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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12:12-19 예수님의 돌출 행보가 의미한 것

by 朴 海 東 2015. 12. 7.

예수님의 돌출 행보가 의미한 것

요한복음 12:12-19

묵상내용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중 자신이 메시야 되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으셨다.

물론 수가 성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4장]
그리고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신 후 다시
만났을 때처럼 개인적으로는 증거 하셨고[요9장]

혹 표적을 통해서나 혹은 간접증거로 드러내셨지만
자신의 메시야 되심을 공개적으로 하지는 않으셨다

복음서 곳곳에 보면 사람들이 놀랄만한 큰 표적을
행하시고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실 만큼
조심스럽게 하셨으나
마침내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가까이 이르신
마지막 예루살렘 사역에 들어가시면서 부터는
자신의 메시야 적 신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시므로
여러 번 돌에 맞을 위기를 자초하기도 하셨다.

그런데 요한복음에 나타난 마지막 표적으로써
죽은 지 나흘이 지난 나사로를 살려내신 표적은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을 만큼
사람들이 자신을 메시야로 믿게 할 만한
표적 중에 표적이 되었고
이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이 해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예수에 관한 것 뿐 이었다 [12:17-18]

그런데 오늘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자신의 메시야 되심을 드러내시되
마치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바라시며
온 천하에 공개적으로 드러내시듯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으로써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게 된다.

오늘의 말씀에서 사용된 “종려나무를 가지고”라는 말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보이지 않고 요한복음에만 나오는데
종려나무는 존경과 희열을 표시하는 식물로써 [레23:40]
승리의 상징이다.

마카비 혁명의 지도자 시몬이[BC142-135]

시리아 군을 격퇴하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를 환영했다고 하는데
요한은 이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이
승리하신 왕의 입성을 표시하고 있으며

또 백성들의 입에서 나온 호산나 ! 라는 말은
제발 우리를 구원하여 주소서라는 뜻이고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라는 외침은
시편 118:25-26을 인용한 것으로써
지금 군중들은 예수를 이스라엘을 회복할
다윗 같은 메시야, 즉 이스라엘의 왕으로 환호한 것이다.

평소 온유 겸손하셔서 자신을 드러내시되 은밀히 하시고
자신을 철저히 숨기셨던 분이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라시는 듯,
보라 너희의 왕이 여기 있으니 모두 나와서 보라는 듯
사람들의 환호 가운데
승리의 입성을 연출하시는 돌출 행동을 보이신 것일까

예수님은 이제 몇 날 후에 있게 되는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내다보시면서
자신의 죽음이 어느 한 구석에서 되어 진 일이 아니라
모든 만인이 다 알게 되는
공개적인 일이 되기를 바라시는 사전 포석으로
이 돌출적 행보를 하신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더욱 특별히 이 날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것은
이미 자신에 대하여 예언된 스가랴 9:9절의 예언을
응하게 하시는 표시로써 하신 것이며
그것도 나귀의 새끼를 타신 것은
자신이 당시 로마 제국의 왕들과 같은 정복자가 아닌
평화의 왕이라는 표시로써
평화시대 거리의 표시인 나귀를 타신 것이며
겸손의 왕으로써 나귀의 새끼를 타신 것인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메시야 관으로써
정치적 메시야를 기대하는 잘못을 수정하시는 뜻도
이 돌출적인 행보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예수님의 돌출적인 행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던 제자들에 대해
요한은 자신의 해설을 덧붙이고 있는데
여기서 “영광을 받으신 후”라는 말은 [12:16]
예수님의 십자가 - 부활-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성령이 오셔서 깨닫게 해 주신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요2:22, 7:39, 20:9]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께 대하여 열광하는 백성들을 보며
탄식하는 바리새인들의 하소연으로 마쳐지고 있는데
백성들의 환호에 함께 참여하지 않고
보라 !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 도다 !고
하소연하는 이들의 말을 통해 [12:19]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는
인간의 어떤 방해공작도 통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은
바리새인 그들 스스로 인정하게 하는
최고의 아이러니적 표현이 되게 하고 있다.

묵상적용

오늘의 묵상을 접으면서
마음 깊은 여운으로 남겨지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돌출적 행보이다

당신의 생애 중에서 단 한 번도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끌려고 하지 않으신 분이
왜 여기서는 마치 돈키호테적 행보를 보이시면서 까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계신 것일까......(?)

그것은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으로써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시는 십자가 죽음이
온 천하에 알려지는 공개적 죽음이 되기를 바라신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행보였다

평소의 모습 같지 않으신 예수님의 이러한 변신은
때로 나의 신앙과 삶에 있어서도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뜻을 위해서라면
나도 얼마든지 변신되어야 하고
주님의 어릿광대가 될 수 있어야함을 배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