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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20:24-31 부활하신 예수님과 도마와 나

by 朴 海 東 2015. 12. 8.

부활하신 예수님과 도마와 나

요한복음 20:24-31

묵상내용

사순절 스물다섯 번째 날 아침입니다
어제 내린 비로 촉촉하게 젖은 대지에는
이제 곧 새싹들이 돋아나고
이 사순절이 지나고 부활절을 맞을 즈음엔
푸르른 생명의 합창을 주님께 드리게 될 것입니다.

봄의 대지에 피어난 새 생명들의 노래처럼
생명의 주님을 만나는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며
오늘 주신 말씀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 예수님은 도마와 우리[나]를 차별 하시나요 ? ]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저녁,
제자들이 함께 모인 집에 찾아 오셨을 때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았던 도마는
주님을 만난 다른 제자들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어서
정말 괴로운 한 주일을 보냅니다.

그 괴로웠던 한 주일이 그에게는 주님을 따라다녔던
3년 보다 더 길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의 주님께서는 조금 더 일찍 나타날 수도
있었겠지만 부활하신 후 한 주일이 지난
여드레를 지나서 나타나신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저자 요한은 안식 후 첫날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여드레[한 주간]을 지나 나타나신 것에 대해
초기교회가 주일[주님의 날]로 지키게 되는
기원이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든 이 기간이 평안을 잃어버린 도마에겐
가장 힘들었던 한 주간이 되었는데
그는 얼마나 심한 갈등에 휘말렸는지
다른 동료 제자들에게 내가 부활하신 주님을
내 눈으로 보고/내 손으로 만져보고/느끼기 까지는
절대로 믿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한 주간이 지난 후
다시 찾아오셔서 도마가 그의 입으로 말한 그대로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옆구리에 넣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도마는 자기 앞에 나타나신 주님 앞에서
자신의 의심과 회의가 컸던 만큼
지금까지 요한복음이 보여준
그 어떤 신앙고백보다 더 큰 고백으로써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데
이는 이 복음서의 서언을 시작할 때
올렸던 로고스 찬가[1:1-5]의 완성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의심하는 도마에게는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육감으로 감촉할 수 있게 해주신 예수님께서
왜 오늘 우리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지

그리고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는 말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런데 도마와 우리[나]를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결정적인 근거를 오늘의 말씀 첫 구절인
“열두 제자 중에 하나”라는 구절에서 해답을 봅니다.

도마를 비롯한 열두 제자[사도]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위임 받은 사람들이고
또 오늘 우리들의 교회는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의 터 위에 서 있다고 했기 때문에[엡2:20]

만일 다른 제자들이 모두 주님의 부활을 증거 한다 해도
열두 제자[사도] 중에 한 사람인 도마가 부인한다면
오늘 우리의 교회는 교회의 한 터가 되는
도마 한 사람 때문에라도 흔들려서 설 수가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기초 위에 세워져있고
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엡2:20]

그래서 예수님은 오고 오는 모든 시대에
주님을 믿고 섬기며 따르는 성도들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도마가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그가 가진 사도적 신분의 특수성 때문에
의심하는 도마에게 부활하신 자신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도마의 의심과 또 의문의 해결이 모두
우리[나]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의 의심을 대신한 도마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며

또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이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을 도마의 의심과
그 의심의 구름을 완전히 몰아내는 찬란한 신앙고백으로
휘날레를 장식하고 있는지 잘 이해하게 됩니다.

이 복음서가 기록될 당시[AD 90년대]는
로마의 황제를 주라고 부르라고 강요하는
로마제국의 핍박이 극심했던 시절인데

주님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은 이 복음서를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은 로마의 황제보다 높이 계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 되실 뿐만 아니라

또 우리가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된다는
이 복음서의 기록 목적을 밝힘으로
당시 핍박 속에서도 주님을 믿고 있는 성도들에게
순교적 신앙으로 죽음까지 넘어서게 하는
위로와 격려를 이 책에 담고 있음을 엿보게 합니다

기도하기

열두 제자[사도]중의 하나인
도마의 의심을 통하여
나의 의심을 대신하게 하시며

도마의 확신을 통하여
나의 확신이 되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사도들을 통하여 전파 되고
성경에 기록된 부활의 주님을
내가 의심없이 믿고 의지하며
내 생명의 주님으로 모십니다

주님의 이름을 힘입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되는
이 축복과 희망의 말씀에
나의 모든 것을 걸고
힘차게 살아가게 하소서

묵상적용

그러나 오늘의 말씀 묵상을 그냥 이대로 접기에는
너무 아쉬운 한 가지 주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20장에 들어와서
벌써 세 번째 전하는 주님의 인사
곧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는 샬롬 입니다

첫 번째 샬롬은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던 날
주님을 배신하고 도망갔던 제자들이기에
쥐 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던 그들에게
도리어 그들의 약함을 이해하고 위로하시며
안심시키는 평안[샬롬]의 인사이며 [20:19]

이 평안이 그냥 말로만 하는 평안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에게 임하는 평안이 되기 위해서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는 이사야의 예언처럼
그대로 실현되었다는 뜻으로 [사 53:5]
그의 상함을 받으신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습니다.

두 번째 샬롬은
제자들의 약함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죄 사함의 평안을 주신 것에 이어서
이 평안의 복음을 세상 가운데 전하도록
파송하시는 것과 관련하여 주시는 평안이며[20:20]

세 번째 샬롬은
제자들 모두에게 주시는 평안이지만
더욱 특별히 지난주일 모임에 빠져서
주님의 부활을 확신할 수 없는 것 때문에
의심과 불안에 빠지고 평안을 잃어버린
도마를 겨냥하여 주신 평안의 인사입니다.[20:26]

오늘의 말씀에서
도마 한 사람의 의심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나타나시고 평안의 인사로 찾아오신 주님은

오늘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자리에 나왔지만
도마처럼 마음의 안정을 갖지 못하고
평안을 잃어버린 나를 개인적으로 상대해주시며
평안을 주시는 분 이신 것 때문에 감동하게 됩니다.
주님께 보인 것이라곤 배신과 죄 밖에 없는
보잘 것 없는 내가 무슨 가치가 있다고
내가 평안을 얻기 까지는
주님 자신도 결코 평안을 갖지 못하시는
그 사랑의 속성 때문에
다시 찾아오셔서
평안을 전해 주시는 이 샬롬의 인사가
이 아침 더욱 깊이 마음에 닿아지며
나의 모든 불안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샬롬의 인사에 나 자신을 맡기게 합니다.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주님
그냥 빈말로 샬롬 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이 평안이 나에게 임하여 지도록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으로 따라
친히 징벌 당하신
주님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의 생명을 내어주신 댓 가로
나에게 입혀주시고 가져다주신
주님의 인사, 샬롬! 을 힘입어
내가 풍파 많은 세상에서
언제나 이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