 예루살렘에서의 사역은
붙잡거나[7:30,32,44, 8:20 10:39]
죽이려하거나 [5:18, 7:1 8:36, 40]
돌로 치려고하는 [8:59, 10:31] 위기와 위기의 연속이었다.

여기서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의 시선은
예수님이 철저하도록 반대를 받아온 예루살렘 사역에서
물러나서 요단강 저편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이전의 곳으로 옮겨가시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이제 이어지는 11장의 말씀에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서 가장 큰 표적으로 계시 될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시는
표적을 행하시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에서 그나마 위로로 닿아지는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철저히 배척받으신 예수님께서
요단 강 저편으로 갔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예수님을 인정하며 믿었다고 했는데 [10:41-42]

예수를 배척하는 척박한 예루살렘의 영적 토양에 비해
예수를 영접하는 부드러운 영적 토양을 가진
요단 저편[베다니로 추정됨]의 차이를 생각해 보게 된다.


예루살렘 Vs 요단강 저편[베다니]의 차이는 무엇인가 ...?


이것은 오늘날도 예수를 배척하되 심하게 배척하는
어떤 나라와 도시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환영하고 열려있는 나라와 도시들이 있고
이러한 대조는 한 걸음 더 나가

예루살렘처럼 영적 토양이 사악하게 굳어버린 교회들이
있는가하면 마음이 안온하도록 평안해지는 교회들이 있고
이러한 영적 토양의 차이는 각 가정에서도
그리고 각 사람의 심령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오늘 내가 속한 나라와 도시가
그리고 내가 속한 교회와 나의 가정, 그리고 나의 심령이
세상에서 배척 받으시는 예수를 환영하며 영접하고
예수로 더불어 삶을 나누는
복된 자리에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