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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11:1-16 우리도 함께 죽으러 가자 !

by 朴 海 東 2015. 12. 7.

우리도 함께 죽으러 가자 !

요한복음 11:1-16

묵상내용

1. 사람의 이해관계보다 더 깊은 아버지의 뜻 [11:1-5]

부모님도 없이 마리아/마르다/나사로 삼남매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갔던 베다니 마을에서
어느 날 이 가정을 찾아주신 예수님으로 인해
이들은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가 되었고
오늘의 말씀에서처럼 주님이 사랑하는 자들이 되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전도여정에서 곤하고 지칠 때마다
제자들과 함께 즐겨 찾았을 이 사랑하는 가정에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며[11:3]]
친구로 생각하신[11:11] 나사로가
심한 병이 들어서 드러눕게 되었으니
그 누이들이 주님께 사람을 보내서
속히 와 주시라고 청한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11:3]

그런데 예수님은 이 소식을 들으시고
사랑하는 가족의 고통과 슬픔 이전에
이 가정이 당한 불행이 우연한 불행이 아니라
이 가정의 불행 속에 담겨있는
자기를 보낸 아버지의 뜻이 있음을 간파하시고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얻을 병이라고 하시며
마치 쐐기를 박는 것처럼
이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해
계시던 곳에서 즉각 움직이지 않으시고
이틀을 더 체류하신 후 제자들과 함께 떠나자고 하신다.

예수님이 지체하시면 지체하시는 만큼에 따른
사랑하는 가정의 고통이 있었겠지만
주님은 즉시라도 달려가고 싶으신 마음을 꾹 참으시고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들어갔을 만한
모든 상황과 시간을 계산해서 발걸음을 옮기셨으니

마음 깊이 끓어오르는 인간적인 정을 억제하시고
철저히 아버지의 뜻과 시간에 자신을 맞추어 가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이 아침 마음 깊이 닿아진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자신의 메시야적 증거를 배척하며
수없이 잡아 죽이려했던 예루살렘에서의 위기적 사역을
반전 시키며 한 방에 날려 버릴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계심을
깊이 간파하신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입구가 되는
나사렛 마을을 향하여 서서히 발걸음을 옮기시게 되는데
그 누가 예수님의 이 마음을 헤아려 알 수 있었을까...(?)

사랑하는 주님이 속히 오지 않는 것에 대한
마리아 마르다의 섭섭함과 원망도 있었을 것이고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고 하였는데
또 다시 그리로 가셔야 하냐고 반문하는
제자들의 만류도 있었지만 [11:8]

오직 아버지의 뜻과 시간표에 자신을 맞추어 가는
예수님의 묵직하신 발걸음이
오늘의 말씀 전체를 압도하는 흐름으로 마음에 닿아진다.

따라서 나사로 가정의 비보를 접하시고도
조금도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으시고
이 불행 속에 담긴 아버지의 뜻을 간파하시며
아버지의 시간표에 자신을 맞추어 가시는 예수님의 행보는
정말 내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따르고 배워야할 모습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의 가정에 어떤 불행이 닥쳤을 때
당황하여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아버지의 뜻보다 현실적인 상황만 생각하는 나머지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근시안적 안목을 벗고 예수님처럼
그 고통과 불행 속에 담겨있는 아버지의 뜻을 간파하며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잘 따를 수 있어야겠다

묵상적용

2. 즉각적인 응답이 없고 지체하실 때 [11:50]

예수님께서 마리아/마르다 가정의 비보를 접하시고도
즉간 반응을 보이지 않으시며
이틀을 더 지체하시고 [11:50]라고 기록된 구절이
왠지 모르게 인상 깊은 구절로 닿아진다.

만일 예수님께서 즉각 반응을 보이시고 달려가셨다면
나사로의 병을 고쳐주시는 기적은 행하셨겠지만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이미 무덤에 들어간 나사로를 살려내는 저 위대한
표적 중에 표적이며
인류사의 위대한 부활의 증표가 될 수 있는
이 표적 행하심의 기회를 놓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지체하심 가운데는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 뿐 아니라
아들도 함께 영광을 받으시게 되며[11:4]

더 나아가 마리아/마르다의 가정의 영광이요
더불어 제자들의 믿음의 강화를 위한 것이었으니[11:15]

이것은 오늘 내가 주께 기도하여
즉각적인 응답을 받지 못하고 지연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더 좋은 복합적 응답이 있으려고 하는 것이니
낙심하지 말고 주님의 때와 시간을 기다려
응답을 받으라고 하시는 소중한 교훈으로 받아드려진다.

지난 해 부터 우리 가정의 중요한 기도 제목으로
추진해온 일이 있는데 쉬이 이뤄지지 않고
지연되는 것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했었고
또 본의 아니게 식구들 앞에서 화를 내는 일도 있었는데
더 크신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속절없게 행동한 나의 모습을 진심으로 회개하며
주님의 시간과 때를 기다려 받을 것을 깊이 다짐한다.

3. 우리도 함께 죽으러 가자 [11:16]

자신을 돌로 쳐 죽이려는 예루살렘에서
그들의 손에 넘겨지지 않고 살아나온 예수님께서
다시 호랑이 굴로 들어가듯 예루살렘의 입구가 되는
베다니 마을로 가자고 했을 때
제자들은 적지 않게 당황하였으며 반대하였다[11:8]

그러나 나사로를 깨우러[살리러]가시는 예수님의 결심이
워낙 단호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두려움에 잠긴 다른 제자들의 마음을 분발시킨 제자는
디두모[쌍둥이]라 하는 “도마”였는데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한 그의 선동적인 말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인상 깊게 남겨진다.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맞추어
이제 위대한 표적 중에 표적을 행하실
예수님의 속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제자들이어서
도마 역시 아직 그 믿음에 닿아지지 못한 사람이지만
적어도 믿음을 떠나서라도
주님과 생사를 함께 하려는 그의 의리와 충정은
내 마음에 깊은 감동과 도전으로 닿아진다.

나도 믿음을 떠나서 인간적인 의리로라도
나의 주군이신 주님을 위해서라면
함께 죽을 각오와 결단이 되어있는가
이 아침 마음 깊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주님 !
자신의 주군을 위해서
죽음으로 의리를 표시했던 도마처럼
나에게도 같은 의리와 충정이 있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