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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요한복음 *

요한복음 21:15-25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상처입은 치유자

by 朴 海 東 2015. 12. 8.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상처입은 치유자

요한복음 21:15-25

묵상내용

새해 첫날 시작했던 요한복음 묵상이 마쳐지는 이 아침
추운 겨울을 지나서 피어나는 연초록 산수유꽃들이
우리 아파트 화단에 가지마다 피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겨우내 메말랐던 가지에 잎도 피기 전에
먼저 꽃을 피운 연두색 꽃잎들이 반가웠고
또 꽃을 피우려고 도톰하게 올라온 봉우리들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희망의 새 봄이 담겨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살금살금 다가온 듯
어느새 우리 곁에 와 있는 새봄이 반가운 이 아침
우리에게 따스한 봄날을 보내오시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주시는 주님 앞에서
오늘 나도 아름다운 묵상의 한 꽃으로 피어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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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시 갈릴리 바닷가에 서서


이 책의 저자 요한은 주님께서 베드로와 제자들을 만나서
사랑의 문답을 나누시는 장소를 주님과 제자들 사이에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인 갈릴리 바닷가로 그리고 있습니다.

시몬이 처음 주님께 부름 받았던 곳도 바로 이곳 이었는데
주님은 지금 그 추억의 장소인 이곳에 오셔서
특별히 베드로를 향한 사랑의 문답으로 운을 떼십니다.

해변에 피어있는 모닥불에 둘러앉아서
떡과 고기로 배불러진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육신의 배부름 보다 더 중요한 영혼의 힐링을 위해
주님이 주도하시고 만드신 이 자리입니다.


2. 첫 사랑의 추억: 요한의 아들 시몬아 !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름을 호칭하시면서
베드로의 본래 이름인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부르시는데

그것도 연속해서 세 번이나 호칭하심으로
우리 함께 처음 만났던 그 첫사랑의 시절
초심으로 돌아가서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해보자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 부름받기 전 갈릴리의 한 촌부에 불과했던
시몬이 예수님을 만나서 [반석]베드로란 이름을 얻고
주님을 따라 나선지 어느덧 3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삼 주전 주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시던 날
자신의 굳은 맹세를 저버리고 주님을 부인했던
쓰라린 자괴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베드로는
진정 힐링이 필요한 마음의 병을 안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대제사장 안나스의 뜰에서
주님과 눈이 마주쳤을 때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고
황소 같은 눈망울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았는데

자괴감으로 무너져있던 그를 다시 세워주시기 위해
주님은 사랑의 문답으로
무너진 그의 마음을 두드리십니다.

그것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
어떤 이유로 마음이 닫혀버린 상대에게
"나, 자기를 변함없이 사랑하는데
자기도 날 사랑해 ! " 라고 말하면서
사랑의 확인을 요구하는 것처럼

더 이상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게 된 그에게
주님은 “내가 너를 사랑하는데 너도 날 사랑해”라고
확인받고 싶어 하는 질문으로 마음 깊이 닿아집니다.

기도하기


3. 겸손 :
네가 이 사람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사실 지금 자괴감에 빠져있는 베드로의 실패는
다른 제자들보다 자신은 더 주님을 사랑한다는
자신감/교만에서 이미 예견된 것 이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 죽음을 몇 시간 앞두시고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하셨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만큼은 주님과 함께
감옥에도 죽음에도 함께 갈 것이라고 장담했는데

동료 제자들에게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고
위화감을 조성했던 베드로의 교만은 깨어지고
다듬어질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주님은 밀 까부르듯 청구하는 사단에게
일시적이나마 베드로를 내어주신다고 하신대로
베드로는 넘어졌고 그 마음은 무너져버렸습니다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 프로이드는
그의 정신분석학 이론에서 마음의 장애를 치유하려면
장애를 유발시킨 그 사건과 현장으로 되돌아가서
그 때의 일을 되돌려 리바이블 시켜야한다고 하는데

주님은 이미 이런 정신분석학적 이론을 다 아시는 듯
베드로를 그 때 그 시간과 그 현장과
그가 그 때 했던 말들 가운데 세우고 계십니다.

마지막 만찬을 나눴던 다락방에서 다른 제자들보다
자신을 우월하게 놓았던 그 말들을 상기시키시는 듯
이 사람들 보다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며

또 대제사장 안나스의 뜰에 피어있던 모닥불처럼
갈릴리 해변에 모닥불 가에서 그를 마주하고 계시고

또 베드로가 세 번 주님을 부인했던 것처럼
다시 세 번 나를 사랑하느냐는 문답으로 다가가십니다.

어찌 보면 지난날의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은
마음의 고통을 더 증폭시킬 수 있겠지만
마음속에 비수처럼 꽂혀버린 상처를 치유하기위해서
부득이하게 통과해야 하는 이런 치유의 과정은
베드로에게도 주님에게도 모두
서로에게 필요한 절차였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랑의 문답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아가파스 [절대적인 사랑]으로 물었고 베드로는
필레이스 [우정의 사랑]으로 답변했기 때문에

주님은 다시 필레이스[우정의 사랑]으로 물으셨고
베드로는 다시 필레이스로 답변했는데

주님께서 세 번째 다시 필레이스로 물으실 때는
자신에겐 이 사랑조차 말할 자격이 없음을 깨닫고
근심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고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가난한 마음으로 필레이스 사랑을 답변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데 아가파스가 아니어도
필레이스의 사랑만으로도,
아니 필레이스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잘 것 없는 가난한 사랑이더라도
주님은 베드로의 사랑을 받아주시고
상처 입은 그의 마음이 치유되게 하시며
그가 서있어야 할 본래의 자리와
새로운 사명에 세워주셨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더 이상 동료 제자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우쭐하고 싶은
철부지 제자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실패와 실수를 넘어서서
성숙해졌고 주님과 동료들 앞에
겸손하게 낮아진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자신이 받은 치유처럼 상처 입은 자들을
치유하며 초기교회를 앞장서 인도해가는
직분을 회복하였습니다.

묵상적용


4. 치유와 사명:
네가 날 사랑한다면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이 말씀은 베드로가 천 번 만 번 들어도 좋은
치유와 사명을 위해 주시는 힐링의 절정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베드로를 치유 회복하시며
본래의 자리로 복직해 주시는 이 말씀이 없었다면
초기교회 베드로의 사도적 위상과 지도권은
크게 타격을 입었을 것이고, 크게 흔들렸을 것입니다

요한이 이미 베드로가 주님 품으로 가고 없던
AD 90년대에 이런 베드로의 이야기를 굳이
끄집어내는 것에는 한 때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에 대한 초기교회의 의심을 불식 시키며

더 나가서 베드로가 중심이 되었던
예루살렘 공동체와 요한이 중심이 되어있는
에베소 공동체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유추하게 됩니다.

더불어 이 치유와 회복의 말씀은
내가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자 인가
나 스스로에게 자문해볼 수 있는 질문인데

내 지난날의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지금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필레이스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잘 것 없는 사랑이라고 하여도

나도 베드로처럼 전능하신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는 고백으로
나 자신을 주님 앞에 내려놓게 됩니다.

주님 !
사역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침체에 빠질 때 마다

네가 날 사랑한다면
내 양을 먹이라는 주님의 부탁에
내 자신을 굳게 세울 수 있게 하옵소서