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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11:47-57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by 朴 海 東 2015. 12. 7.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요한복음 11:45-57


무덤에 들어가 나흘이나 지난 나사로를 
다시 살려내신 이 놀라운 표적은
긍정적인 면으로도 부정적인 면으로도 
놀라운 효과와 파장을 일으켰다

첫째로 예수가 매시야 -그리스도 되심에 대해 
반신반의하선 많은 유대인들이 
그를 믿고 받아드리는 쪽으로 돌아섰으며 [11:45]

둘째로 이 표적은 이미 베다니를 출발할 때 
예고하신 것처럼 [11:4] 
마리아/마르다 자매와 
유다를 제외한 제자들의 믿음을 강화시켰다.[12:4]

뿐만 아니라 예수에 대한 메시야적 기대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마침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많은 유대인들의 최대 관심이 된 가운데 
예수님의 지상생애 마지막 일주일이 이어진다.

그러나 한 편 이 표적은 그의 반대자들의 입장에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다는 허울 좋은 구실로 
예수를 제거하고자 하는 음모를 공식화 시켰고 
더불어 이런 표적까지 나와서 온 세상이 저를 따르니
더 이상 어찌 해볼 수 없다는 절망감을 안겼다[12:19]

나사로를 살려내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촉발된
당시 유대 사회의 분위기를 배경으로 해서
오늘의 말씀이 주는 교훈들을 정리해 본다. 

1. 공개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재촉하신 표적의 교훈 

죽은 지 나흘이 지난 나사로를 살려내신 이 표적 중의 표적은 
그가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분이시며
이스라엘이 기다려온 매시야 되심을 충만히 드러낸 표적이지만
한 편 이 놀라운 표적을 행하시는 그 이면에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를 향하게 만드신 이 분위기 가운데
마치 섭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처럼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기 목숨을 던지시는 승부수가 되게 하였다.


지난 3년 공생애 기간 중에 놀라운 이적을 행하실 때 마다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가능한 자신을 은둔시켜 오셨는데
이제는 때가 이르러 공개적으로 이적을 행하시고 
사람들의 시선을 자기에게 향하게 만드시는 이런 모든 행위가
아버지의 뜻 가운데 온 천하가 바라보는 가운데 
십자가 죽음으로 가시기 위한 신의 한 수 포석으로써 
승부수를 던진 표적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사람은 어느 시점에서 자신을 숨기고 
어느 시점에서는 자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야 하는지를 보는데
그것은 자기를 위한 포석이 아닌
전적으로 하늘 아버지의 영광과 뜻을 위한 포석이 되어야 함을 배운다.


2. 정치판의 희생 양으로 지목되신 예수[11:49-53]

유대 산헤드린 공회가 소집되어 예수의 인기를 제압하고
백성들의 관심을 자신들에게 돌릴 수 있는 
뾰족한 묘수를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었을 때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켜내기 위해 
마땅히 예수를 죽여야 한다는 논리를 들고 나온 사람은
당시 대제사장 “가야바” [AD.18~36] 이었다.

그는 [ 솔로몬 이후 사독 제사장 계열을 따라서 ]
하나님께로부터 세워진 신성한 제사장이 아니라 
로마 정부와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제사장으로 세워진 이 사람은 
구약에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선 
아론 제사장 계열의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켜내기 위해 
표적의 인물, 예수를 죽여야 한다는 
자신의 논리와 주장을 편 이 사람의 이야기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악역의 도구가 되었으니 과연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생각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깊이가 있음을 본다.

비록 악한 자 “가이사”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이지만
한 사람이 모든 백성을 위해 죽어야한다고 했을 때

요한은 악한 자 “가이사” 개인으로서 보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있는 
가이사의 “대제사장적 신분”에 입각해서
그의 말을 이해했고 
예수님의 죽음이 가져오는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다.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모아
하나 되기 위해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라[11:51-52]

3. 다시 빈들로 물러나신 예수님 [11:54]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나사로를 살려내신
예수님의 표적은 어찌 보면 자신의 죽음을 재촉하신
결과를 가져왔는데 그러나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기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잠시 빈들의 도시 에브라임으로
물러나 바로 그곳에서 유월절기에 맞추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위한 카운트다운에 들어가신다. 

이제 예수님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을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오늘의 말씀 54절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제자들과 함께”라는 말에서 찾아보게 되는데

이제 곧 자신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닥쳐올 때
적어도 자신의 제자들만큼은
유대인들이나 최고 의결기관/산헤드린처럼 
자신을 정치적인 메시야가 아닌
이스라엘과 또 이스라엘 우리 밖에 흩어져있는
이 땅의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 
죽게 되는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가르치셔야했고

더욱 특별히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의 구별이 없는 
하나 됨을 이루게 되는 그날 -
메시야의 시대/복음의 세계화에 대한 비전을 나누며
임박한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갖추게 하신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4.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1:55-57]

무덤에 들어가 나흘이나 지난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내신 이 메시야 표적적 사건은
그해 유월절 절기를 맞아 
예루살렘으로 몰려든 사람들의 최고 관심사가 되었고
한 편 종교지도자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하루아침에 빼앗길 수 있는
위기의 순간으로 간파하였기 때문에 

예수를 불순한 거짓 메시야로 몰아서 체포하려는
현상수배가 곳곳에 내려진 터였다. [11:57]

자기 백성을 위하여 가장 선한 일을 행하신 분이
자기 백성의 최대의 위험인물로 간주되어
현상수배범으로 몰리고 체포령이 내려진
당시 예루살렘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서
이제 이런 분위기에서도 
담담하게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이어지는 말씀에서 보게 되는데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진행되고 있으며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과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누가 알 수 있었으랴.......

주님 !
세상만사가 어그러지는 분위기로 돌아갈 때도
인간의 계획과 음모 그 위에서 
더 크고 중한 뜻을 위해서 일하고 계시는 
주님의 섭리를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열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