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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20:11-23 동산지기 예수님의 모습에서 배우는 것

by 朴 海 東 2015. 12. 8.

동산지기 예수님의 모습에서 배우는 것

요한복음 20:11-23

묵상내용

동산지기 예수님 [20:15]

두 제자 베드로와 요한은 빈 무덤 확인하고 돌아갔지만
마리아는 차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시신이 없어진 이 안타까운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아직 주님의 부활을 알지 못하고
인간적인 사랑 때문에라도 울고 있는 그녀를 사랑하시며
불쌍히 여기시고 그녀의 눈을 열어
먼저 그 무덤을 지키고 있던 두 천사를 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부활하신 주님 자신을 나타내 보이실 때는
영광스런 모습이 아닌 동산지기의 모습으로 보이셨습니다.

이 대목이 참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동산지기의 모습인가요.....(?)

예수님은 마리아를 위해서 그렇게 변신된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내셔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찬란한 영광 앞에 압도되어
마리아가 쓰러져 죽을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은 신구약 성경 곳곳에서도 엿보게 되는데
주님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조차도 밧모 섬에서
부활하신 영광의 주님이 자신을 찾아 왔을 때
그 영광스런 모습 앞에 압도되어 까무러쳐서
죽은 사람처럼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1:17]

그런가하면 구약의 위대한 기도의 종이며
거룩한 성도의 표상이 되는 다니엘도
주님의 계시를 받기 위해 영광스런 주님 앞에
맞닿아졌을 때 그는 자신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자같이 되었고
자신의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고 죽은 자같이
되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단10:8]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몸을 보이시는데 세 번의 변신을 봅니다.

마리아에게는 동산지기로,
그리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는
함께 가는 나그네[길손]으로 동행하셨고

그리고 또 그날 저녁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그들이 모두 주님 이라고 알아볼 수 있는
모습으로 보이시면서 그래도 혹시 의심하는 자가
있을까하여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이시며
자신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20:19]

문제는 오늘 주님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마리아가 만난 동산지기의 모습은
예수님을 만나보기 원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고도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보는 한 가지
영적 법칙을 제시해 주는 것 같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영적 법칙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도마에게 하신 말씀처럼
예수님의 부활이 이처럼 확실하고
허다한 증인과 증거들이 있는 마당에
눈으로 보는 것으로 믿겠다는 것보다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이 복되다는 것이며 [20:29]

그래도 굳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자 한다면
우리[나]는 마리아에게 나타내신 동산지기의 모습이나
혹은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나타내신 모습으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으로보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음성으로 비로써 알아보았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예수님이 함께 주막에 들어가
떡을 떼어주시는 성찬의 표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눅24:30]

예수님의 직계 제자[사도]가 아니었던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와는 달리
직계 제자[사도]인 제자들에게는
그들이 한 눈에 예수님 이라고 알아볼 만한 모습으로
나타나 주셨는데 이는 예수님 부활의 산 증인들이
되어야 하는 사도적 신분의 특수성 때문에
이렇게 하신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는데
사도들은 선지자들과 함께
교회의 터가 되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엡2:20-22]

묵상적용

인도의 성자 썬다싱은 본래 인도 펀잡 지방에서
씨크교의 열렬한 신도였는데
히말라야 산맥을 여러 차례 왕래하며 전도했던
성인으로써 그처럼 예수님을 많이 만나고
경험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일대기를 기록한 썬다싱 전집을 보면
그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여러 장면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나
혹은 문둥병자나 걸인의 모습으로 만나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성탄절 날 양재동에 있는 온누리교회 채풀에
참석해서 성탄축하 예배를 드리는 중에
하용조 목사님께서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간증했는데
페결핵으로 고통 받던 젊은 시절
누군가가 자기의 이름을 부르기에 문을 열고 내다보니
한 문둥병자가 서 있었고 곧 사라졌는데 그가
예수님 이었다고 했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마리아가 만난 동산지기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도 부활하신 영광스런 모습으로 보다
자신을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낼 수 있는지를 암시하는
말씀으로 받아 드려지게 됩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영광의 형체로써 보다
오늘 내 곁에서 평범하게 혹은 쉽게 접할 수 있는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내실 수 있다는 것 인데

문제는 나의 눈이 열려서 예수님을 알아보아야하고
혹은 마리아처럼 우리도 그의 음성/말씀으로
알아볼 수 있어야 되는 것 같습니다.

두레교회 김진홍 목사님은 한 때 젊은 목회자 시절
청계천 빈민가에서 활빈 교회를 개척하며
빈민들을 섬겼는데 해야 할 일은 많고 힘은 부치고
몸은 너무 피곤하여 교회를 정리하고 떠나려고 하는 날

마지막으로 동네 한 바퀴 돌아보고 떠나려고
골목에 들어섰다가 아이들의 우는 소리가 들려서
찾아간 집에서 그 아이들의 눈 물 방울 속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후 싸놓았던 이삿짐을 다시 풀었다고
자신의 간증 집 “정금같이 나오리라”에서 말합니다.

나는 3년 전 어느 여름 선교지의 한 도시 터미널에서
노동자의 복장을 한 어떤 사람이 나에게 다가 와서
나를 잘 안다고 하며 위로하고 심지어는 나에게
돈까지 주려고 하기에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나를 위로하시며
만나주신 것이라고 받아드렸는데 버스를 타고
그 도시를 떠나오면서 그 감격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예수님을 모신 내가 그 누군가에게,
혹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그 누군가가
나에게 예수님 자신을 나타내 주시는 이러한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기를 기뻐하신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오늘의 말씀에서 동산지기의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오늘 우리 모두[나]에게 힌트를 주는 것 같습니다.

부활의 주님 !

오늘 누군가를 통해서
나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때
내가 주님을 알아볼 수 있게 하시고

또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나를 통해 누군가에게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실 때
내가 기꺼이 그 역할에 쓰임받는
작은 예수[그리스도인]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