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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19:31-42 결정적인 순간에 쓰임 받는 은혜

by 朴 海 東 2015. 12. 7.

결정적인 순간에 쓰임 받는 은혜

요한복음 19:31-42

묵상내용


1. 예수님과 나무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탄생하셨을 때
나무 여물통에 뉘어져 삶을 시작하셨고
육신의 아버지 요셉의 가업을 이어받아
나무를 만지는 카펜터[목수]로 사셨으며
3년 공생애를 마치고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나무 십자가에 매달려 삶을 마감하셨다.

나무 여물통 요람에서 시작하여
나무 십자가에서 삶을 마감하신 예수님의 생애는
나무와 관련되어 가장 낮은 자의 삶으로 시작해
가장 낮은 자의 삶으로 마감되신 셈이다.

2015년 사순절을 맞으면서
가장 낮은 자의 삶을 사셨던
예수님의 생애를 생각할 때에
나의 낮음을 싫어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러한 낮음 속에서 주님을 만나고
더 빛난 영성으로 주님께 닿아지는
신앙과 삶이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원한다.

Lord !
Let me go Lower & Lower !


2. 꺾이지 않은 다리와 창에 찔린 옆구리


특별히 이 나무[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것은
저주스런 죽음이었기 때문에 [신21:23. 갈3:13]
유대인들은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 기간 중에서도 가장 큰 날이 되는
안식일에 부정을 타지 않기 위해서라도
빌라도에게 시체를 치워달라고 하였는데

이는 나무에 달린 사람의 시체를 해가 지기 전에
치우지 않으면 그들의 땅을 더럽히게 된다는
말씀을 기억하였기 때문이었다. [신21:23]

그래서 당일에 십자가 처형을 받은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뼈를 꺾어서라도 죽여서
시체를 치워달라고 요청하였는데[19:31]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생각보다 빨리 운명하셨기에
다리를 꺾을 필요 없이 시체 검사관에 의해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사망확인을 하는 것으로 끝났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24시간 이상
십자가 위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고통 가운데
서서히 죽어가는 법인데
예수님은 이미 빌라도의 법정에서 맞은 채찍질로
많은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일찍 운명하셨고
다른 두 죄수처럼 다리가 꺾이지 않으신 것같다.

예수님이 이처럼 다리가 꺾이지 않으신 것과
또 창으로 옆구리를 찔려져서
사망 확인을 받으신 것에 대해
요한의 예리한 영성은 구약의 말씀을 떠올리며
이 모든 것이 성경을 응하게 하는 것이라는
자신의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데. [19:36-37]

실제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출12:46. 민9:12. 시편34:20에서 그리고
창으로 찌른 자를 보게 되리라는 말씀은
스가랴 12:10[계1:7]에서 예고된 것으로써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서 마리아를 부축하며
전 과정을 지켜보았던 요한은 그 당시에는
이러한 말씀을 깨닫지 못하다가
후에 깨달아진 것 같으며
그의 깨달음을 이렇게 세세한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이 복음서를 쓸 당시 초기 교회를 위협했던
그노시스 이단들을 경계하여 [요1서 4:2-3, 5:6]
예수님이 신성 뿐 아니라
실제 살과 피를 가진 인성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분인 것을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라[요1서4:2-3]

묵상적용

3. 결정적인 순간에 쓰임 받는 은혜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며 익명의 제자로 존재했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용기를 내어 당돌하게
빌라도를 찾아가 시체를 달라고 했을 때
빌라도는 왜 이렇게 빨리 죽었냐고
이상하게 생각하며 백부장을 불러 확인하고
시체를 건네주게 했을 만큼[막15:43]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되신 그날
해지기 전에 운명하신 것도
뼈가 하나라도 꺾이지 않으리라는
구약의 예언을 응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시와 분초까지 간섭하신 것을 엿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곧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닥치기 전
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하는데
여기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두 사람이 등장하는바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 이다

여기서 요셉의 고향 아리마대는 예루살렘 서북쪽
10Km 지점에 있는 사무엘의 고향인
라마다임소빔을 가리키는데 [삼상1:1]

공관 복음서에 의하면 그는 부자고[마27:57]
존귀한 공회원이었으며 [막15:43]
선하고 의로웠고 [눅23:50]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던 자였다[막15:43 ]

당시 십자가에서 부끄러운 죽음을 당한 사람에게는
우아하고 정중한 장례가 허용되지 않았고
대개는 까마귀밥이 되도록 던져 지거나
연고자가 찾아온 경우에는 가매장 하는 정도였는데

빌라도가 예수의 시신을 넘겨준 것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사회적 신분의 영향은 물론
빌라도 자신이 예수를 십자가형에 넘겨준 판결이
잘못된 것에 대한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

이어지는 말씀은 요한복음 2장에서
밤에 예수님을 방문했던 니고데모도 찾아와서
이 일을 돕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가 가져온 시체 방부제로써
몰약과 침향 백 리트라는 약 33Kg에 해당하며
이것은 왕의 장례식에서나 사용될 분량인 것을 보면

요셉이나 니고데모 두 사람 모두
예수님이 비록 십자가에서
저주받은 자로서 죽었지만
예수님의 죽음을 예도하며
왕에 대한 예우로써
정중한 장례를 치룬 것을 보여준다.

이들이 모두 예수님의 시신이 함부로 던져지거나
가매장 될 수 있는 위기의 순간에 용기를 가지고
나타나서 이 일을 주도한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마음의 결과라고 여겨진다.

예수님의 매장과 관련하여 더 더욱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무덤이 아리마대 사람
부자 요셉이 준비한 새 무덤에 안장됨으로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게 하신 것이다. [사53:9-10]

예수님의 수난사화를 마감하는 오늘의 말씀을 접으면서
마음 깊이 닿아지는 것은 평소 익명의 제자로 존재하며
자신들을 은휘하였던 요셉이나 니고데모 모두가
결정적인 때에 용기를 내어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않고 당돌하게 나서게 되는데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나라와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또 다른 요셉이나 니고데모가
그 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적재적소에 숨겨 놓으신 사람들이 있어서
필요한 때와 시기를 따라서
등장하게 하신다는 사실에서 큰 위로를 받는다.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저주받은 자의 죽음이 되셨으나
정중한 왕의 장례를 받으신 예수님 !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를 가지고 나타나서
주님께 쓰임받은
요셉과 니고데모의 은혜가
나의 신앙과 삶에서도 나타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