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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15:9-17 사랑의 눈 높이 낮추기

by 朴 海 東 2015. 12. 7.

사랑의 눈 높이 낮추기

요한복음 15:9-17

묵상내용

오늘 주신 말씀은 어제 주신 포도나무 비유에 대한
해설로 이해하게 되며 그 중심 주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그와 연합된 자들을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로 비유하셨고
생명의 관계로 말씀하셨으며

그리스도인의 열매는 노력의 산물[Produce]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생명이 나의 신앙과 삶 가운데
절로 흘러나오는 맺음[Bear]의 원리로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열매 맺기 위해서는
내가 생명의 주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인데

그것은 내가 믿음으로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게 함으로[15:7]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에서는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고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또 한 가지 요소를 말씀 하시는데

그것은 내가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며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방법은
그가 주신 계명
곧 서로 사랑/형제 사랑을
지켜나가는데 있다고 가르쳐 주십니다.[15:10,12,17]

아홉 구절로 이루어진 오늘의 말씀[9-17절]에서
어찌 보면 “사랑”이라는 낱말을 남발하시는 것처럼
무려 아홉 번이나 이 단어를 사용하시는 것을 보면서
이 주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기에
이렇게까지 강조하실까 뒤집어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 중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 사랑[신6:4-5[과
이웃 사랑 [레19:8]이라고 하셨는데[마22:37-40]
이제 십자가의 죽음을 목전에 둔 시점에 이르러서
새롭게 주시는 “새 계명”으로써
“서로 사랑/형제 사랑”을 가르쳐 주심으로

우리의 사랑은 멀리 있는 자들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 대한 사랑이며
이 것이 직접 적으로는
예수님이 남겨 놓고 가시는 제자들 간의 사랑이자

오고 오는 모든 시대에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예수 신앙 공동체/교회의 사랑이 되어 할 것을
이처럼 거듭 거듭 아홉 번이나 강조하여
유언처럼 남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사랑에서 성공하면
다른 사랑 곧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서도 성공하는 것이며
이 사랑에서 실패하면 이 보다 더 크게 보이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서도 실패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하나님께서 어떤 인연으로 만나지게 하시고
예수 신앙공동체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게 하신
주님의 교회, 지체들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요.

내가 포도나무의 한 가지인 것처럼
그들 역시 또 다른 한 가지들이 되어
포도나무를 이루고 있으니
우리는 주님 안에서 서로 뗄 수 없는
생명과 사랑의 유기적 관계이며
예수 안에 한 운명인 것을 깨닫습니다.

묵상적용

이전 시대에는 개인적으로보다
공동체적 삶이 중심을 이루었고
그 속에서 온갖 삶의 희로애락이 있었는데

시대가 바뀌어서 그런지
요즘은 가정들이 핵 가정 화 되어가는 것처럼
교회도 점점 공동체적 기능을 상실해가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교회에 출석은 하여도
등록교인이 되는 것을 싫어하는 분들도 많으며
혹시 교회에 등록은 하더라도
심방을 받지 않게 해줄 것과
교회 구역모임이나 기타 소그룹 모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걸고
등록하는 분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의도하신 참 교회의 모습은
시대의 흐름에 관계없이 영원한 것인데
교회에 대한 인식이 왜 이렇게 변하는지 생각해보며

그 동안 교회 내에서 맺어진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많은 상처들을 받아서 이렇게 하는 것일까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참 제자의 표시는 서로 사랑/형제 사랑 이라고 하시니
내가 미우나 고우나 포도나무의 또 다른 가지가 되고
그리스도 몸 된 교회의 또 다른 지체가 되는 [고전12:27]
형제 사랑을 떠나서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며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다고 하시니
이 형제 사랑/서로 사랑의 문제는
내가 평생에 짊어지고 가야할 숙제처럼 보여 집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사랑의 계명을 순종하기 힘들면
이 말씀을 복종이라도 해서 지켜갈
한 가지 동기 유발을 얻게 되는데

그것은 여전히 더럽고 추하며 죄 가득한
나 같은 수준 미달 자를 주님께서 친구라고
불러 주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하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에게 경멸의 대상이었던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주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나 같은 죄인에게도 친구가 되어주셨고 [15:16]

또 내가 주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요
주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나를 선택하여 주셨다고 하니

이 은혜와 이 사랑 생각하면
나와 같은 포도나무의 또 다른 가지되고
교회의 한 지체가 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없음을 깨닫습니다.

주님이 나같은 죄인에게 해주신 것처럼
나도 마음을 낮추고 눈높이를 낮추어
내가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친구가 될 수 있게 되기를
사순절 열두 번째 날 아침 마음 깊이 다짐합니다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주님 !
내가 주님의 친구 되기에는
자격미달이고
부끄러운 것이 너무 많은 죄인입니다

그런데 나를 친구로 삼아주시며
내 대신 목숨까지 내어주시는
십자가 사랑의 증표를 보여주셨으니
왠 사랑이며, 은혜 입니까 (?)

내가 받은 이 은혜와 사랑으로
나도 같은 포도나무 가지되고
같은 교회의 지체된 형제들을
서로 사랑하고 친구가 될 수 있는
신앙과 삶이 될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