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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13:31-38 후에는 따라오리라

by 朴 海 東 2015. 12. 7.

후에는 따라오리라

요한복음 13:31-38

묵상내용

지난 2월 18일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을 지나
40 일간 이어지는 사순절 기간 입니다
세상의 시간을 표시하는 태양력/달력을 따라가면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 33년을 살고 가신
주님의 생애에 맞추어 만들어진 교회력에 따라서
특별 기도의 기간을 가지게 하심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더욱이 요즘 생명의 삶 본문이 사순절 기간에 적절한
내용들로 이어지고 있어서 더욱 감사한 마음입니다

주의 만찬과 세족식에 이어서
구약의 유월절을 대신하는 신약의 유월절로써
성찬식을 제정해야하는 엄중한 시간을 앞에 놓고
주님은 유다가 자기 발로 그 자리를 떠나게 하신 후

이제 제자들과 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는데
주님은 제자들의 마음에 영원토록 기억되고
소중한 유언처럼 새겨질 말씀을 남기게 됩니다.


1.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13:31-32]


함께 떡을 먹으며 함께 그릇에 손을 넣었던 유다가
앞발을 들어서 등에 앉은 자를 떨어뜨리는 말처럼
스승을 배신하는 발꿈치를 들면서
어둠을 세력들과 타협하기 위해서 떠나고 난 후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어찌 보면 마음의 긴장이 몰려올 수 있는 시간인데

오히려 주님은 유다가 떠나간 것을
자신의 영광과 관련하여 말씀하시며
또한 아버지의 영광과 관련된 것으로 말씀 하십니다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신
그 목적이 이루어질 시간이 가까이 다가 온 것에 대해
오히려 감사하고 영광으로 연결시키는 이 말씀 속에서

그동안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이 순간을 향하여 모든 것을 집중해 오신
예수님의 마음을 읽게 됨과 동시에
왜 자신을 배신하는 유다에게
"네 하고자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하셨는지
잘 이해가 되는 대목 입니다[13:27]

공생애 사역 3년 차에 들어섰던 그 해 유월절
속죄를 위해 어린양을 잡게 되는
바로 그 성 금요일에 정확히 맞추어서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시게 되고

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부활/승천/보좌로 귀환하게 하시는
영광을 주실 것을 내다보시면서
이제 그 영광의 시간이
목전에 다가왔음을 이렇게 표현 하셨습니다[13:32]

유다가 배신의 발걸음을 옮기고
자신을 체포하러 오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 들려올 수 있는 시간에
이 두려움을 넘어서서 찬란한 영광을 바라보셨던
주님의 그 안목을 나의 신앙과 삶에서
특히 내 앞에 어려운 일이 놓여있을 때
더 잘 배울 수 있기를 이 아침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하기


2.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13:34]


구약에서 이미 주신 이웃 사랑에 관한
계명들이 많이 있는데[레19:18]
예수님은 왜 새 계명을 주신다고 했는지 의문입니다

여기서 새 계명이라고 하심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에
포인트를 두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받아 드립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아들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들을 사랑하셨는데
이제 아들이 이 세상을 떠날 시간이 가까웠을 때
예수님은 내가 떠나더라도
내가 너희를 사랑했던 그 동일한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우리에게 오셨다가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면서
여전히 세상에 남게 되는
사랑하는 자들을 향한 그 애틋한 마음을
너희가 서로 사랑함으로 외롭게 되지 말고
서로를 붙들어 줌으로 굳세게 살아가라고 하심인데

이렇게 할 때에 세상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내]가 예수의 제자 됨의 표식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구주요 주님이라고
동일한 신앙을 고백하는
또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며

내가 아무 조건 없이 예수님에게 향한 사랑을
예수 믿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쏟아낼 때
이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예수에게 속한 제자 됨을 드러내는 표시가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내 눈에 보이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신앙의 공동체를 이룬 교회는
비록 불완전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고 할지라도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표시를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상이며 방법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불완전한 모습을 보고 실망하기 보다
오히려 이런 불완전한 자들을 품으시는
하나님 사랑의 온전함을 보여 주는 것이며
따라서 내가 주님의 세족 사랑의 정신을 따라[13:15]
더욱 사랑해야할 교회/지체들로 받아드리게 됩니다.

묵상적용


3. 후에는 따라오리라


예수님이 이제 곧 떠나신다는 작별을 고했을 때
모든 제자들의 마음이 슬프고 무거웠지만
그 중에 더욱 슬퍼하고 마음이 무거웠던 사람은
베드로였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13:36]
예 수: 내가 가는 곳에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베드로: 어찌 지금은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 수: 나를 위해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닭 울기 전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예수님과 나누는 베드로의 대화에서
베드로의 통찰력 부족과 자제력이 부족한 모습이
보이면서도 한 편 울면서라도 엄마를 따라가려는
어린 아이 같은 순수와 열정도 보입니다.

그러나 아직 다듬어지지 못한
베드로의 이런 모습으로는 역부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심으로

후에 베드로가 자신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배신 한 것 때문에 고통에 빠지며
좌절하게 될 때를 대비하여
미리 이렇게 말씀하여 주심으로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도
끝까지 품어주시는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베드로의 약함과 다듬어지지 못한 성품과
예수 제자의 자질이 부족함을 다 아시면서도
주님의 끝까지 품어주시는 사랑이 있었기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하신 말씀 그대로
베드로는 후일에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서까지
주님을 따라갈 수 있었음을
요한복음 21장의 암시와 [요21:19]
센키비츠의 소설 “ 쿼바디스 도미니”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드러낼 실수와 실패를 다 아시면서도
기다려 주시고 품어주신 주님의 사랑이 있어서
그가 초기 교회를 대표하는 사도가 된 것은

오늘 나 자신의 실수와 실패 때문에
마음이 무너지고 좌절할 수 있는 우리[나]에게
희망과 용기로 닿아집니다.

넘어지고 무너졌으며
주님 앞에 깨어진 상처 입은 자가 되어
후일에 자신처럼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해
상처 입은 치유자로 자신을 드러내게 되는
베드로의 이야기는 곧 오늘 나의 이야기입니다

주님 ! 
제자의 도를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나를
용납하여 주시고 기다려 주시며
끝까지 품어주시는 사랑으로
온전한 제자의 길로 이끌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따라오지 못하지만
후일에는 따라오리라고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나의 신앙과 삶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